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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란티어의 조직 철학 (2) "피터 틸"

"빨갱이들로부터 우리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비장)"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난 시간에는 팔란티어(Palantir) 라는 독특하면서도 강력한 테크 기업, 그리고 그곳의 대표(CEO)인 알렉스 카프(Alex Karp)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팔란티어는 정부·군사·민간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초강력 데이터 분석 능력을 보유한 회사로, 상장 직후 주가가 폭등했다가, 다시 폭락을 거듭하며 투자자들의 마음을 무수히 뒤흔든 기업이죠.


그런데 단순히 “주가 변동이 큰 테크 회사”라고만 정의하기에는 이 회사가 지닌 특징이 너무나 독특합니다. 보안을 위해 철저히 비밀을 지키면서도, 조직 내부에서는 컬트적 문화가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죠. 그저 “직원을 팬덤처럼 묶어두려는” 모토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그 문화에 공감하고 스며드는 사람들만 뽑아서 운영한다니, 어딘가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기업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 독특한 회사 문화의 한가운데에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갖춘 철학 박사 CEO”, 바로 알렉스 카프가 서 있습니다. 1편에서 그가 독일에서 하버마스 아래서 철학을 공부하고, 투자 펀드도 굴리며, 결국 팔란티어의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봤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1편에서 “카프가 그리는 꿈은 팔란티어의 경제적 성공만으로는 절대 설명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일부 관찰자들은 “그의 목표는 오히려 ‘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대안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고까지 분석했습니다. 물론 확실한 사실은 아니지만, 적어도 단순히 돈을 벌어 은퇴하는 데 만족할 사람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강하죠.


그렇다면 이런 알렉스 카프와 함께 공동 창업을 한 피터 틸(Peter Thiel)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다른 이념을 가진 인물과 손을 맞잡고 팔란티어를 이끌어가는 걸까요? 사실 피터 틸은 투자·정치·철학 등 다방면에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지만, 그 독특한 캐릭터에 대해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경쟁이 아니라 독점하라” 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도 유명하고, 페이팔 마피아의 주역으로서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때론 극단적 자유지상주의(리버테리어니즘)자라 평가받는 그가, 팔란티어를 어떻게 설계했고, 또 알렉스 카프라는 전혀 상반된 이념을 지닌 리더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게 됐는지 알아보죠.


잠깐만 살펴봐도 호기심이 마구 생기지 않나요? 특히 이번 편의 부제목인 “빨갱이들로부터 우리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내자!!” 같은 문구가 왜 붙었는지도 점점 궁금해질 겁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차근차근 파고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피터 틸은 어디서 왔는가?


피터 안드레아스 틸(Peter Andreas Thiel)은 1967년 10월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Frankfurt am Main) 인근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이 여러 국가를 오가며 지냈으며, 이후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학창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적 호기심과 정치적 견해가 뚜렷했으며, 특별히 판타지 문학, 특히 J. R. R. 톨킨(J. R. R. Tolkien)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깊이 좋아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훗날 자신이 창업하거나 투자에 관여한 회사들을 톨킨 세계관에 등장하는 지명·소품의 이름(예: 팔란티어, 밸러(Valar), 앙반(Angband) 등)으로 짓는 등, 톨키니스트로서의 면모를 꾸준히 드러내기도 했죠.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신문이나 토론 클럽을 통해 보수적 관점을 자주 피력했으며, 이 당시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언변과 논리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탁월한 편”이라는 평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성향은 훗날 스탠퍼드 대학교 진학 후에도 계속 이어지며, 피터 틸이 지닌 정치·사회적 색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피터 틸은 학부 시절,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유지상주의(리버테리어니즘) 사상에 깊이 매료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터틸의 초기에 대해 다룬 『The Contrarian: Peter Thiel and Silicon Valley’s Pursuit of Power』(Max Chafkin, 2021)에서는 틸이 대학 시절 학내 매체나 세미나를 통해 반복적으로 국가 권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글을 발표했다는 점이 언급됩니다.


스탠퍼드 재학 시절, 틸은 1987년에 ‘The Stanford Review’라는 보수 성향의 학내 신문을 창간했습니다. 이 신문은 단순 교내 소식 전달을 넘어, 캠퍼스 내 정치 이슈나 사회적 논란을 직접적으로 비판·분석하는 데 집중했는데, 당시 스탠퍼드에 퍼져 있던 리버럴·진보적 분위기와 자주 부딪혔다고 합니다. 실제로 틸은 “좌편향된 캠퍼스 문화에 균형을 맞추고, 자유로운 토론 문화를 복원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습니다. 틸은 편집 초기부터 교내 스피커 초청 강연이나 사회 논쟁 주제(예: 표현의 자유, 소수자 우대 정책 등)를 적극 커버하면서, 주류 학생회나 교수진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삭스(David O. Sacks) 등 다른 보수 성향 학생들과 함께 신문 운영·배포를 이끌었던 틸은, 이 경험을 통해 “언론을 통한 지식 생산과 담론 형성”에 대한 강한 흥미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학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감하면서, 훗날 미디어·출판 프로젝트(예: 책 집필, 다양한 컨퍼런스 기획 등)에도 관여하는 기초를 닦았다는 것이죠.



스탠퍼드 로스쿨 - 짧은 법조계 경험, 그리고 투자 업계


피터 틸은 스탠퍼드 학부(철학 전공) 졸업 후, 같은 대학의 로스쿨에 진학해 법학박사(JD) 과정을 밟았습니다. 구체적인 기록을 보면, 그는 1989년경(대략) 로스쿨에 입학하여, 학내 보수 성향 모임·토론 클럽 등에 적극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졸업 후에는 뉴욕의 한 대형 로펌(일각에서는 설리번 & 크롬웰(Sullivan & Cromwell)로 지목하지만, 틸 본인이 명확히 밝힌 적은 없음)에 잠시 몸담았으나, 불과 몇 달 만에 “내가 원하는 경력 트랙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퇴사했다고 합니다.


Fortune이나 Bloomberg의 인터뷰에서 피터틸은, “수직적 조직 문화”와 “변호사로서의 반복 업무”가 그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이 짧은 법조계 경험은, 그로 하여금 “제도화된 시스템 안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평가됩니다.


법조인의 길을 빠르게 포기한 틸은, 곧 금융·투자업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 은행에서 그는 주식·파생상품 트레이딩 부문에서 잠시 근무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의 역동성”과 “투자 기회”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스탠퍼드 로스쿨을 마친 뒤, 직접 자산운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후일 그가 큰 자본을 굴리는 헤지펀드 운영자로 변신하는 데 직결됩니다.


클라리움 캐피털(Clarium Capital) 설립


1990년대 중·후반 무렵, 틸은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클라리움 캐피털이라는 매크로 헤지펀드를 세웁니다. 당시 실리콘밸리가 닷컴붐(dot-com boom)으로 들썩이는 시기였지만, 틸은 “이 단발성 거품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이고 확실한 투자 철학을 펼칠 무대가 필요했다”는 취지로 헤지펀드 쪽을 택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참고: Zero to One 서문, 2014). 클라리움 캐피털은 글로벌 매크로 투자 전략과 기술주 투자를 병행하며, 비교적 빠른 기간 안에 수억 달러 규모의 운용자산(AUM)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리하자면, 피터 틸은 스탠퍼드 법대를 나와 잠깐의 법조계 생활을 하다가 곧 금융·투자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스탠퍼드 학부(철학) → 로스쿨(JD) → 짧은 로펌 경험 → 크레디트 스위스 등 금융권 → 헤지펀드(클라리움) 창업”이라는 루트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창업가와는 사뭇 다른 행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틸은 보수·자유지상주의 사상을 계속 다듬었고, “기존 규제·정부에 좌우되지 않는 새로운 금융·경제 질서를 실현하겠다”는 야망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처럼 투자자로서의 안목과 이념적 동기가 결합된 상태에서, 그는 곧 페이팔(PayPal)을 창업하며 본격적으로 테크 기업 창업가로 변신하게 됩니다.


페이팔(PayPal)과 엑싯(Exit)


피터 틸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결정적 사건은 단연 페이팔(PayPal) 의 공동 창업이죠. 그는 1998년 무렵 맥스 레브친(Max Levchin), 루크 노식(Luke Nosek) 등과 함께 온라인 결제 스타트업 컨피니티(Confinity)를 설립했는데, 마침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만든 X.com과 합병하면서 우리가 익히 아는 페이팔이 탄생하게 됩니다.


당시에도 온라인 결제 시장에는 경쟁자가 적지 않았지만, “사용자 간 송금 + eBay 연동”이라는 혁신적 모델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페이팔은 단숨에 인터넷 결제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뒤, 2002년 페이팔이 eBay에 인수되면서 피터 틸은 머스크, 리드 호프먼(Reid Hoffman), 스티브 첸(Steve Chen) 등과 함께 엄청난 규모의 ‘엑싯(Exit)’을 이뤄냈습니다. 이때 언론이 이들을 가리켜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이유는 단순합니다. 바로 이 ‘마피아’ 멤버들이 유튜브(YouTube), 링크드인(LinkedIn), 테슬라(Tesla), 스페이스X(SpaceX), 옐프(Yelp) 등 수많은 후발 유니콘 창업·투자에 줄줄이 관여하여, 실리콘밸리 생태계를 사실상 재편해 버렸거든요.


이로써 틸은 수천만 달러 이상의 이익을 얻고, 또 다른 혁신 기업들—예컨대 틸은 페이스북 초기 투자(약 50만 달러 투자 후 최대 10% 지분 보유)를 통해 엄청난 자본 수익을 가져옴, 현재에도 팔란티어 외에도 수많은 기업들의 투자자이자 창업자로 활동 중—의 투자를 통해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실제로 2016년 무렵,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틸은 “페이팔 시절, ‘온라인 금융 사기’를 막기 위해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데이터 분석과 국가 안보·첩보 영역까지 관심이 뻗었다”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곧 이어 그는 정부나 군사 분야로 이 문제 인식을 확장해, 테러 자금 추적이나 안보 지원 기술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팔란티어였던 것이죠.


결국 페이팔은 ‘온라인 결제 스타트업의 성공’이라는 차원을 넘어, 피터 틸에게 “정부나 은행의 기존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질서를 실험하는 무대”가 되었고, 동시에 “금융 사기·해킹 등을 막기 위해 대규모 데이터 분석과 실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교훈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통찰을 업그레이드해 정부·군사·안보 분야에 적용하겠다는 발상이, 지금의 팔란티어라는 또 다른 창업 아이디어로 이어진 셈입니다.



(2) 피터 틸은 무엇을 만들고자 했는가?


과연 절대권력과 가까운 팔란티어의 프로덕트가 단순한 기업적 수요로 설계된 것일까?


페이팔이 단순한 “온라인 결제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로 끝나지 않고, 피터 틸에게 민간 혁신이 정부의 고유 영역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심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듯, 팔란티어 역시 그 연장선에서 탄생한 거대한 이념적·기술적 실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를 훨씬 더 급진적으로 해석해, 피터 틸이 자유주의적 이념을 지키기 위해 국가 보안 시스템조차 자기 손안에 두려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죠.


페이팔을 eBay에 매각해 엄청난 자본을 거머쥔 뒤, 틸은 굳이 사업적 성공을 좇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미 금융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슈퍼 엔젤’로 이름을 떨치던 그는, 더 이상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정부나 군사·첩보 시스템까지 민간이 주도할 수 있다면, 내가 믿는 자유주의 질서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으로 선회했다는 겁니다. 이런 시나리오를 지지하는 음모론자들은, 팔란티어가 바로 “정부 보안·안보 시스템을 민간 기업이 좌지우지하게 만들어, 틸이 결과적으로 국가 질서 자체를 장악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들은 “정부 조직은 관료주의와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혁신이 느리고, 활용 가능한 방대한 정보를 제대로 통합·분석하지 못한다”는 틸의 인식에 주목합니다. 민간 스타트업이 이 핵심 역할을 대신 맡음으로써, 결국 정부가 이 회사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거죠. 자유지상주의 사상을 지닌 틸이 국가 권력을 직접 통제하거나 정책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팔란티어라는 데이터 분석 기업을 창업했다는 해석입니다.


페이팔 시절, 틸이 체득한 실시간 모니터링과 빠른 데이터 분석의 강점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되었습니다. 만약 그 시스템을 더욱 확장해 테러 자금 추적, 사이버 공격 방어, 범죄 예측 등을 수행하는 플랫폼을 만든다면, 각국의 정부·군사·첩보 기관은 당연히 그 기술을 쓰고 싶어 할 것이라고 본 것이죠. 그리고 일단 정부가 한 번이라도 의존하게 되면, 민간 기업인 팔란티어가 국가 안보의 핵심 인프라를 사실상 통제하게 된다는 논리가 이어지는 셈입니다. 음모론에 따르면, 틸은 이 상황을 통해 자신의 자유지상주의적 가치—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를 수호할 수 있다고 봤다는 겁니다.


결국 팔란티어는 “민간이 국가 안보를 지원한다”는 전례 없는 모델을 현실화했고, 정부·군사 분야에서 깊숙이 활동하며, 강력한 비밀주의와 컬트적 조직 문화로 성장했습니다. 이 음모론적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이 틸 특유의 ‘정부를 대체할 자유지상주의’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테러·범죄·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국가가 민간 기업에 의존하도록 만들어 자유주의를 지키는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옵니다.


“정부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안보와 첩보 기능을 민간이 앞장서서 수행하는 걸 본다면,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틸이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며 미국 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정작 본인은 뛰어난 수익 창출이나 대중적 인기를 노리는 것에 큰 흥미가 없어 보이는 행보가 이러한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기도 합니다. 결국, 알렉스 카프의 좌파적 색채와 스티븐 코헨의 엔지니어링 역량, 틸의 거대한 자본과 정치·경제적 네트워크가 만나서 만들어 낸 팔란티어는, “민간 기업이 국가 권력을 간접적으로 장악해, 틸이 꿈꾸는 자유지상주의 질서를 수호하려는 시도”. 어딘가 그럴싸 해보이는 해석이지는 않나요?


(3) 피터 틸, 톨키니스트


이처럼 팔란티어와 관련된 다양한 음모론과 자유지상주의적 행보는, 궁극적으로 피터 틸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틸은 금융·안보·정치 등 다방면에서 획기적인 시도를 해왔고, 그 배경에는 그의 독특한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죠.


바로 여기서, 톨키니스트(Tolkienist)로서의 면모가 부각됩니다. 다음 챕터에서는 그가 왜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서 잔뜩 영감을 얻고, 이를 기업명과 프로젝트 명에까지 녹여내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팔란티어라는 이름 자체도 원작에서 “진실을 꿰뚫어보는 수정구”였죠.


틸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강력한 힘을 손에 쥔 이들이 어떤 의도를 갖느냐에 따라 세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테마가 그의 세계관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스토리 속에서 절대반지나 팔란티어 같은 유물들은 잘 쓰면 선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만, 조금만 방향이 틀어지면 전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갈 위험도 품고 있죠. 틸은 실제로 “기술 역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생각을 종종 피력해 왔고, 이는 반지의 제왕이 담고 있는 핵심 주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처럼 반지의 제왕 지명을 빌려 프로젝트나 투자 회사를 명명하는 행위는, 틸의 인생관·세계관이 톨킨의 판타지 세계와 꽤 유사한 구석을 갖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강력한 힘을 누가, 어떤 의지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구원될 수도, 파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구조가, 틸이 말하는 “혁신을 통한 사회 재편”과 놀랄 만큼 닮아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톨키니스트 투자자”의 세계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철학적 토대 위에서 움직이는 걸까요?


피터 틸과 트럼프


“강한 힘을 부정하지 않되, 올바른 의지로 써야 한다”는 반지의 제왕의 메시지를 따라가는 피터 틸의 이념적 방향성은 크게 자유지상주의(리버테리어니즘), 보수주의, 그리고 기술 유토피아주의가 혼재된 형태로 요약되곤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우파 성향을 띤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죠.


2016년 미국 대선 무렵,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민주당 우호적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는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고, 나아가 자신의 자금과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죠. 틸이 공화당 전당대회(RNC)에 직접 참석해 연설하고, 트럼프 캠프에 상당한 액수의 정치 자금을 기부하자, 대다수 테크 기업 종사자들은 이를 두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틸이 페이팔 마피아의 상징이자 자유주의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저버리고, 극우적 인물과 손을 잡았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일부에서는 “민주당에 우호적인 실리콘밸리 생태계 내에서 틸을 배신자로 봐야 하느냐”는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틸은 “트럼프가 외치는 정치 혁신과 반(反) 기득권 논리가, 오히려 기술 혁신과 자유지상주의 이념에 부합한다”는 취지로 자신의 지지 이유를 설명해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대통령 기술자문 위원회 등에 참석해 국가 정책 방향에 직접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틸은 연방정부 차원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실리콘밸리-워싱턴 간 소통 강화 등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전해집니다.


자유주의 사고관: “독점하라”


트럼프를 공개 지지한 사건이 단지 “정치적 선택”에 그치지 않고, 피터 틸의 근본과도 이어진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 주류가 민주당에 우호적인 것은 결국 “경쟁과 혁신을 통해 모두가 잘사는” 모델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틸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죠. 그는 자신의 저서 『Zero to One』에서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면 기업들이 장기적 혁신보다는 소모적인 가격 경쟁에만 매달리기 쉽다”는 논리를 펼치며, “독점을 형성해야 참된 혁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자유지상주의 사고는 정치·경제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틸의 신념으로 이어지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틸이 국가 정책에 직접 관여할 기회를 얻은 것도, 어떤 면에서는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기존 질서를 단숨에 뒤엎는 과감한 조치도 필요하다”는 그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결국,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되면서도 민간이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형태가 틸의 이념적 지향점과 잘 부합한다는 것이죠. 팔란티어 역시 정부·군사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사실상 독보적 위상을 굳히면서 안정적인 수익과 혁신의 자유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을 취해왔고, 이는 틸이 말하는 “경쟁이 아니라, 독점을 해야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와 궤를 같이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기술자문 위원회에 참여해 국가 정책 전반에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정치·경제권력과 직접 접점을 만들어, 자본과 기술이 연합해 독점적 위치를 구축한다”는 틸의 지론이 실현되는 한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4) 피터 틸은 왜 일하는가?


1. 이념적 관철을 위한 사업 운영


틸이 자주 입에 올리는 문장 중 하나는 “자본은 도구일 뿐, 최종 목표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입니다. 실제로 그가 팔란티어를 비롯해 여러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창업을 주도했던 과정을 살펴보면, 당장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뒤에는 자신이 믿는 자유지상주의적 세계관을 현실 속에 구현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테크로 사회를 재설계하겠다는 틸의 사명감은, 초기 페이팔 시절부터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온라인 결제에서 은행의 독점적 권위를 깨겠다”는 도전이 결국 민간이 기존 금융 질서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실험으로 이어졌듯, 이후에는 이 영역을 국가 안보나 정부 정책까지 확장해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민간이 앞장서서 혁신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밀고 나가게 된 것이죠.


결국,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구상한 세계가 실제로 작동함을 증명하려는 과정”이라는 시각이 틸의 창업·투자 행보를 설명하는 핵심 열쇠로 거론됩니다. 페이팔 엑싯 이후 그가 이미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부를 손에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전적이고 때로는 수익성이 불투명한 테크 프로젝트에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자본주의라는 게임판을 내부에서 최대한 활용하되,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더 큰 ‘이념 실험’ 혹은 ‘미래 청사진’을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즉, 틸은 비즈니스를 통한 부의 축적이 아니라, 자신의 조직 철학, 즉 자유주의적·기술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관철하기 위해 다양한 창업과 투자를 감행한다고 보는 쪽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팔란티어가 정부·군사 분야에 성공적으로 침투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는 그 기밀주의와 독특한 기업 문화가 “돈만을 좇는 기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틸의 이념적 동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죠.


2. 그러나 단순히 아이디어의 증명만을 위해 사업하는 것이 아니다.


틸 본인은 “정부가 손대지 못하는 새로운 경제·사회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주장해왔고, 이른바 “미시국가 건설”이나 “테크를 통한 사회혁신”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는 설명을 곧잘 내놓습니다. 결국, 틸의 창업·투자 행보는 “틸의 세계관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단순히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만 움직인다는 비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가 그 이상의 동기가 있음을 암시하는 정황이 많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자유지상주의적 이념만을 강변하겠다면, 정반대 스펙트럼에 있는 사회주의자 알렉스 카프와 함께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틸은 왜 좌파 성향의 철학자와 손을 잡았을까요? 결국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상이 결합해 새로운 혁신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념적 방향성만 놓고 보면, 이 둘은 쉽게 융합될 수 없는 이데올로기를 지녔지만, 틸은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질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원칙을 보여줬다는 평이 나오죠.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팔란티어는 극좌(?)에 가까운 CEO와 극우(?)에 가까운 파운더가 손을 맞잡아, 어느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기업 모델을 탄생시켰고, 나아가 정부·군사 분야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에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사회주의자 카프와 자유주의자 틸이 모여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자, 여기까지 피터 틸이라는 또 한 명의 창업자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두 리더가, 어떻게 함께 성공적인 테크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걸까요? 과연 이들은 서로 충돌하지는 않을까요? 아니면 그 충돌을 통해 더 강력한 시너지를 낳는 걸까요?


다음 3화: “팔란티어의 조직 철학 (3) – 두 리더십의 화합과 시너지” 편에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질적인’ 두 사람이 만나 어떤 협업을 이루어가는지, 그 비밀을 궁금해하신다면, 다음 편도 꼭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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