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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란티어의 조직 철학 (3) 두 리더십의 화합과 시너

“발리노르(유토피아)로 가는 길....!!!”

(1)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는 왜 같이 일하는가?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까지 두 편의 이야기를 재밌게 봐주셨을까요?


지난 1·2편을 보셨다면,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이라는 전혀 다른 정치 이념의 두 창업자가 “각자의 이념만 관철하기 위해 팔란티어를 경영하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쯤은 이미 눈치채셨을 겁니다. 오히려, 이렇게 극단적으로 강한 이념적 지향점을 가진 두 사람이 하나의 조직을 위해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 더 큰 호기심과 의문을 불러일으켰다면, 제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네요.


이번이 팔란티어 이야기의 마지막 편인데, 지난 두 편보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 좀 더 많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피터 틸은 저서 제로 투 원을 비롯하여 대외 강연이나 인터뷰를 자주 해 온 인물이라 비교적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지만, 알렉스 카프는 공개된 정보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드러난 카프의 여러 행보나 발언을 기반으로 그의 생각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1편에서는, 알렉스 카프가 독일 유학 시절 하버마스의 비판이론 영향과 사회주의적 성향, 그리고 철학적 통찰을 통해 어떻게 팔란티어를 이끌게 되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교수님’이라는 별명 아래 직원들과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을 장려하며, 회사가 아닌 ‘컬트 조직’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내부 결속 문화를 형성한 점이 인상적이었죠. 무엇보다, 팔란티어만의 공동체적 이상과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2편에서는 피터 틸이라는 톨키니스트가, 자유지상주의적 이념을 토대로 어떻게 스타트업과 투자 생태계를 뒤흔들어왔는지를 다뤘습니다. 특히, 페이팔 마피아로 유명해진 그가 어째서 자신의 철학과 정반대 성향을 지닌 알렉스 카프를 팔란티어 CEO로 영입했는지에 주목했죠.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처럼 철학적 배경이 풍부한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가 그들에게 강한 유인 동기가 되긴 어렵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Thales)가 한때 “현실감각 없는 가난한 철학자”라는 조롱에 대해, 날씨(올리브 풍작)를 예측해 올리브 압착기(press)를 독점으로 빌린 뒤, 실제로 한 철에 큰돈을 벌어버린 일화가 대표적이죠. 사업을 정리하고 곧장 철학으로 돌아간 탈레스가 보여준 메시지는, “철학자가 돈을 벌 의향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하지만, 철학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라는 것이 철학자들의 세계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이 일화처럼, 철학자나 깊은 사상적 기반을 가진 이들에게 기업적 성취는 필요한 도구일 뿐, 목표 그 자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카프와 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도 물론 금전과 기업가로서 명예에 대한 욕구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뛰어난 경제적 성취를 이뤘었던 인물들이니 최소한 일반인들보다는 강한 성취욕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다만, 이것이 이들의 이념적인 목적보다 상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처럼 ‘철학도’ 출신이자, 서로 다른 이념(사회주의 vs 자유주의)을 지닌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이 함께 하나의 조직을 설계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단순히 정치 이념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보게 만듭니다. 물론,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른 창업자가 협업하는 사례는 전에도 수 없이 많이 있었지만, 두 명의 철학도가 이미 충분한 사회·경제적 성공을 거둔 상태에서 다시 뭉쳐서 창업하게 된 사례는 확실하게 역사상 처음 일어난 일입니다. 그만큼, 팔란티어의 목표에는 표면적 이념을 넘는 ‘더 높은 차원의 목표’가 있다고 해석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들이 석사생때 만나서 졸업하자마자 창업을 했던 것이라면 이 정도의 문제 제기에는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틸은 한번의 거대 엑싯 이후에, 그리고 카프는 이미 박사 졸업 이후 자신의 펀드를 운영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춘 상태에서 뭉쳤기에 충분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고 판단됩니다.)


저는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반드시 함께 달성해야만 했던 ‘공통의 목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마, 이들에게 각각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념 가치를 상회하는 철학적 목표를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 않다면, 이들은 뭉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들은 일반적인 철학자들처럼, 스스로의 사유를 정리하는것에서 그치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정치 활동을 하기 보다는, 조금 더 실천주의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철학적인 가치를 실현하려 했고, 이를 위해서는 반대 이념을 가진 다른 철학자와의 협업이 필수적이었다고 봅니다.


틸과 카프는 가지고 있는 이념적인 지향점 이상에 있는 철학적인 아이디어의 실현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그들은 팔란티어라는 기업을 설계했다고 한다면, 이들의 “공통된 철학”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궁금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공식적으로 이 “공통 분모”에 대해 밝힌 부분이 없다보니, 다분히 추측성 글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팔란티어에 대한 마지막 탐구에서는 틸과 카프가 공유하는 ‘진짜 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 조직을 움직이고 있는지를 좀 더 깊이 파헤쳐보도록 합시다.



(2)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의 공통점


기존 체제에 대한 회의와 재설계 욕구


알렉스 카프는 사회주의적·인문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관료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반면 피터 틸은 자유지상주의 시각에서, 정부와 전통적 금융기관이 과도한 규제를 통해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하구요. 언뜻 보면 둘의 철학은 상반되지만, 국가(또는 정부)의 기능이 완전히 온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완벽해보이는 미국 정부도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해 왔습니다. 예컨데, 1980~90년대 미국 국방 정책은 정권 교체에 따라 우왕좌왕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레이건 정부 시절 소련의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공격을 막기 위해 추진된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일명 스타워즈 계획)’는 그 시작은 거창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구체적 예산 집행이 뒷받침되지 못해 막대한 비용만 투입된 채 제대로 된 진척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SDI는 “행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목표와 방향성이 교체되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정부 정책이 정치적 계산과 대중 여론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던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죠.


전통적으로 이렇게 정부 행정 기관이 정치적 변동에 흔들리게 될 때, 민간 쪽의 카운터파트는 어쩔수 없이 끌려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방산기업들에게 최고의 고객일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A12 아벤저 II(Avenger II) 스텔스 공격기 개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미 해군이 차세대 공격기를 만들려던 야심찬 시도였는데, 여기에 이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제는 “스텔스”라는 기술 자체가 여전히 실험적인 단계였고, 당장 전력화하기 위해선 예산뿐 아니라 장기적 R&D와 안정적인 지원이 필수적이었죠. 당시의 정세를 살펴보면, 냉전이 서서히 막을 내리는 시점이었고, 국방 지출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시선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방 전략과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은 미국 정치에서는 흔한 일이었는데, A12 프로젝트가 그 희생양이 된 셈입니다. 기술 난이도가 높아 예상보다 성능 시제품 개발에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해군 내부에서는 다른 기종에 대한 수요가 생기는 등, 이중삼중으로 문제가 겹쳐버렸다는 거죠.


결국, 1991년경, 미 국방 장관 딕 체니는 “더는 비용과 시간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프로젝트를 전격 취소합니다. 이미 수년간 맥도넬 더글라스, 제너럴 다이내믹스 수천억의 예산을 투입해 노력해 왔지만, 의회와 행정부의 변덕스러운 우선순위 변동 탓에 프로젝트가 방치되거나 축소되다가, 마지막에는 완전히 무산된 것이죠. 미 해군은 사실상 완전히 시제품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거액의 예산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정부가 장기적 안목을 필요로 하는 군사·기술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정치적 논리에 따라 우선순위가 수시로 바뀌고, 대중 여론의 압박이 심화될 경우,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입니다. SDI와 마찬가지로, 정치권 교체와 의회 승인 문제가 겹쳐 대규모 국방 사업이 중단·취소되는 악순환을 반복한 것이죠.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은 이런 과거 사례를 두고, 정부가 정권에 따라 목표가 바뀌고, 대중 여론이 정책 결정에 과도한 영향을 미친다는 한계를 인식합니다. 냉전 여론에 휘둘린 A12 아벤저 사례만 보더라도 정치 권력은 선거에 의해 지속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고, 다수 여론은 편향되거나 즉흥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죠.


두 창업자가 공통으로 공유하는 결론은, “정부가 모든 영역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한쪽(카프)은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정부·국가가 본래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료화와 체계 부실로 인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보며, 다른 한쪽(틸)은 자유지상주의적 입장에서, 정부가 괜히 손을 뻗어 시장을 교란하고 혁신을 막고 있다고 파악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민간이 충분한 역량과 자율성을 갖춘다면, 정부의 핵심 기능조차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팔란티어가 안보·군사 분야에 깊숙이 참여하는 토대가 됩니다. 실제로 팔란티어는 국가가 제공하는 법적·정치적 배경(예컨대 국방·정보 계약, 규제 수준 조율 등)은 적극 활용하면서도, 특정 정권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권위와 기밀주의를 유지하고 있죠.


이들은 정부·국가의 사회적 기능을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카프는 공동체적·사회적 가치를 존중하기에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틸 역시 민간 혁신이 성과를 내려면 국가적 법체계와 시장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가 정치적 변동성에 휘둘리고, 대중 여론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면, 제대로 된 혁신을 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이에 따라, 둘 다 민간 독립 모델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팔란티어라는 기업이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변동성에 대한 불신 사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가 안보 정책이 크게 요동치는 사례는,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90년대 이후 보수·진보 정권이 4년, 8년 간격으로 번갈아 들어서면서, 외교·안보 전략이 크게 바뀐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정권 변동에 따른 대표적인 국가 실패사례로,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들 수 있습니다. 보수 정권 시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적으로 고조된 상황에서 한·미 양국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지만, 동시에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이후 정권이 바뀌고, 진보 성향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해지자, THAAD 추가 배치를 유보하는 등 정책 기조가 바뀌기 시작했고,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국에 ‘3불 원칙(THAAD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추진)’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정권이 교체되면서 우방국 전략이 크게 달라진 결과, 한국이 양측(미국과 중국)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점입니다. 미국과는 동맹 관계 유지가 시급했고, 중국과는 경제적 교류가 매우 긴밀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THAAD 배치 갈등이 불거진 뒤, 중국은 관광·한류·유통 분야에서 한국 기업을 제재하거나 보이콧하는 ‘사드 보복’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는 경제·안보적 측면 모두에서 한국 정부가 “전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기도, “외교노선을 급격히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를 보여줬습니다.


국가관과 안보관이란?


국가관은 말 그대로 국가가 가져야 할 기본 방향성, 즉 시민의 안전과 경제 발전,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토대’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어느 노선을 지지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모든 정치 세력이 최소한 공유해야 할 공통분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에 소속된 개인들에게 국방과 치안은 정치 이념을 초월하여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입니다.


팔란티어가 정부·군사 분야에 깊숙이 참여하는 이유는 “정권 교체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국가 안보정책”을 민간이 보완 혹은 재설계하겠다는 야망에서 비롯된 겁니다. 각각의 정치 이념과 상관없이, 장기적 안보 전략이 민간 독립 모델을 통해 더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믿는 거죠. 그 결과, 팔란티어는 특정 정권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법적·행정적 지원을 어느 정도 활용하는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 ‘미국 중심의 국가관·안보관’ 수호대 결성


단순히 “정부가 못하는 걸 민간이 한다”는 논리만으로, 이렇게 거대한 국방·안보 분야 사업을 운영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국방·안보 영역은 막대한 예산과 기밀 정보가 오가는 특수한 분야이기 때문에, 이를 다룰 인력 역시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동일한 국가관·안보관을 지니고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미국 중심의 질서를 존중하며, 정권 교체나 대중 여론의 급격한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보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이런 프로젝트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팔란티어가 처음부터 철저히 설계된 조직이었다는 근거가 드러납니다.


알렉스 카프의 사회주의적 성향과 피터 틸의 자유지상주의는,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이념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미국이 중심이 되는 국제 질서’와 ‘장기적인 안보·방위전략의 필요성’이라는 전제를 공유한다면, 각자의 정치 이념을 떠나서도 협력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생깁니다. 문제는, 이것을 조직 내부에 체계적으로 녹이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이죠. 단순히 “우리는 민간이 정부를 대체한다”는 구호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팔란티어는 내부 문화를 컬트적일 만큼 결속시키고, 기밀주의를 엄격히 지켜서 “이념보다 상위에 있는 조직의 사명감”을 조직원에게 부여합니다. 그 결과, 구성원들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팔란티어가 구축하려는 미국 중심의 국가관·안보관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팔란티어가 정부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인력들이 단순 고용관계를 넘어서는 “사명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념적 차이를 초월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와 시스템이 마련되었고, 그 핵심에는 “우리는 국가적 안보와 질서를 민간에서 수호한다”는 고차원적 목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목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좌·우나 사회주의·자유주의를 막론하고 참여할 수 있지만, 일단 들어오고 나면 집단적 결속과 비밀주의가 작동해, 마치 비밀 결사처럼 서로를 신뢰하고 한마음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죠. 결국, 이러한 문화가 구성원들에게 선교사적인 미션을 심어주면서,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는 “컬트적 충성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팔란티어는 다소 불안정한 ‘정권 교체’나 ‘대중 여론’의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민간 안보 집단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팔란티어를 거대한 방주(Ark)에 비유한다면,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역할도 무척 중요해집니다. 틸과 카프가 추구하는 국가 이상의 사회적 기능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에도 같은 국가관과 안보관을 지닌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란티어는 비밀 결사처럼 자체 기밀주의와 강력한 결속 문화를 강조하며, 정부 이상의 기능을 밀도 높게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좌·우 어느 쪽으로 기울어진 인물이든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이 회사가 국가적 기능을 비밀스럽게 수호한다”는 사명감에 동의하는 이들을 끌어들이고, 그들과 함께 장기적 목표를 공유하는 셈입니다.


결국, 이 비밀 결사 같은 구조와 문화는, 카프와 틸이 “정권 교체와 대중 여론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독립된 안보/사회 체계”를 만들어보겠다는 바람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리더이지만, 국가관과 안보관에서 공통분모를 찾았고, 그걸 실제로 움직이기 위해선 내부 인재들도 정치적 노선이나 개인 이익을 넘어서는 ‘팔란티어 공동체의 안전과 발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고 판단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글의 주장을 확실하게 정리하겠습니다. ;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의 목표는 “지금의 팔란티어”를 구축하는 것 그 자체에 있다고요. 각각의 독창적인 정치적 이념을 가진 두 인물들이 이념적인 가치를 양보하면서 구축하고 싶었던 것은 “이념의 가치를 내려둬서라도, 같은 국가관과 안보관을 가진 멋진 동료들과 함께 미국과 세계를 수호하는 비밀 단체 ; 팔란티어의 구축.” 그 자체에 있다는 것입니다.


알렉스 카프와 피터틸의 “공존”


그렇다면, 안보관과 국가관을 공유하는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이 어떤 형태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길래, 자유지상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융합되거나 분열되지 않는 걸까요? 저는 그 해답이 “서로의 철학을 혼합하기보다는 존중하고 분담”하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둘이 각자의 이념적 영역을 고집하면서도, 실제 업무와 의사결정에 있어선 합의와 구분을 명확히 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방식은 “너는 이 부분, 나는 이 부분” 식의 역할 분담을 통해 극단적인 이념 충돌을 회피하는 효과를 냅니다. 예를 들어, 피터 틸은 정부 사업을 따내기 위한 막대한 자본·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민간이 국가 기능을 재설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죠. 반면, 알렉스 카프는 기업 내부 문화(즉, 컬트적이고 인문학적 토론이 활발한 조직 운영)을 주도하며, 직원들이 공동체적 가치를 느끼도록 이끕니다. 이 둘이 합쳐져서 “카프와 틸이 바라는 이상 조직”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과연 왜 이러한 역할 분담이 효율적일까요? 다른 정치 이념은 섣불리 섞이면 오히려 상호 부딪히며 갈등을 키울 가능성이 큽니다. 틸이 자신의 철학을 카프에게 강요하거나, 카프가 틸에게 사회주의적 시각을 주입하려 한다면, 본질적인 대립만 심화될 테니까요. 팔란티어에서는 각자의 철학을 보존하되, 특정 영역에서 한쪽이 주도권을 갖고 다른 한쪽은 지원하는 구조를 택함으로써, “충돌을 최소화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가 가능했던 건, 설계 단계부터 존재했던 매우 정교한 조직 운영 매뉴얼과 내부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데, 틸은 기업 외부(정부·군사·투자자 등)와의 협상·계약·확장 전략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카프는 회사 내부(조직 문화·인재 운영·기술팀과의 협력)를 장악해 일종의 ‘지적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어차피 사장인 코헨이 담당할 테니까요. 이렇게 서로가 제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면, 팔란티어가 비밀주의와 민첩한 R&D, 그리고 군사 분야에서의 독점적 입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결국, 팔란티어는 돈을 벌거나 세상을 압도하기 위한 기업이 아니라, 민간이 국가·군사 분야까지 주도할 수 있다는 혁신적 가능성을 시험하는 이상 조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똑같은 이념을 가지게 된 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도록 만든 덕에, 팔란티어가 정부의 안보 업무까지 뚫고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죠.


What if.....


만약 피터 틸이 “자유지상주의적” 태도를 조금이라도 양보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거나, 알렉스 카프가 “사회주의적” 부분을 희석해 자유지상주의자가 되었다면, 팔란티어가 지금과 같은 독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두 인물이 그대로의 색깔을 유지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이질적인 재료가 만나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요리처럼, 혁신적 성과를 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팔란티어는 “두 이데올로기의 혼합물이 아닌, 공존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대립하거나 변질되는 대신, 각자 다른 철학을 존중하며 조직을 설계한 결과로 생긴 것이 현재의 팔란티어죠. 이는 극단적인 양극단 이념 사이에서 도출된 궁극의 협업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 조직을 향하여


그렇다면, 이미 팔란티어가 CIA·FBI·국방부 등 공공 영역의 핵심을 손바닥 보듯 주무르며, 미국 증시에 상장해 시가총액이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사실만으로, 이 조직이 초기 설계된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마 팔란티어의 컬트적 조직 문화에 매료되어 있는 구성원들에게는, 이것은 여정의 중간 단계 정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더욱 상위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해나가려는 의지를 품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결국, 이런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회사가 어떤 철학적 목표를 지향하느냐입니다. 단순히 “정부가 못하는 걸 민간이 한다”는 발상만으로는, 거대한 조직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팔란티어 내부의 구성원들은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유토피아(혹은 이상 조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공동된 비전을 공유하면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초월한 안보·국가관을 마음속에 품고 일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상향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조직이 단일 철학에만 봉사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사상이 공존하며 발전하는 것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팔란티어는 ‘아이디어 실험실’이자 ‘미시국가 건설 실험’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각각의 이념적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그 갈등을 없애기보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입체적 혁신을 추진해 전체 조직이 더 큰 성과와 영향력을 창출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통상적인 이상 조직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마치 배 한 척에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려던 사람들을 태운 뒤, 그중 일부가 의외로 “서로 다른 목적지를 합쳐서 더 큰 목표를 향해 항해를 하겠다”라고 협의한 셈이니까요. 그리고 그 배에 탑승하는 인원(구성원)에게는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넘어, 동일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공유하며, 정부 이상의 기능을 비밀스럽게 수행한다”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해줬습니다. 이에 팔란티어 직원들은 스스로를 비밀 결사 수호대라고 부를 수도 있을 정도로, 조직의 이상향 구현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팔란티어가 이상 조직으로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엄청난 수익이나 독점적 시장 지위 때문만이 아닙니다. 상반된 이념이 공존하면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정교한 조직 운영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 국가 안보와 군사 분야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방주’를 현실에 띄워낸 시도 자체가 주는 상징성이 큰 것이죠. 그리고 오늘도 그 배 안에서는 여전히 자유지상주의자 피터 틸과 사회주의자 알렉스 카프가 각자의 세계관을 유지한 채로, “공동의 이상을 향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3) 종론


프로도의 여정


JRR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배긴스는 호빗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던 중, 절대반지라는 위험천만한 물건을 떠맡게 됩니다. 이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그는 호빗, 인간, 엘프, 드워프 등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반지의 원정대’와 함께 고된 여정을 떠나죠. 수많은 유혹과 희생이 뒤따르는 이 모험 과정에서, 프로도는 반지에 담긴 사악한 힘과 끊임없이 맞서야 했으며, 스스로의 한계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계(인간이 사는 세계를 의미함.)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결국 사우론(악당)의 나라 모르도르까지 향해, 화산 분화구에 반지를 던져 파괴해 내는데 성공합니다.


반지 파괴 이후 프로도는 더 이상 중간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듯 보입니다. 악의 근원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는 일종의 PTSD에 시달렸고,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뒤에도 본인의 상처가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함께 싸웠던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 너머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 바다 너머에 존재하는 곳이 바로 발리노르이며, 절대반지에 의한 깊은 상흔을 치유하고자 했던 마지막 선택이죠.


발리노르는 일종의 ‘신성한 땅’으로, 엘프들을 비롯해 불멸에 가까운 존재들이 영원한 삶을 누리는 곳이라 설정되어 있습니다. 톨킨의 다른 소설인 『실마릴리온』에서 보다 자세히 언급되는데, 이곳은 발라(천사)들이 통치하며, 세상의 태초부터 빛과 평화가 충만한 이상향으로 묘사됩니다. 중간계에 사는 종족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갈망하는 궁극의 안식처이며, 그곳에 발을 들이면 보통 “늙지 않고 고통이 사라진다”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친숙하게 접해왔던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는 천국과 같은 곳으로 묘사되곤 했죠.


그러나 발리노르는 아무나 갈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엘프에게는 “본래의 고향”이자 영원한 삶의 터전이지만, 인간이나 호빗이 그곳을 찾는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프로도가 그 배에 함께 오를 수 있었던 건, 절대반지를 파괴하며 세상을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에, 중간계와 엘프 사이의 특별한 인정과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죠. 발리노르는 그런 점에서 궁극적 유토피아이자, 치열한 현실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화와 위안을 누릴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습니다.


팔란티어 = 발리노르로 가는 배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가 각각 극단적으로 다른 철학—자유지상주의와 사회주의—을 지니고도, 팔란티어라는 조직을 통해 일종의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반지의 파괴를 위한 여정을 지속하고, 발리노르로 항해하는 배를 함께 만들고 타고 떠나는 행위와 흡사합니다. 즉,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엘프, 드워프, 마이어 등)과 목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동의 큰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동시에 노를 젓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항해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자체’입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발리노르로 가는 배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결단이 필요했던 것처럼, 틸과 카프 또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철학을 가진 채로, 조직을 함께 운영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야말로, 두 리더에게 있어 가장 의미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마지막 한마디


이들이 진짜로 발리노르에 도달할 수 있을지 (즉, 국가 기능을 팔란티어가 온전히 재설계하는 미래가 가능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여정, 곧 팔란티어라는 배가 항해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는 점입니다. 프로도가 절대반지 파괴 후 얻은 상흔을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에 나섰듯, 틸 역시 페이팔의 매각 이후 얻은 자산을 기반으로 발리노르로 가는 배를 구축하여 여정을 나서고 있으니까요.


반지의 제왕에서 발리노르는 배를 타고서만 갈 수 있는 먼 미지의 땅이듯, 틸과 카프가 바라보는 새 사회 모델 또한 우리에게 낯설고 요원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항해를 함께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현실에 어떻게 안착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양 극단의 철학을 가진 이들이 협력해 ‘새로운 이상향 ; 팔란티어’를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팔란티어의 조직 철학 (3) – 두 리더십의 화합과 시너지 편을 마치겠습니다. 알렉스 카프와 피터 틸이 함께 완성해 나가는 이 조직이 앞으로 어디까지 확대될지, 그리고 “발리노르”로 가는 항해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보는 일은, 분명 흥미로운 여정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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