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규 Dec 28. 2016

사이버사령부를 잡아내다

같은 곳에서 같은 공작을 펼치는 두 세력

국정원 청문회가 끝나고, 진보당의 대응팀은 공식 해체했다. 그러나 실제 일을 주도했던 허엽 보좌관을 비롯한 몇 명은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한 여러 정황들을 확인하고, 새로운 증거를 찾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정보를 공유하면서 정국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민주당 의원실에서 2명의 이름을 우리에게 넘겼다. 의원실로 제보가 왔는데 추적작업을 같이 하자는 것이다. 중요한 조사작업은 의원실 단독으로 진행하는 여의도 정가의 관행으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는데, 우리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건네받은 이름을 국정원 댓글공작을 추적할 때의 tool을 작동하여 조사를 시작했다. 대선관련 게시글을 올렸거나 댓글을 달았거나 찬반을 했다면 나중에 삭제를 하더라도 원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은밀한 공작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열쇠인 셈이다.


몇 개 자료를 돌려보니 그 2명이 댓글작업을 한 흔적이 바로 드러났다. 주목할 점은 국정원 직원들이 올렸던 똑같은 게시물도 나왔다는 사실이다.

다음에는 이들이 썼던 몇개의 ID와 같은 비번을 쓰는 여러 ID들을 찾아내고, 누구 명의로 가입했는지 확인한 후 이들이 실제 정치댓글을 달았는지 살펴서 누가 이들과 공동작업을 했는지 공작팀원들을 하나씩 추적해 들어갔다. 이렇게 찾아낸 ID가 무려 34개에 달했다.


문제는 이들의 신분이었다. 처음에는 국정원의 여러 공작팀 중 하나로 추정했다. 그런데 구글링의 결과는 놀라왔다. 34개 중 8명의 이름이 사이버사령부 전문인력 모집자 채용공고에 버젓이 올라온 것이다. (이후 추가 조사를 통해 총57개 ID, 11명의 사이버사령부 요원을 확인했다.) 군 정보기관의 대선개입을 잡아내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국정원만이 아니라 사이버사령부도 정치댓글 작업을 했다?!
댓글 수법이 같을 뿐 아니라 게시글도 같고, 비슷한 시간에 같은 사이트에 올렸다?!
선거부정이 거대하고 조직적으로 벌어졌다는 증거를 확보하니 섬뜩하고도 불길했다.


민주주의의 전제인 선거의 공정성은 이미 파괴되었다.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 관권선거이고, 박근혜는 처음부터 대통령 자격이 없었다. 박근혜 정권의 비극은 그렇게 잉태되었다.

당시에 사이버사령부의 선거개입에 대해서는 민주당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추적 중이었고, 언론에서도 탐사취재를 하고 있어 물밑에서는 상당히 뜨거운 이슈였다.


2013년 10월 14일 국방위의 국정감사 첫날 한겨레 신문의 단독기사 <군 사이버사령부도 대선'댓글공작' 의혹>을 기점으로 포문을 열어 김광진 의원, 진성준 의원 등이 국감에서 군부의 정치개입 문제를 잇달아 제기했다.
우리 의원실의 기자회견은 10월 23일이었다.


사이버사령부 소속으로 신분이 확인된 자들과 이들이 올린 정치게시글, 댓글공작 수법, 사용한 ID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사이버사령부의 선거범죄 수사와 재판을 모두 군부에서 하게되니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1심 재판에서 사이버사령부 전 심리전단장은 2년형을 받아 법정구속되었고, 사령관 연제욱은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사령관 옥도경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30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1심 공판에서 연제욱 전 사령관에 대해 정치관여 혐의를 인정해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옥도경 전 사령관에 대해선 선고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의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매일 오후 5시 자신의 집무실에서 ‘대응작전 결과보고서’ 초안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댓글작업을 직접 지휘하고 직접 수정사항까지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튿날 오전 상황회의에도 참석해 ‘대응작전 결과보고서’ 최종본을 점검하면서, 전날 수행한 작전의 승인을 비롯해 작전간 유의사항까지 당부한 것으로 적시됐다. 헌법질서를 유린한 중대범죄 혐의이고, 구체적인 사항까지 적시되어 있음에도 군사법원은 자기식구 감싸듯 솜방망이 처벌을 한 셈이다.

- 새정치 “연제욱-옥도경은 왜 솜방망이 처벌하나” (팩트TV, 2015.5.15)


연 전 사령관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사이버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사령부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준비된 대한민국 1등 대통령 박근혜 후보”, “문재인에게 속으면 대문은 북쪽으로 열린다”는 등의 ‘대선 개입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져 재판에 넘겨졌다. 2014년 12월 군사법원에서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연 전 사령관은 퇴직 뒤 현재 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 ‘대선댓글 유죄’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 윤리위 심사도 안거치고 한화 자문계약 (한겨레, 2016.4.27)



후기

게시글이 같다는 것은 결국 두 정보기관을 움직이는 공동지휘부가 있거나 최소한 연계가 있다는 것이고 이를 찾아내서 대선개입 불법선거의 전모를 파헤칠 작정이었다.


이들의 SNS를 정밀 분석했다. 다행히 댓글을 올린 장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건물주소와 댓글을 올린 컴퓨터 접속주소까지 교차 확인했다.


건물이 서울에 있어 직접 가보기로 했다. 기자도 동행을 했는데 이 건물의 위치가 그야말로 성을 방불케하는 안가였다. 들어가는 길목은 하나, 건물 뒤와 양 옆은 절벽처럼 되어 있어서 접근은 아예 불가능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이 건물이 국방부 소유가 아니라 안행부 소유라는 점이다. 며칠이라도 지키고 앉아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었다.


'수사권만 있으면 일망타진인데..'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은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2013.11.20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사이버사령부와 관련한 질의를 했다.


작가의 이전글 권은희 과장의 수사보고서를 파고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