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 관람기(2014년)

by 김연정

글, 사진 김연정


외장 하드 정리를 하다가 에든버러에서의 추억이 담겨 있는 사진 폴더를 찾았다. 2014년에 나는 축제 리서치 겸 협업을 논의하기 위한 미팅이 있어 에든버러와 런던에 방문했었다. 이때도 물론 일로 가긴 했지만, 늘 팀 멤버들과 함께 하던 투어와는 달리 혼자서 간 출장이었기에 색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혼자서 간 해외 출장길에서 분명히 깨달은 것은 나는 맛있는 음식이나 쇼핑보다는 예술에 탐닉하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프린지페스티벌의 공연을 오전부터 밤늦은 저녁까지 원 없이 보고, 박물관과 미술관에 들러 하루 종일 작품을 감상하는데도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런 게 일상이라면, 인생이라는 게 정말 살만할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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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 간 주목적은 페스티벌 프린지의 공연을 가능한 한 많이 보면서 좋은 영감을 얻고, 또 아티스트들과 만나서 협업에 관한 논의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국 친구가 이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를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고 거듭 이야기해서 자료를 찾아본 결과, 정말 그럴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관람하게 되었다. 나는 당시에 너무 바빠서 머무르기도 했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구매를 부탁했다. 가격은 64파운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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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는 영국군 및 해외 각국 군대와 예술 공연팀이 에든버러성의 광장에서 공연을 펼치는 페스티벌이다. 1970년대 이후로 매년 약 217,000명에 웃도는 사람들이 이 축제를 관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10년간 티켓은 매진 사례를 이루었다고 한다. 청중의 30%는 스코틀랜드, 나머지 35%는 영국, 그리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35%는 해외에서 온 70,000여 명의 관람객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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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리는 워낙 빨리 예매되기로 알려져 있어서 되도록이면 빨리 예매하는 것이 좋다고 익히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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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가보니 객석의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관람객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아서 일단 입장할 때부터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곳곳에 좌석을 안내해 주는 스태프들이 있었는데 그만큼 많은 좌석 수 때문에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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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공연 보러 가서 좋았던 경험 중 하나가 오래된 성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세트를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한들 성에 담긴 역사와 세월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재연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성을 배경으로 하는 공연을 보고 있자니, 과거로 회귀한 듯한 착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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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제의 장점도 바로 성의 광장에서 펼쳐진다는 점에 있다. 실내에서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외부 경관과 공연팀과의 조화. 그리고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와 밤을 빛내는 화려한 조명들. 웅장한 악기 소리와 공연팀의 절도 넘치는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러져서 마치 한 여름밤에 꿈을 꾸는듯한 느낌을 들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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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 있는 내내 8월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낮아서 심지어 현지 매장에서 점퍼와 카디건을 구매했을 정도로 추웠다. 이날 저녁도 카디건을 걸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워서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봤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현장을 떠나지는 않았다. 공연장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한 것이 다행이었다. 공연이 좋으면 그 여운을 더 잘 간직하기 위해서 공연장 근처를 걷거나 그 근처에 앉아서 조금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이날도 근처를 서성이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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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공연은 사람을 한데 묶어준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 왔건, 어떤 목적으로 왔건, 누구랑 왔건 간에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같이 본 사람들이 마치 친구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마법. 공연을 보기 전도 그렇고, 보고 나서도 주변 객석에 앉은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됐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기념이 될 테니 찍어주겠다고 먼저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리서치 차 왔다고 했더니 어떤 어떤 공연이 좋으니 꼭 보라고 추천해 주신 분들도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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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러 가서는 한 사람의 관객이 되었다가도 어느 순간 관객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기획자의 모습이 되어버린다. 역시나 직업병은 해외 나가서도 퇴치되지 못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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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 가시는 분들이라면, 이 축제를 놓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프린지 공연은 순전히 복불복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인지도가 높고, 유명세가 있는 공연팀이 참가하기도 하지만, 아마추어팀도 많이 참가하기 때문에 공연의 퀄리티가 극과 극을 오갈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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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마추어팀의 공연이라고 해서 다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빛나는 아이디어와 놀라운 잠재력을 갖고 있는 아마추어 팀을 만날 때, 흡사 보물이라도 찾은 양 반갑고 기뻤다. 그러나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는 오랜 역사와 화려한 볼거리로 정평이 난 만큼, 비싼 티켓 가격의 가치를 하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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