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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울 Apr 26. 2023

1. 나는 기형아다.

선언

"봐! 이걸 원했지! 제대로 봐! 눈을 똑바로 뜨고 이 저주받은 모습을 좀 보란 말이야!"

 -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나는 소이증이라는 이름의 선천성 기형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소이증이라는 부드럽고 예쁜 어감의 이름을 가진 이 기형질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체로는 한쪽 귀, 간혹은 양쪽 귀가, 정상적인 귀보다 현저히 작고 모양이 변형된 것이 특징이다.

인종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신생아 7,000~8,000명 중에 한명 꼴로 나타나는 질환이라고 하니, 퍽 희귀한 셈이다.

통계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해의 신생아는 721,185명이었다. 우리 94년 개띠 친구들 중에서는 대략 100명쯤이 나같은 귀를 달고 나왔을 것이다. 다들 어느새 서른 씩이나 먹었구나 본 적도 없는데 괜히 유대감을 느낀다.

Grades of Microtia and Atresia (courtesy of Dr. Sheryl Lewin, MD (Medpor surgeon)


각설하고

아무튼 나는 소이증 환자다.

그리고 다짜고짜 '나는 기형아다'라는 선언을 함으로써 앞으로의 글을 열고자 한다






내 기억이 닿는 바에 따르면, 나는 '기형아'라는 단어를 배운지 수년이 지나서야 그 단어가 나한테도 적용할 수 있는 단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뜻 이상한 일이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기형아라는 단어에는 '징그러움'이나 '불쌍함' 따위의 감정을 함께 담기 마련이다. 위의 사진을 보고 무슨 감정을 느꼈는가? 자신을 속이지말자.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솔직히 징그럽고, 솔직히 불쌍하다.


그러나 2차 성징을 맞고 스스로의 생김새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나는 내 귀에 대해서 그런 류의 감정들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기형아'라는 우울한 단어와 나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을 깨닫지 못했고, 그 단어의 용례에 내가 포함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물론, 사춘기가 되어 (1)내 귀가 못생겼다는 사실(2)그것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내가 말로만 듣던 그 '기형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 귀가 기형이며 내가 말하자면 기형아라는 것을 인지하고서, 한동안은 누가 나에게 "너 귀가 왜 그래?"라고 물어보면 그냥 "기형아라 그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사춘기 남자 애 특유의 작위적인 쿨함위악적인 자조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게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설명이어서였을수도 있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부터였다. 기형라고 지칭하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린 것이다.

나는 키 185cm, 체중 83kg이고, 내 나이의 아저씨가 으래 그렇듯이 매일 면도를 하고, 세금을 내고, 술을 사마신다. 더 이상 어떤 종류의 '~아'라는 명칭을 붙이기엔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문제'가 버릇을 못 고치고 크면 '건달'이나 '범죄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부랑'가 그대로 나이를 먹고 부랑생활을 하면 '부랑인'이라고 부른다. '부적응'가 크면 (회사에서의 나 같은) '사회부적응자'가 된다. 그런데 '기형'는 도통 성인 버전의 단어가 없다.


그래서 한동안 또 그 단어를 안 쓰기 시작했다. 아쉬운일이 아닐 수 없다. '기형아라 그래'라는 여섯글자짜리 대답 대신, 매번 '태어날 때부터 이랬구요, 소이증이라는 이름의 선천성 희귀 기형질환이에요"라고 길고 어른스럽게 설명하는 귀찮음이란...




그러던 어느날, '~아'라는 말이 비단 어린 아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풍운아, 고아, 패륜아 등은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어떤 나이대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붙여서 쓰더란 말이다.

그래서 참 변덕스럽게도 나는 오래전에 버렸던 그 단어를 주워왔다. 어색하고 쑥스럽게 이 단어를 내 입에 올려 자신을 정의해본다.


"나는 기형아다."


심플한 사실이다. 어색함과 동시에 후련함 같은 것을 느낀다. 마치 헤어졌던 전 연인과 수년이 지나서 재회한 후에 주저하는 마음으로 '자기야' 라는 호칭을 오랜만에 쓰는 기분이다.


자, 길고 긴 고찰을 돌고 와서 결론 내린다. 나는 기형아다. 일단 한놈은 잡았다.






그러고나면 비로소 드는 의문이 있다. "잠깐, 그럼 다른 기형아들은 다 어디갔지?"

7,000~8,000명에 한명 꼴로 나타난다는 내 소이증 동지들이야 그렇다 치고, 나머지 온갖 기형아들은 어디갔냐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기형아가 발생할 확률은 전체 임신의 2.5% 정도로 알려져있다. 100명 중 두세명이 기형아인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이를테면 심장이라던가 깊은 곳의 뼈가 기형인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거리에서, 마트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기형아들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보여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좀처럼 주변에서든 길에서든 찾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그 많던 기형아들은 어디에 갔을까.


기형아로 나고 자란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이런저런 것들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대학교 조별과제에서 팀원으로 만난 사람이나, 직장 선배, 여행 중 만난 동행 따위와 함께, 우리가 겪은 기형아로서의 해프닝들과 감정들에 대하여 군대얘기마냥 좀 나눠볼법도 한다. 대체 어찌된 일인지 그런 기회는 내 30년 인생에서 단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기형아로서의 정체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도, 말해볼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다. 기형아로 산다는 체험에 대하여 글로 담아낸다.

그렇기 위해서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어느 소설의 첫 문장처럼

나는 기형아로소이다 라며 건방스레 선언부터 해본다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나의 기형질환은 비교적 그렇게 심하지 않다. 내 귀는 기능적인 문제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어찌어찌 연애도 몇번 해봤으니 미관상으로도 심하게 징그럽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 위의 사진에서는 grade2 정도일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기형으로 인해 다른 기형아들만큼의 우여곡절이나 상처는 없는 편이리라 짐작한다


그런 내가 '기형아'라는 정체성을 대표하거나 대변할 수는 없다. 그것이 조금 조심스럽다.

이를테면 앞으로 전개될 글에서 나의 태도는 시종일관 시니컬하고 쿨한 편일 테다. 과거에 우여곡절이 있기야 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별다른 콤플렉스도 없다. 그러나 그러지 못할만큼 참혹한 콤플렉스와 매일매일 싸워야하는 다른 기형아들에게는 나의 이런 태도도 언감생심일수 있다. 내가 어떤 태도나 생각을 갖고 있고 그것이 혹여 보기 좋아보인다고 할지언정, 다른 기형질환 환자들 일반에게도 같은 태도가 요구된다면 매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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