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4-1
“저, 서울 올라갑니다.”
내 입에서 나온 단호한 말에 아버지 어머니는 눈만 껌뻑였다. 무슨 이야기를 잘못 들은 것 같다는 것처럼.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무언가 생각이 많은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버지가 마침내 운을 뗐다.
“네가 아무도 없는 서울에 가서 혼자 뭘 하겠단 거냐?”
나는 생각했던 말들을 꺼내놓았다. 서울에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 친구 유석이와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서 제대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것까지. 하지만 서울에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그저 무작정 서울에 대한 막연한 희망만을 품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한 번도 부자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늘 단칸방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누나가 생활을 했는데 목회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줄곧 자라온 나는, 단 한 번도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거나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늘 교회 옆에 자그마하게 낸 단칸방에서 살거나 그도 아니면 월세 단칸방에서 산 게 전부였다. 이 생활이 대단히 부끄럽거나 또 대단히 불만스럽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나의 한결 된 생각은 이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순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성인 남자 둘이 눕기도 비좁은 8평 남짓한 그 좁은 단칸방 아래 네 가족이 북적이는 모습이라니. 어쩌면 우리 가족은 이 단칸방을 떠날 수 없는 것인지. 단칸방 살이를 떠날 수 없음에. 벗어날 수 없음에.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도대체 우리 집은 왜 나아지지 않는 거지? 십 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대체 왜 변하지 않는 거야?’
그 순간 가난이 정말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다 못해 몸서리가 쳐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로 나는 굳게 결심을 하게 됐다. 일단 여기서 좀 벗어나 보자고. 지금 이 상황을 직시하지 않으면 나는 아마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고. 아무래도 강릉이라는 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무언가 내 삶은 그저 여기서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내 나이 스물넷. 그 겨울, 나는 두 주먹과 혈기만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대단한 결의를 앞세워 비장하게 도심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내게, 펼쳐진 서울의 모습은 참 거대해 보였다. 온통 높은 빌딩 숲에 둘러싸여 정장 차림의 남녀들이 오고 가는 무리들 속에 뒤섞여 있다 보니 어쩐지 나만 이방인이 돼버린 낯선 느낌. 처음 마주한 서울의 인상은 ‘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서울도 강릉 촌놈에게는 두려울 것도 없고 겁날 것도 없고. 발 뻗을 방 한 칸도 없이 덥석 뛰어든 서울이었지만 그다지 걱정이 되진 않았다. 이보다 더한 곳에서도 살아남은 나였으니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나는 다짐했다. 힘들어 죽을지언정 ‘그저 그런 서울체험’만 한 채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으리. 꼭 이곳에서 살아남으리. 반드시 내가 마음먹은 일과 꿈을 이뤄내리라.
나는 그 길로 1평짜리 고시원을 얻었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는 서울 생활을 먼저 시작한 고향 친구인 태수를 만나 일자리도 하나 얻었다. 밤새 12시간을 꼬박 일을 해야 120만 원 남짓을 벌 수 있는 호프집이었다. 이때부터였다. 내 인생 가장 시린 서울의 나날들이 예정돼 있음은.
나는 허옇게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보며 씹어 뱉듯이 이렇게 읊조렸다.
덤벼봐라! 서울, 이 시린 놈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
말해두지만 나는 절대로 안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