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아닌 내 이름으로 홀로서기

 [N잡러의 잡다이어리] 연말 일 성적표 채점기 

올해 2월부로 다니고 있던 축제 사무실을 떠나면서 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전에도 프리랜서로 일했던 경험은 있었지만, 이번은 예전과는 각오가 사뭇 달랐다. 

공연기획자라는 직업 한 개로 살았을 때도 그렇지만,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경계를 오가면서 늘 불안정한 삶을 살아왔다. 프리랜서로 비수기를 겪을 때마다 다시 구인란을 뒤적였고, 회사에 들어간 뒤에는 다시 후회하는 삶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탈피해 온전히 내 이름 만으로 떳떳이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것과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반드시 불안감을 동반한다. 퇴사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직 사이트를 다시 기웃거리게 되었고, 잠 못 드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상반기에는 의뢰가 왔던 일들이 취소되거나 변경되는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고민과 시름이 더 깊어졌다. 

그런 와중에 나를 붙잡아준 것은 여러 가지 일들이었다. 비록 안정된 수익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역할로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이 분야가 비수기일 때, 다른 분야가 성수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 한 줌 위안이었다. 

N잡러로 일하면서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해야 할 때가 많았다. 정해져 있지 않은 출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마감 시간을 지키려고 하루 꼬박 책상 앞에 앉아있던 적도 있었다. 불규칙한 일정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고, 게으름과 우울함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과한 부지런함으로 매일을 살았다.

무엇보다 1인 기업의 대표로서 ‘실무’와 ‘행정’을 다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제일 힘들었다. 당장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계산서를 발급해야 하거나, 견적서를 써서 보내야 하는 것과 같은 웃픈 상황 말이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회사의 대표로서 책임져야 하는 일도 많아지다 보니 과한 스트레스로 심하게 앓는 날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여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고, 그것들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조금씩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홀로 일하면서 맞닥트리는 외로움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해소해줄 일이 필요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워 준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컴퓨터에 앉은 덕분에 하나의 소속감을 갖게 되었고, 잡념과 두려움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019년의 마지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올 한해 내가 한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공연을 했고, 기사도 썼고, 교육도 했으며 통역도 했다. 또 국제교류 프로젝트도 했다. 단순히 수익만으로 올해의 성적표 점수를 매기고 싶지는 않다. 내가 계획한 것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여부에 따라 점수를 주고 싶다.

문득 “저도 나중에 선생님처럼 멋진 사림이 될 거예요!”라고 말해주었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인터뷰이들의 고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나도 학생들에게 약속한 것처럼 멋진 멘토로 남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년도 올해처럼 했던 일들을 할 것이고, 또 새로운 일들을 더 추가해서 할 것이다. 비록 그 안에서 취소되거나 변경되는 일들은 생기겠지만, 그 모든 위기와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