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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Dec 14. 2019

N잡에서 뺄 수 없는 업, 글쓰기

[N잡러의 잡다이어리]부업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더이상 부업이 아닌 이유 

잡지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공연기획자로 직업을 바꾸면서 한동안은 글쓰기를 게을리 했다. 물론 각종 기관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지원서를 쓴다거나, 공연 홍보를 위해 카피를 작성하고 SNS를 관리하는 일을 했지만, 그것은 온통 ‘공연’에 관련된 것이었다. 

취재와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던 일상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다시 펜을 들게 된 것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버텨야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극단에서 때로 밀리는 월급과 적은 급여의 빈틈을 채우기 위한 부업이 분명 필요했다. 그때 한 클래식잡지사에서 에디터를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아는 후배에게 전해 들었고, 내친 김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출근하지 않는 대신 한 달에 두 꼭지의 기사를 소화해내야 했는데, 클래식을 전혀 몰랐던 내게는 분명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 없었다. 자신이 없어 망설이기도 했으나, 문화예술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편집장님과 후배의 응원이 힘이 되었다. 첫 기사를 쓰기 전에 편집장님이 주신 과월호(過月號)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인터뷰 전에는 인터뷰이에 대해 정보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음반을 찾아 듣거나 실황 동영상을 찾아 보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면서 인터뷰 후 녹취한 파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받아 적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이전에는 기사에 쓸 내용 위주로만 인터뷰이의 말들을 정리해 기사로 가공했다면, 이 즈음부터는 세세한 단어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기울였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더 알기 위해서, 그리고 인터뷰의 맥락과 흐름을 보다 선명하게 보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길디 긴 인터뷰를 받아 적으면서 재차 그 사람의 말과 태도를 곱씹고, 이후 적은 파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기사의 틀을 짜기 위해 애썼다. 그러면서 기사 쓰는데 걸리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외 아티스트의 경우에는 기획사를 통해 받은 보도자료로는 부족해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자료와 이전 기사들을 번역해서 읽고 질문지를 만들었다. 인터뷰 기사를 쓸 때도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터뷰이의 새로운 면모에 대해 부각시키고자 오랜 시간을 쏟았다. 


유독 야근이 많은 공연기획자로 일하다 보니, 정작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퇴근 후 새벽이나 주말에는 글을 쓰느라 책상 앞을 지키는 날들이 많아졌다. 당시를 돌아보면 너무나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어느덧 글쓰기가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연 현장에서 일하면서 겪은 고통과 괴로움을 치유해준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한 분야에서 느끼는 상실감을 다른 분야에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너무나 힘든 순간에 잠시나마 도피처가 되어줄 다른 공간이 있다는 것이 당시에는 큰 위로였다. 


월급이 밀리고, 통장 잔고가 메말라갈 때 힘이 되어준 것도 매달 꼬박꼬박 입금된 원고료였다. 비록 소액이었지만, 다른 수익원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안도할 수 있던 나날들이었다. 


다양한 일을 하는 즐거움에 눈뜰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글쓰기 덕분이었다. 그  이후로도 소개를 통해 각종 웹진이나 사보에 기고를 하게 되었는데 스케줄이 허락되는 한, 들어오는 제안을 모두 수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 인해 쉬는 날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글을 쓰는 호흡을 잊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글을 쓰지 않으면, 허전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세계가 다가 아님을 인터뷰를 통해 배우고, 익힐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큰 행운이었다. 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잠시나마 다른 세계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에 대해 간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반짝이는 호기심과 열렬한 관심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N잡러로 일하면서 다른 어떤 일을 더 추가할 수도 혹은 내려놓을 수도 있지만, 글쓰기만큼은 절대  뺄 수 없는 업의 항목이라 확신하게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강력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진화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한 삶의 자극제로서 글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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