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성부 Sep 04. 2020

다이어트 알바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3-5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5. 전단지 알바(다이어트 알바)


20대 후반 나는 학교를 가야겠다 생각하고 대학공부를 조금 늦게 시작을 하였다. 공부에 공자를 모르더 내가 28살 될 때쯤 주경야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무슨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늦게라도 공부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출판사 일을 하다가 경제적인 사정으로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나는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도 학자금 대출로 학교는 등록할 수 있었지만 또다시 걸림돌은 생활비였다. 내가 서울생활을 하면서 항상 힘들었던 건 밥은 안 먹어도 되지만, 월세값과 교통비, 핸드폰비가 항상 걱정이 됐었다.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직장이 잡히지가 않아서 나는 동네에 가까운 알바를 찾거나 학교 주변에 가까운 알바를 찾기 시작했는데, 학교를 5시까지 가야 하니 여간 시간에 맞춰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정한 것이 전단지 배포 알바였다. 한 치킨집 전단지 배포였는데, 시간도 내가 아무 때나 할 수 있었어 좋았고, 내가 정해진 양만 하면 되니깐 그렇게 어려운 알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급이 너무 싸서 하루에 2만 원 남짓 벌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서는 리포트를 쓰고, 11시 정도 되면 씻고 밥을 먹고 나는 전단지 알바를 시작하였다. 동네에서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잠실본동이다 보니, 잠실동, 삼전동, 석촌동, 방이동까지 전단지를 돌면서 붙이는 알바였다. 


그런데 나는 차도 없고, 오토바이도 없어서 계속 걸어 다녀야만 했다. 책가방을 메고 다녔으니 학교를 가야 하는 책과 전단지를 넣고 다니는 종이들 하루에 500장 700장 정도 했어야 했으니깐 500장 정도 붙이면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계속 걷고 걷고 또 걷고, 전봇대에 붙이는 건 쉬웠는데 전봇대는 가게 매출과 연결되지가 않아서 치킨집 사장님은 항상 빌라나 아파트 문 앞에 붙여야 한다고 하셨다. 옛날 아파트나 옛날 빌라는 괜찮지만 요즘 빌라는 문 앞이 다 잠겨있어서 쉽게 붙일 수가 없다. 


그러면 우체통에 넣거나 스티커로 붙이면 된다. 사실 빌라 우체통에 넣는 게 제일 편하다, 스티커를 붙이면 또 스티커 띄었다 붙였다 해야 하고, 문 앞에 스티커로 전단지를 붙이면 주인아주머니에게 걸리면 혼도 나기 대문이다. 


요즘은 자석이 붙여져 있어서 아주 편하게 붙이던데 이런 것만 보아도 노동은 항상 진화한다. 전단지 알바를 하게 되면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중에 생각났던 일화가 있다. 경쟁상대 치킨집이었는데 그 치킨집 아르바이트생은 아주머니였다. 항상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다니셨고, 목에는 손수건 같은 것을 둘러메고 다니셨다. 


아무래도 땀이 많이 나니깐 그러셨던 것 같다. 그분도 거의 매일 나오셨던 것 같고 나와 동선이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경쟁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경쟁업체 치킨집이다 보니 내가 그분보다 먼저 붙여할 것 같고, 그분이 붙이지 않는 곳에 내가 먼저 도착하여서 전단지를 붙여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그분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나를 마주치게 되면 좀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니셨다. 그리고 전단지를 다 붙인 다음에 치킨집 사장님을 만나게 되면 경쟁업체 아주머니를 고자질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더 많이 붙였다고 막 자랑 아닌 자랑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순수했던 것 같다. 그분이 더 붙여도 내가 더 붙여도 전단지가 엄청난 매출을 일으켜주는 것도 아니며,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치킨을 먹을 텐데 그때는 참 전단지 알바도 목숨 걸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서 전단지가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클 것 같지 않은 골목상권에서도 항상 선의의 경쟁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가끔 신호등 앞에서 전단지를 배포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 가게에 가질 않더라도 꼭 받아준다. 그분들은 종이 한 장이 다 자기의 아르바이트비에 책정되기 때문이다. 전단지를 배포하시는 어르신들은 둘 중에 한 명이시다. 소일거리를 찾으러 나오신 분이거나 가게 사장님이다.


신기한 건 전단지 알바를 두 달 정도 한 것 같은데 배가 쏙 들어갔었다. 하루에 기본적으로 3시간 정도 걸으면 만 걸음에서 만 오천 걸음을 하게 되는데, 너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살이 많이 빠졌었다. 하지만 선크림을 꼭 챙겨 발라야 한다. 


얼굴이 너무 시커멓게 타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디 놀러 갔다 온 줄 알고 오해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나는 서울 살이를 하면서 걷는 것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힘은 들지만 무언가 얻는 것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생각정리도 잘되고, 꼭 꿈과 목표를 마음속에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 다녔던 것 같다. 


전단지 알바는 돈까지 벌 수 있는 나에게 특화된 알바였다. 간혹 친한 동네 친구도 아무런 예고 없이 만나서 편의점 앞에서 음료수도 한잔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술은 술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