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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울 May 13. 2023

4. 성장기와 콤플렉스

샤기컷과 투블럭컷, 두 유행의 온기와 냉기

"어?" 호시코가 오른쪽 귀를 만졌다. 포르쉐가 맨션 앞에 멈췄을 떄였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며 다쿠야는 "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었다.
"이런 데 상처가 있네? 몰랐어."
"아!"하며 다쿠야는 머리카락으로 가렸다.
"사실은 가리고 다닌 겁니다"

- 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1. 유년시절.


청소년기에 접어들 즈음 비로소 자아란 게 형성된다고들 한다. 그러니 자아가 형성되기 전의 유년기를 많은 이들이 그렇게도 편안하고 아름다운 때로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연한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때나에게 못생긴 부분이 있는지 따위에 대해 신경써본 기억이 없다. 그 나이에 신경쓰이던 것들이라고는 옆집애보다 달리기가 느리다는 점, 유행하던 디지몬 가방을 갖고있지 다는 점, 내 친구가 다른 애랑 더 친하다는 점 정도였다.


물론 귀에 대한 이슈가 없지는 않았다. 유치원때 가끔 이런 식의 시시껄렁한 장난이 있었다.

- 남자애 : 야 내가 귀에 구멍내는거 보여줄까?
- 여자애 : 어떻게?
- 남자애 : 봐봐

(귓바퀴를 검지와 엄지로 잡고 말아쥔다. 그러면 엄지손가락을 귀가 둥글게 감싸쥔 모양이 된다. 이를테면 핫도그 같은 모양이다. 언뜻보면 엄지손가락으로 귀를 뚫은 것 같기도 하다)

- 여자애 : 으악! 징그러
대략 이런 모양이다. 소시지가 엄지손가락, 빵은 귀다

당연히 오른쪽 귀는 작고 형태가 뭉툭해서 조금도 접히지가 않았다. 그러니 나는 그 장난을 멀쩡한 왼쪽 귀로만 할 수 있었다. 그게 귀와 관련된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2. 사춘기

열 서너살쯤 들어 2차 성징이 오기 시작했다.

애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남자애 여자애가 생기고, 옷차림에 유행이란걸 신경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론, 그놈의 자아가 생겼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선 불현듯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국부를 숨기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만큼이나 황당하게도 나는 갑자기, 난데없이, 뜬금없이, 내 귀를 숨기고 싶어졌다.

(어쩌면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는 인간의 2차성징에 대한 지독한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귀가 부끄러웠다. 남에게 보이기 싫어졌다. 나는 그대로인데, 전에없던 그런 감정들이 갑자기 생겨났다.


그러나 당장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는 2004~2006년. 샤기컷 울프컷의 시대였다.


귀가 예쁘든 못생겼든 상관없이 길게 기른 옆머리로 귀를 가리는 것이 그 당시의 준엄한 유행이었다.

별 수 있겠는가. 나 역시 한명의 흔한 한국인답게 유행을 철저히 따랐다.


가만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자아형성 초기, 작은 것에도 상처받기 쉬운 그 취약한 시기에, 나는 얼마든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서 귀를 덮어 가릴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별다른 콤플렉스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초등학교에서 전교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을만큼 어디 나서고 드러내길 좋아했다.




3. 중학교


중학교 시절의 일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따로 자세히 다루겠다. 다만 몇가지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러했다.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리고 싶었다. 그러나 두발규제가 엄혹해서 그럴 수 없었다.

귀에 관한 여러가지 크고 작은 상처들은 주로 이때 얻었다.

당시는 외국어고등학교가 유행하던 때였다. 외고에 가면 두발규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4. 고등학교


나는 원하던 특목고에 입학했다.

더 이상 샤기컷이 울프컷이라는 유행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대신 댄디컷인가 뭔가 하는, 어쨌든 다행히도 여전히 긴 머리가 유행이었다.


소문대로 특목고에서는 머리를 심하게 잡지 않았다.

나는 넉넉히 귀를 가릴만큼 머리를 기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심하지 않은 선에서 파마나 염색까지도 하곤 했다. 게다가 그 즈음 키도 많이 크고 얼굴도 그럭저럭 남자얼굴이 되었어서,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제법 있었다.


그때는 꽤 행복했다. 예민한 시기임에도 외모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아무런 콤플렉스가 없었다. 


물론 가끔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거나 땀에 젖어서 귀가 드러날 때, 그걸 마침 누군가 보고서 '왜'를 물어오곤 했다. 또는 혼자 거울을 보다가도 괜스레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여전히 그 뒤틀리고 작은 귀가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곤 했다. 그럴때마다 고작 머리카락으로 얄팍하게 숨긴 나의 콤플렉스가 가슴 속에서 불쑥 들끓곤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다시 머리카락으로 귀를 덮으면 나는 편안했다.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단지 덮어버렸을 뿐이었다.




5. 대학교~입대 전


대학에 갔다. 댄디컷의 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엄혹한 투블럭컷의 시대가 이미 성큼 다가와있었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었던 유행이 새로운 유행에게 밀려나고 있었다. 귀를 덮는 긴 머리는 이제 촌스럽게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놈의 스냅백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스냅백을 예쁘게 눌러쓰면서 머리카락이 귀를 가리기란 불가능했다!


멋은 부리고 싶지, 그 와중에 귀는 숨기고 싶지, 여간 곤란한게 아니었다.

 

상충되는 두 가치 사이에서 나는 전보다는 조금씩 옆머리를 짧게 자르기 시작했다.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았더라도, 갈수록 내 귀는 부각되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다. 중학교는 남중이기라도 했지, 대학에서부터는 여자들 시선이 엄청나게 신경쓰였다.


강의실에서는 꼭 오른쪽 끝에 앉았다. 혹여나 내 뒷 사람이 칠판을 보다가 우연히 시선이 내 오른 귀에 닿는 것이 싫었다. 강의실 뿐이 아니었다. 길을 걸을 때에도,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나는 부지불식간에 항상 오른쪽에 위치해있었다. 사람을 마주볼때도 고개를 살짝 틀어서 왼쪽 얼굴을 보이곤 했다. 나는 내가 그러는 줄 몰랐는데, 당시 여자친구가 말해줘서 알았다.



6. 군 입대


여부가 있겠는가. 머리를 밀었다.

나는 머리를 민다는 것이 남녀를 불문하고 인생에 한번쯤은 해볼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얼굴을 가장 거짓없이 직면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생각한 자기 얼굴의 매력이 잘생김, 예쁨, 귀여움, 터프함, 퇴폐미, 섹시미, 그 무엇이었던 간에

진짜 모습은 머리를 밀고 거울을 볼때야 비로소 나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

머리카락이란 그만큼 위대한 것이다.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내 얼굴을 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꿈꿨던' 것보다, 양쪽 귀의 차이는 극명했다.
귀의 위쪽 절반이 찌그러져 있는 것도 그렇지만
그 크기도 반대쪽 정상 귀에 비해서 절반정도 밖에 안되었고
귀가 붙어있는 위치도 약간 달랐다.
20년 넘게 함께한 귀라는 것이 무색하게, 내가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애써 외면해왔는지를 방증하는 것일테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괜히 귀를 잡아 당겨보기도 하고, 접힌 부분을 펴보기도 한다.
이상하게 가슴이 좀 뛰는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자 묘한 해방감이 일었다. 멋을 부릴, 아니 멋까지는 됐고, 못난 부분을 가릴 일말의 방법이 사라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외모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자 번뇌가 사라졌다. 경험으로 말하건대 불교승려나 군인들의 삭발은 굉장히 목적적합한 제도이다.


물론 몇개월 지나지 않아 머리는 금방 다시 자랐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귀를 가리지 않았다.

그냥 그 당당함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하등 신경 안 쓴다는 양 쿨한 척 하고싶기도 했다. 물론, 유행에 맞는 예쁜 머리스타일을 하고 싶어서인것도 분명하다.



사춘기 이래로 이어진 이 지난한 숨김과 가림의 시간은 그렇게 시시하고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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