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5-2
나는 지하철을 자주 탄다. 특별히 지방까지 멀리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동차를 놔두고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 타는 것을 즐긴다.
지하철 안에서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을 관찰할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음악을 듣거나 인터넷 기사도 볼 수 있고 이동시간 중에 생긴 급한 용무들은 핸드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해 처리를 할 수도 있다.
이중에서도 나는,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대부분 내가 업무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 동선은 1시간 이내의 거리이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가벼운 책 한 권을 읽기에 딱 좋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일에 치여 저만치 밀어뒀던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주변에 대한 생각들도, 그리고 복잡한 생각들도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시간이 된다.
나의 이런 습관은 20대 때부터 이어져왔는데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하고 출퇴근 왕복 2시간 동안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이 어쩐지 시간을 버리는 느낌에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읽기 시작했다.
책, 신문, 잡지 등등. 이때 내가 읽은 신문과 잡지 등을 제외한 책만 따져봤더니 1년 동안 자그마치 100여 권쯤은 읽은 듯하다. 그때 내게 왕복 2시간이란 시간은 정말이지 엄청난 시간이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들은 내 삶을 바꾸기에 충분했으며 내게 처음으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꿈꿀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었던 때는 20대의 그 시절이었다. (지금은 사실 한 달에 책 한 권 읽는 것도 버겁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똑같이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을 어떻게 쓰건 그건 각자의 자유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보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 쓰는 사람도 있고. 모두들 본인들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에 시간을 투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시간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은 참 보기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 대단히 투자를 해야 할 부분에서는 크게 시간을 쓰고 시간을 애써 내기도 하지만 일상에서의 시간은 그저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친구를 통해 시간을 정말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친구와 마포 쪽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회사 일이 늦어져 1시간 정도 친구가 나를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됐다. 나는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서둘러 지하철에 올라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나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책을 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니 시간도 금세 지나가고 어느덧 내릴 역이었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접고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 뛰어갔다. 친구에게 늦어서 미안하다 사과를 한 뒤 나는 이렇게 물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뭐 하고 있었어?”
“아, 그냥 멍 때리면서 있었어.”
친구는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늦은 것이 첫째로 잘못이긴 했지만 어쩐지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 친구를 보자니 마음 한편이 편치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멋쩍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뭐라도 좀 하고 있지...”
“아 그게, 좀 귀찮아서.”
물론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건 자유이고 또 각자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개인의 선택이기에 내 방법이 옳고 그가 잘못되었다든가 왜 시간을 저렇게 밖에 못 쓸까, 라며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친구의 모습을 보자니 왜인지 모르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갔다. 친구는 당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서점에 들러 관련 책을 좀 보았더라도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던 것이다.
일상에서의 시간, 중간중간 틈이 있는 그 시간, ‘짬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는 반보 정도는 더 앞서 걷는다.
시간을 ‘잘 쓰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어떤 루틴을 만들어놓는데 이를 테면 어떤 나만의 작은 습관 같은 것이다. 그게 나처럼 지하철을 이용하며 책을 읽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날그날 떠오르는 감정이나 기억에 남는 사람, 또는 그런 일들을 기록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위해 잠깐 기도를 해도 좋고 하루에 한 번은 감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간 활용법에 대한 루틴을 아주 명확하고 정확하고 확실하게 지켜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