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문구의 중요성
오늘 교보문고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오하림 저자의 '일본광고 카피도감'. 온라인으로 주문 예정.
카피 라이팅을 더 잘하고 싶은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더불어 오늘 쓰려는 글의 영감이 된 책이기에 저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해봅니다.
홍보물 볼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홍보문구!
최근 몇 년간 여러 기관의 요청으로 홍보마케팅 강의를 정말 많이 했다. 홍보마케팅에는 여러 요소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홍보문구'라고 생각한다.
아시테지에서 일하던 시절 국제교류팀장으로 입사했지만, 홍보마케팅팀 팀장이 없었던 고로 내가 팀장 역할도 맡게 되었다. 홍보마케팅팀과 진행한 회의의 주요 안건은 '홍보문구'였다.
공연팀에게 받은 기본 자료를 분석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거나 알릴 수 있는 홍보문구를 팀원과 내가 각각 작성해오고 이를 투표에 부쳐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크로키키브라더스의 <크로키키 브라더스>는 '드로잉서커스'라는 장르를 표방했는데, 이 장르는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자료를 열심히 읽고, 공연 영상을 찾아본 이후에 공연과 장르를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공연은 재미있었고, 공연이 종료될 때는 드로잉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 구성을 의성어나 의태어로 표현하면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 생각해 '키득키득 웃고 나면 슥삭슥삭 완성되는 드로잉 서커스'라고 적었다. 회의 동안 투표한 결과, 내가 작성한 홍보문구가 최종 카피가 되었다.
앞에 슥삭슥삭이란 표현을 썼으니 크로키키브라더스의 캐릭터를 그려보는 체험을 프로그램북에 넣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것이 반영됐다.
'문화예술기획자 갈현씨' 작명을 할 때도 그랬다. 얼마나 많은 제목을 썼다 지웠다 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홍보물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제목이기 때문이다. 갈현생활문화센터가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개관 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였기에 '갈현'이라는 키워드가 두드러지길 바랐다. 그리고 갈현동 주민이 많이 와줬으면 하는 바람에 '문화예술기획자 갈현씨'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작명하느라 고생은 했지만, 프로그램명이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기에 아직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예술기획자 갈현씨 체험팀은 힐링이 필요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다음과 같이 기획했다.
아로마 향 주머니 만들기, 가향차 시음
싱잉볼과 함께 하는 명상 체험
인생네컷 사진 꾸미기 DIY
그럼 프로그램은 나왔고, 여기에 컨셉을 부여해 볼 시간이다. 여기서 나는 세 가지 프로그램에 맞춰 '역' 컨셉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했다. 은은역-잔잔역-우리역 이렇게. 역에 정차하듯이 쉬어가는 마음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기에. 여행하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래서 프로그램명도 '갈현 마음 정거장'이 되었다. 힐링을 컨셉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딱 맞는 제목이다.
홍보문구의 중요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세상에 카피를 뚝딱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나는 세상의 모든 홍보문구가 대충 완성될 수 없다는 걸 경험상으로 잘 알기에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을 마음 깊이 존경해왔다.
기자나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에도 나는 카피를 못 뽑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객관적인 평가로도 그렇지만, 주관적으로도 나는 카피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앉으나 서나 몇 날 며칠 밤새우며 고민하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고, 저작권을 갖게 되는 일도 아니기에 누가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좋은 카피가 완성되면 혼자 좋아할 뿐이었고, 어떤 예술가나 단체가 내가 썼던 카피를 다른 곳에 쓸 때도 혼자 기뻐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 예술인형축제에서 공식초청작으로 공연했던 그라운드 코모의 박정은님께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예술인형축제 홍보물에 쓰였던 홍보문구를 다른 곳 홍보물에 만들 때 참고해도 되느냐며.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놀랍고 감사했다.
그라운드 코모는 지금도 잘하고 계시지만, 앞으로 더 잘 될 것이라 믿는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비록 스쳐 지나간 사람일지언정) 감사할 줄 아는 분들이 실제로 잘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홍보물을 만들 때는 공연팀에게 받은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공연과 단체를 더 효과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문구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특히 공연예술단체는 홍보마케팅에 쓸 예산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이것이라 믿고 있다.
작품 소개 글 앞에 쓰는 홍보문구를 고심했는데 결국 "환상의 돋보기 : 달 소년의 세계, 다층적 시선으로 완성되는 마법'이라고 썼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미니어처 세트와 소형 퍼펫을 활용한 퍼포먼스이고 "관객은 확대된 영상 속 세밀한 세계와 실제 무대의 전체 풍경을 교차적으로 감상하면서, 하나의 공연을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라는 설명글이 있으니 좋은 문구라는 확신이 들었다.
강의를 할 때도 홍보문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프로젝트를 2~3줄로 짧게 임팩트 있게 소개할 수 있다면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강원문화재단 강원문화자원 활용 작품개발지원 <강원다운> 사례도 소개해 볼까 한다. 키비주얼 작업은 인볼드 스튜디오의 박기현 대표님이 해주셨는데, 우선 '강원다운'이라는 사업명이 돋보이는 서체를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9개 프로젝트별로 다른 오브제 및 색감을 사용하여 각 프로젝트의 강점과 개성을 강조했다.
나는 프로젝트의 정체성과 특징을 분명히 소개하는 짧은 분량(2~3줄)의 문구와 소개 글을 작성해 홍보물에 활용했다.
전시 <숲 : 홀로 서는 사람들>은 '자연의 숨결을 따라가며 마주하고, 발견하는 생의 본질과 의미', <무늬 깁기_살갖스밈>은 '강릉 자수와 증강 현실, 무용의 환상적 조화가 어우러진 예술작품의 국제적인 확장' , <Sunshine and Flower: 허난설헌의 시와 예술/후원의 오후햇살과 담꽃>은 '디지털예술로 메타버스에 우아하게 꽃피운 허난설헌의 생가와 작품 세계'라고 썼다.
연극 <진달래장의사>는 '공간의 변화와 함께 조명되는 3대의 삶, 세대를 초월해 전해지는 강원다운 정(情)', 연극 <호호~감자「전」>은 '감자들과 호랑이가 함께 떠나는 흥미진진한 전개의 강원 설화', 무용극 <탄광에서 추는 춤>은 '태백 출신 안무가가 고향의 잊혀져가는 역사, 탄광과 공부를 기록하는 무용극'이라고 썼다.
전시 <강원도감>은 '자연의 조화로 완성된 평화의 생태계, 예술의 본질에 집중한 여정의 기록', 전시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은 '오랜 연구와 시도로 빚어낸 도자예술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전시 <빛, 다시 찬란한 빛으로…>는 '목조구조물과 LED를 품은 도자조형물의 만남, 빛나는 폐사지의 찬란한 역사'로 했다.
AI가 글을 써주는 세상이 왔지만, 그럴수록 양질의 글을 쓰는 크리에이터의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라 믿고 싶다. 사실 모든 일의 기본이 글인데, 글의 가치를 폄훼하는 분들이 보일 때마다 많이 속상했다. 10년 전 에디터로 일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원고료가 동일한 것을 볼 때도 그렇다. 엄청난 물가 상승과 동시에 인건비도 조금씩 올랐는데, 원고료 만큼은 놀랍게도 동결되었거나 오히려 낮아졌다. AI로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 와서 그런가?
아무리 독서 인구가 줄고, 글의 중요성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글의 중요성을 아는 나는 계속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글을 쓸 것 같다. 그 고생을 알아준 한 분을 만났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글이 관객들에게 닿으리라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