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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Dec 18. 2020

과거 노량진은 강남이었다.

서울 다시 보기 Re-Play Seoul 프로젝트 첫 번째 [노량진] 편

1960년대 - 1990년대 건물들

노량진을 한참 걷다 보면 삼거리가 하나 나온다. 누군가는 이곳에 잠시 멈춰 서서 어디로 갈지 고민한다. 왼쪽으로 꺾으면 장승배기, 직진하면 영등포. 어디로 가든 선택은 자유다. 돌아서 가더라도 결국 모든 길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선택은 자유롭게 하되, 이곳을 지날 때마다 시선에 닿는 지점들에 대해 한번 눈여겨볼 것을 추천한다.


왼쪽으로 꺾어 장승배기로 가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건물이다. 사실 장승배기까지 도착하는 여정에 딱히 특별하거나 흥미를 끌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곳은 세월의 변화를 크게 맞이 하지 않아 과거를 좀 짚어볼 만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도로변에는 아직도 저층의 건물들이 서로가 벽을 맞대고 의지하며 서 있다. 반은 창문이고, 반은 간판과 글씨로 가득 차 있다.


개인적으로 건축물을 볼 때 위화감을 조성할 정도로 거대하거나 중압감을 주는 정도의 스케일을 가진 건물보다는 가까이 시선에 와 닿는 오밀조밀한 건물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기준에 맞는 건물이 많아서 걷는 내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타일로 지어진, 색상도 다양한 건축물들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건물을 디자인한 사람의 생각과 의도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건물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까지도 상상해본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건물의 연식을 좀 찾아보니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양했다. 이거야 말로 건축사 박물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다만, 일부 건물은 리모델링이 되어서 겉에서 보면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것도 있다.


도로변에 있는 1960 - 1970 년대 건축물들


이 건물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변화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 주변의 동네 풍경에는 과거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과연, 여긴 어떤 곳이었을까? 절로 물음이 생겨 난다. 어떤 곳이었길래 격변의 변화 대신 물 흐르듯 시간이 흐르고 있을까?


#과거, 강남이었던 곳. 강남이라 불려졌던 곳

현재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강남은 강남구를 비롯한 서초구, 송파구 지역을 의미한다. 좀 더 넓은 지리적 의미에서는 한강의 남쪽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강남?'이라고 했을 때 주로 떠올리는 심리적인 강남의 범위는 바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인것이다.


1970년 한강 이남 지역이 개발되기 이전에 강남이라 불리는 지역은 따로 있었다. 현재의 강남은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이라 불렸었다. 과거 강남이라 불렸던 곳은 일찍이 식민지 시대 말부터 주택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주택단지가 조성되었다. 문래·신길·대방·상도동이 이에 해당된다. 그 당시 한강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고, '강남'이라는 지명을 붙여 사용했다. 해당 지역을 둘러보다 보면 지금까지도 이 지명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도동의 강남 초등학교, 대방동의 강남중학교, 조원동의 강남 아파트 등이 있고, 상도동과 가까운 노량진동에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강남빌딩,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용승인일자 : 1970년 8월 4일
강남빌딩 모습
강남 예식장,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좌) 1987년 12월 3일자 경향신문 / 우) 강남예식장 1993년 7월 31일자 동아일보
"길은 좁은데 예식장이 있어서 교통이 너무 혼잡스러운 거야. 그래서 건너편에 있는 건물을 헐고 주차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건물주가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해서 무산되어 버렸어."

- 동네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
강남 천막, 강남교회,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좌) 현재도 강남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강남 천막사 간판과  우) 강남교회 다음 로드뷰

영등포가 편입되면서 경성에 처음으로 한강 이남지역인 강남이 생겨났다. 당시 강남지역은 영등포 일대로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와 동작구이다. 경인선과 경부선의 분기점이었던 영등포역 주변은 1920년대 초부터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는 영등포 일대를 영등포역 주변과 노량진 지역으로 구분하여 영등포역 주변은 공업지대로, 노량진 주변(흑석동, 노량진동, 상도동)은 주거지역으로 개발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 입각하여 영등포역 주변에는 면방직 공장, 맥주공장, 화약공장, 벽돌공장 등이 들어섰다.

이즈음 한강 이남을 뜻하는 '강남'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영등포 일대를 지칭하는 '강남'이라는 지명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강남초등학교는 '강남'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첫 사례이다. 강남초등학교는 1941년 4월 강남 심상소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하여 현재에 이른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자리 잡은 강남교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4월 18일 월남한 젊은 의사 김재술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강남중학교는 1959년 4월 서울공업고등학교 병설로 개교하였고, 동작구 상도3동 소재의 강현중학교는 1969년 3월 개교할 당시의 이름은 강남여자중학교였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숭실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가까운 강남시장은 1층에 16개 점포가 입주한 5층 높이의 건물형 재래시장으로 1972년 5월 문을 열었다.

1975년 성동구의 한강 이남지역이 강남구로 분구된다. 강남구의 신설로 서울의 한강 이남을 가리키던 '강남'은 행정구역 명칭이 되었다. 이로써 서울의 남쪽(남서울), 영등포의 동쪽(영동)이라 불리며 특정지역과 지리적 관계 속에서 지역명이 결정되었던 강남이 서울의 부도심으로서 위상을 굳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흐른 1979년 강남구에서 강동구가 분구되었고, 1988년 1월 1일에는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독립하였다.


1936년 영등포 일대가 경성부로 편입된 이래 강남은 몇 차례의 의미 변화를 해 왔다. 강남의 첫 번째 의미는 서울의 한강 이남지역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강남은 지금의 영등포구와 동작구를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1960년대 후반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남서울, 또는 영동이라 불리던 강남의 의미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영동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반포동, 잠원동, 양재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강남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 일번지로 달아올랐다. 이즈음 사람들은 강남이라는 말보다는 남서울, 또는 영동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1970년대가 되자 강남은 더 이상 영등포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1975년 강남구를 신설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세 면제' 조처를 단행하는 한편, 사대문 안의 명문 고등학교와 국가기관의 강남 이전을 추진하였다. 이때부터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나 사용되던 강남이라는 지명이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내용 출처: 오마이뉴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CNTN_CD=A0002340425 ]


'강남'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기간이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라고 하지만 여전히 '강남'이라는 지명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는 이런 흔적들을 통해서 노량진이라는 동네를 다시 바라보고 과거에서 현재로부터 이어져 오는 현존하는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당장에 눈 앞에서 보고 있는 현재의 시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거의 연속선상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변화의 맥락은 단숨에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과거의 연결고리 사이에서 현재가 그 틈을 채우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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