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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식 Sep 07. 2015

글을 읽게 만드는 또 다른 재미

글에 현장감을 팍팍 불어넣어주기

내 글을 읽는 독자는 치열한 승부를 자아내는 느낌의 글을 좋아한다. 그저 그런 내용 풀이식의 글이 아닌, 취재원과 글쓴이 간 어떤 기싸움이 있었는지 궁금해한다.


분위기는 어땠고, 어떤 인사말을 했으며, 얘기가 끝나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하물며 어디에서 대화를 나눴는지도  궁금해하는 것이 독자다. 영화를 봐도, 뮤직비디오를 찍어도,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봐도 늘 그 현장에 대한 뒷이야기는 늘 독자의 타깃이다.


독자가 원하는 건 바로 현장감이다. 내가 그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어렵게 자리했다면 그것마저도 독자에겐 훌륭한 관심거리가 된다.


블로그의 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격이 없는 자유로  안에서 더욱 흥미롭고 눈이 즐거운 읽을거리가 많이 생산  있는 것이 블로그만의 장점이 된다. 로는 블로그의 글이, 같은 주제의 기사보다   팔릴 때도 많으니까.


이제 딱딱하고 획일화된 글쓰기 시대는 . 독자(사용자) 사간을 잡아두는 것이 임자고 승자다. 마치 나이키의 상대가  처럼.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내가 늘 스스로에게 강조하는 것도 바로 현장감, 생동감, 형상화다. 즉, 글을 통해서 어렵게 취재한 티를 팍팍 내는 것이다. 그것이 제품 개봉기가 됐든, 독서 리뷰가 됐든, 인터뷰가 됐든 말이다. 그렇게 글도 진화한다.



이제는   아닌 것이  것이 되는 시대


예전, 아주 예전에 '조선일보 토일섹션의 Why'에서 보도했던 강호동 기사를 기억해 냈다. 강호동과 최보식 기자 간 실랄한 현장감이 물씬 느껴지고, 기사를 문답과 설명을 함께 혼합한 점, 인기 연예인이 얼마나 섭외가 어려운지 리드문부터 팍팍 티를 낸 점이 당시 내겐 최고의 재미를 안겨준 글이었다.


내가 처음 이런 인터뷰 글쓰기 방식을 시도하고자 한 기사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조선일보 [Why]에서 최보식 기자와 인터뷰한 강호동. 2008년 1월 4일 기사다.(출처=조선일보)


방송사 간부 후배에게 '압력'을 넣고, 그 후배는 강호동에게 빌고 빌어, 넉 달 만에 성사된 인터뷰였다. 그러자 강호동은 "우하하하, 선생님"이라며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보다 더 어려운 게 스타 연예인이라고 한다. 그를 일식집에서 만났을 때 이점부터 따졌다.  


찻잔을 꿀꺽 비운 그는 슬그머니 방송 진행자로 돌아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중략)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대답을 하세요. 답을 해야 인터뷰가 진행됩니다"라고 덤볐다. 결국 "힘들어 죽겠다"고 하자, 그는 "봐요, 선생님도 그렇잖아요"라며 깔깔거렸다.


기사 인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도  아닐뿐더러, 기사 중간중간 에피소드처럼 특정 장면이나 재미있게 형상화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이것을 본 떠 흉내 내 기사 쓸 생각을 하니 취재원도 거물급으로 섭외하고 싶었다.


그렇게 섭외한 취재원이 바로 '중앙일보 고문이자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있는 이어령 선생님이었다. 그랬더니 자동적으로 페이지도 늘어나는 즐거운 참사(?)도 있었다.


어렵게 취재한 티를 내라는 말은 글의 군더더기를 쓰라는 말이 아니다. 기사에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라는 이다. 독자가 마치 옆에서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살는 것이다. 좋은 글은 그런 것이 매력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런 글을 읽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가슴이 설렌다.


독자를 기사 속으로 초대한다는 생각 가져라


수년 전 잡지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후배 기자가 특집 때문에 추운 겨울날 카메라를 짊어지고 B기자는 혼자 재래시장을 누볐나 보다. 취재 다녀온 후 유난히 볼이 빨갛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얼마나 추웠는지 한동안 사무실에서 손을 녹이고 있는 모습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다음 날 원고에는 전혀 발품을 판 흔적이 없어 아쉬웠다.


사진도 자신이 힘들게 찍어놓고는 인터넷에서 갖다 쓴 건지, 찍은 건지 아무런 설명도 없 아쉬웠다. 현장 분위를 나타낼  있는  어떤 얘기도 없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건지도 애매했다. 그렇게 추운  고생해 놓고, 고생한 흔적 좀 남기면 누가 뭐라 하나. 더 흥미롭지 않나? 생생한 체험기인데 말이다.


설명조의 기사만 잔뜩 나열한 상태이니 그 어떤 독자가 그 후배의 열의를 인정해주냔 말이다.


"생각해봐. 이렇게 마감하면 누가 A기자 메시지를 잘 알아줄까? 사진도 그 추운 날 힘들게 찍어 놓고서는 사진을 본인이 찍은 건지, 인터넷에서 찾은 건지 출처도 나와있지 않잖아. 인터넷에서 관련 사진 내려 받은 것과 차이가 없어 아쉬. 독자는 때론 오히려 별 것 아닌 것 같은 데 더 흥미를 느끼기도 해. 그러한 현장감은 A기자만이 전달할 수 있고. 나중에 이것이 전부 포트폴리오가 되는 건데   신경을 쓰면 좋을  같아.  같은 값이면 좀 더 고생한 티를 팍팍 내봐. 현장의 목소리, 본인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냄새와 목소리를 담아 보는 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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