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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식 Nov 20. 2015

집단 어리석음의 산실, '노후화 기술'을 아시나요?

시장 논리에만 입각, 자원은 한정, 모두가 공멸하는 지름길

한 때 중고차를 샀다가 순간 순간 방전이 됐던 일화를 고백한 개그맨 유상무상무상(사진=KBS 2TV '비타민' 캡처)

한 때 중고물품 구입은, 용돈을 아끼고 가계에  꽤 보탬이 되던 좋은 습관이었다. 잘만 구입하면 새것 못지 않은 만족감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직 내 장모님 댁에는 장모님이 신혼 때 쓰셨다던 한일 선풍기가 아직 돌아간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중고 물품을 사도 자주 고장 나기 일쑤였고, 주위에서도 차라리 새 제품을 제대로 사서 쓰라는 조언도 많이 받았다. 특히 모니터나 노트북, 프린터, 중고차, 세탁기, 냉장고 등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고, 딱 중고 가격 그 만큼만 사용할 수 있거나 아예 수리비가 더 드는 일도 예사였다.


개그맨 유상무도 지난 11월 19일 방송된 KBS 2TV '비타민'에 출연,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가지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내가 중고차를 한 번 구입한 적이 있는데, 그 차가 꼭 중요하고 피곤한 날마다 방전이 됐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독일의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미하엘 슈미트-살로몬의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 마라>(김현정 옮김, 고즈윈 펴냄)를 읽다가 눈길을 끄는 글을 하나 접했다. 인간은 함께 뭉치면 어리석어진다는 구절과 함께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소비사회를 지적했다.


추억의 수퍼 냉방(?)기기 한일 선풍기


그러면서 계획적 진부화라는 용어를 꺼내 들었다. 계획적 진부화? 그게 뭘까? 즉 이런 내용이었다.


이를 테면 품질보증기간이 끝나자마자 망할 놈의 기계가 수명을 다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 같은 형상의 배후에는 모든 것을 갉아먹는 '시간의 경과에 의한 손괴'뿐만 아니라 '계획적 진부화'가 감춰져 있다.


'진부하다'는 말은 넓은 의미에서 더 이상  쓸모없거나 쇠약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제품을 적시에 '쇠약해지도록' 만든다. 그 결과 구매 행위에 쾌감을 느끼는 소비자는 새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경제를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제품이 고장 나지않고 오래오래 쓰거나 중고물품 시장이 활성화되면 어떻게 될까? 판매 시장(주로 대기업)이 무너지고 수익과 노동시장, 연금제도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1924년 전구 생산업체들이 담합으로 전구의 수명을 2,500시간에서 1,000시간으로 체계적으로 낮춘 것을 보면 인간이 제품 수명을 단축시키는 작업을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계획적 진부화는 쉽게 말하면 '노후화 기술'이다. 이문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0월 30일자 경향신문의 한 칼럼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며칠 전, 안경점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20년 넘은 안경테에 렌즈를 갈아 끼우고, 안경을 새로 하나 맞추려는 참이었다. 주머니에서 오래된 안경테를 꺼내 놓았더니 안경점 주인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일본의 안경 장인이 손으로 직접 만든 명품입니다.” 그런데 일방적인 찬사가 아니었다. “안경테를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면 우리는 망합니다.” 엄살이 아니었다. (중략) ‘노후화 기술’이 있다. 지난 세기 초반, 미국 전구 생산업체처럼 제품의 수명을 일부러 단축시키는 기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고장이 나도록 해, 새 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중고차 사고 싶은데, 솔직히  배꼽이 더 클까 겁나서 못 하겠음


이문재 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광고 또한 탁월한 노후와 기술 전략이다"라며 "광고에 현혹된 소비자는 멀쩡한 제품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한 소비자가 동일한 광고 영상(CF)에 일곱 번 이상 노출되면 그 광고를 신뢰한다는 쇠를 들은 적이 있다. 교육, 의료, 관광, 문화예술 분야에도 상품 수명을 단축하는 전략기 기술이 도사리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경영적,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계획적 진부화, 즉 노후화 기술은 분명 영리한 전략이다. 제품의 빠른 생산과 함께 순환을 촉진시켜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고 돈을 돌게 한다. 기업의 성장도 돕는다.


그러나 그 기술은 기존 생산 전략 중에서 가장 하급의 아둔한 전략이다. 인간의 집단지성 결핍과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의 자원은 충분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후화 기술 덕분에 지구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우리 스스로의 목을 조이고 있다.


전구의 수명은 반영구적이다. 시간이 흘러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이유는 기업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문재 교수-


당장은 전구 수명을 단축시키고, 자동차 수명을 줄임으로써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공멸하는 길이다. 이문재 교수의 말처럼 대량 생산이 대량 소비로, 대량 폐기로 이어진다면 시장 전체주의가 지구 자원, 인류의 미래를 앗아간다.


마지막으로 이 한 마디가 떠오른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하나씩 곱씹어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연못에 있는 물고기를  남김없이 전부  잡아먹어 버렸을 때,

비로소 돈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 11월 23일 오전에 작성


아침부터 갑자기 조회수가 늘어서 확인해보니, 다음 '메인'-'브런치'에 소개가 됐네요.

앞으로도 좋은 정보 많이 주고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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