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책쓰기였다. 출판까지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는 아니었고, 내가 경험한 이야기가 과연 콘텐츠로서 가치를 어떤 가질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글감을 모으고, 책의 목차들을 하나하나 완성해가겠다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여러 일을 하는 N잡러이자 1인회사 대표로 살다보니 당장 수익이 되지 않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났다.
내 이야기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인터뷰 기사나 요청받은 기고글 뒤에 놓였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채점해보니 가장 꼴지로 면목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내 이야기'요 '나에 대한 글'이었다.
아쉽지만 실패를 인정할 시간이었다. '이 목표는 자연스럽게 새해로 넘어가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지인 분의 블로그에 '독립출판 수업' 과정이 올라온 것을 보고 바로 신청했다. 한 해를 넘기기 전에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어서였다. 프로그램명은 [힘빼고 독립출판] 이었는데 자백하자면, 이 타이틀에 강하게 끌렸다. 이런저런 일들로 부산한 연말에 힘주고 글을 쓸 자신이 없었던 까닭이다.
수업 장소는 인천문화재단 산하의 인천아트플랫폼의 공작소였는데, 이곳은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한 작가들과 시민들이 무언가 자신의 취향과 필요에 맞는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애초에 결석만은 하지 말자고 다짐한터라, 수업이 진행되는 토요일에는 아예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서울에서 인천을 오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공작소에 가면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어 좋았다. 수업의 강사인 송호 작가님의 글과 드로잉, 그리고 여러 아이디어와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한 독립출판 서적들. 그 안에 있어서인지 2시간의 수업 시간이 언제나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송호 작가님의 수업은 실질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라 더 마음에 와닿았다. 독립출판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내게는 좋은 정보도 많았고, 또 책을 완성하기까지 작가님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책을 기획하고, 목차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드로잉을 하는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누가 있어?' 라는 마음으로 완성만 하자는 결심에 부지런히 뗄감을 던져 넣었다. 미미한 화력이었지만, 목표치를 낮게 잡으니 그 불이 쉬이 꺼지지는 않았다.
올해 한 일들 중에서 가장 뿌듯한 일을 꼽으라면, 이 수업을 들은 것이다. 바쁘게 일하면서 살다보면 내 자신이 소모된다는 허탈감을 지울 수가 없다. 행여나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이 모조리 마모되는 시간이 다가올까 두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이런저런 강좌를 들으러 다니고, 독립출판 수업을 들은 것도 소모된 열정과 에너지를 새로운 연료로 채우기 위해서였다. 목표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실천에 옮기는 과정을 통해 1cm라도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 성취를 기억하며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 가득찬 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 저 사람을 물리치거나 이기겠다는 경쟁심리가 아니라, 함께 결승선까지 가야겠다는 묘한 동질감을 갖게 되니 말이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당장 수익이 되지 않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내실을 채울 수 있는 배움은 게을리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