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독일 4개국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언젠가부터 블로그 유입 검색어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왕이면,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 써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중에서 '국제 교류'라는 검색어로 블로그에 많이 유입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국제 교류라는 카테고리에 입문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써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오늘은 그 이야기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사실 국제교류 프로젝트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과 더불어 믿을만한 해외 파트너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내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적어본다.
2010년, 그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2010년, 지인을 통해 '광주국제공연예술제'에서 해외 팀의 공연 운영을 도와줄 코디네이터를 모집하고 있으니 한 번 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나는 극단의 소속이었기에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극단과의 사전 협의가 필요했다. 그때는 극단의 공연이 없던 시기였고, 또 극단의 프로젝트를 광주국제공연예술제에서 실행하게 된 덕분에 나는 코디네이터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짐을 챙겨서 광주로 내려갔고, 페스티벌 근처의 숙소에서 묶으면서 해외 팀의 공연 진행을 도왔다.
나의 주요 업무는 해외 팀과 사무국 / 해외 팀과 극장 스태프와의 커뮤니케이션 / 공연팀의 의전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이 일들은 극단의 투어매니저로 일하면서, 또 의정부국제공연예술제에서 했던 일들과 비슷한 일들이어서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합작 프로젝트를 함께 할 파트너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오스모시스(Osmosis cie)의 알리 살미(ALI Samli)와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다년간 합작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프랑스의 댄스 컴퍼니, 오스모시스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질문은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공연 관계자와 미팅을 하게 되면 꼭 나오는 것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해외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 한 것으로 오해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해외에서 유학을 한 적도, 살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해외 아티스트와 커넥션을 만들기가 쉽지는 않았다. 페스티벌에서 일하면서 만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공동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광주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일할 때, 오스모시스의 예술감독인 알리 살미를 알게 되었다. 사실 축제 사무국의 직원으로 일할 때는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아티스트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코디네이터로 일할 때는 달랐다. 해외 공연팀의 최측근으로서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티스트와 친해지기 쉬웠다.
내가 그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공연을 대하는 그의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절대 그냥 넘기지 않고, 테스트를 거듭하는 그를 보면서 이런 아티스트라면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축제가 끝난 뒤에도 연락을 주고받았고, 합작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과 실행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극단의 4개국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다
본론으로 돌아가 그 당시에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이 있었는데, 세계적인 일본의 연출가이자 'SCOT(Suzuki Company of Toga)'를 이끌고 있는 스즈키 타다시(鈴木忠志) 선생님께서 페스티벌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축제의 포럼에 참여해 발제를 하게 될 예정이었다.
축제 측에서는 본래는 늘 함께 일하는 통역이 있으나, 그 통역이 다른 일정으로 선생님과 함께 광주에 올 수 없으니 나에게 통역을 해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비록 JLPT 1급을 취득했으나, 일본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본어 회화를 구사할 줄은 알았지만,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전문가의 심층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통역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포럼의 통역은 할 수 없겠노라고 고사했다. 다행히 포럼은 일본어에 정통한 교수님이 통역을 맡아주셨고, 나는 의전 통역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의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공부했습니까?
"김상은 일본의 어디에서 얼마나 공부했습니까?"
"저는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요.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습니다."
"정말? 그럼 일본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선생님과 동행했던 기획자분께서 이렇게 질문했을 때, 나는 안도했다. 당시의 내 일본어 실력은 매끄럽게 통역을 할 만큼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치고 잘하는 정도였을 뿐이지, 원어민 수준으로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스즈키 선생님은 오히려 그 점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던 것 같다. "대단하네!"라고 칭찬도 해주셨고, 또 내가 태어난 해가 SCOT가 국제페스티벌을 시작한 해와 같아서 그 부분도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셨던 듯하다. 또 포럼에 참가한 한 외국 아티스트가 영어로 질문을 했을 때, 내가 영어 질문을 일본어로 통역하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선생님께서는 영어도 가능하니 이 작업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미독일 4개국 합작으로 리어왕을 올릴 계획인데, 일본에 와줄 수 있을까?
늘 통역으로 일하던 재일교포 언니가 갈 수 없게 되면서 그 자리에 공백이 생겼고, 선생님께서는 내게 곧 일본으로 와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극단 소속이었던지라 극단의 대표와 상의 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저 웃기만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SCOT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이력서가 사무실에 빼곡히 쌓일 정도라고. 그러니 나는 운이 좋았다. 한국, 미국, 독일과 일본, 이렇게 4개국 합작으로 진행되는 <리어왕> 프로젝트였는데, 이렇게 다국적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극단의 대표님과 상의 후에 일본에 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그 이야기를 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메일을 통해 E-Ticket이 와 있었다.
연극을 위한 모든 것, 토가[利賀村(とがむら)]의 연극마을
"일본은 몇 번째 방문인가요?"
"네? 이번이 처음인데요."
"일본에서 처음 와본 곳이 토가인 거예요?"
통역으로 왔다고 하니 당연히 일본에서 유학했거나, 살았으리라 생각했던 이들이 많았다. 그곳에는 SCOT의 소속 배우들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다국적의 배우가 함께 있었다.
토가는 도심에서 꽤나 떨어진 시골 마을로 인적이 드물었고, 과연 듣던 대로 연극을 위해 최적화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숙소부터 연습실, 식당, 극장까지 모두 갖춰져 있는 데다 연습은 그야말로 매일같이 정식 공연(ほんばん)에 버금갈 정도로 쉬지 않고 이루어졌다. 이것이 바로 SCOT와 스즈키 타다시 연출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시에 찍은 사진은 핸드폰 고장으로 모두 날아가 버려서 너무 안타깝지만, 그래도 선생님께서 주신 책은 아직도 갖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2편은 다음 시리즈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