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들여다보기]
아파트 1세대의 기억

by 이경민

봉천동 아카이브의 목적은 철거민의 이주로부터 시작되는 관악구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는 의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굳이 철거민의 이주 역사로부터 시작하려는 이유는 최근 봉천동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과정에서 애써 이 부분을 지우려고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이다. 관악구는 처음부터 서울이 아니었고 사람이 많이 살던 지역이 아니었다. 현재 서울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한 행정구역 확대로 편입된 곳이며, 그 본격적인 확장과 시작은 서울 도심으로부터 혹은 지방에서 상경한 이주민들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중에서도 도심 철거민들이 대거 이주해 온 역사로부터 출발한 곳이 바로 관악구다. 결과적으로 서울로 편입되기 이전의 역사와 이후의 역사를 비교해봤을 때 지역의 성격과 분위기가 바뀐 거다. 이주로 형성된 거대한 거주지는 '봉천동? = 가난한 달동네'라는 수식어를 갖게 되면서

부정적 이미지를 낳았고 그 영향력은 아직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그 흔적을 애써 없애려 행했던 첫 번째 시도는 바로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쫓겨와 겨우 살만 한 곳이 된 동네에서 또다시 누군가는 쫓겨났고, 누군가는 들어왔다. 앞선 사정을 잘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들어온 것인지 정확한 연유를 알 순 없지만 높디높은 산자락에 들어선 아파트로 들어왔다. 철거 이주민과 달동네, 재개발과 아파트.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이어지지 않는 연결고리. 사람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인 산자락에서 삶을 살아낸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 지워진 그 땅 위에 세워진 아파트에 살게 된 사람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을 그들. 그 간격에 존재했던 삶을 한번 들어보려 한다.

일러두기
1) 1999년에 봉천동 재개발 이후 생긴 아파트에 입주하여 어린 시절을 보낸 20대 여성분과 답사를 진행하였다.
2)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된 답사이므로 전달되는 정보와 메시지는 봉천동 아파트에 거주한 세대의 모든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의견은 달라질 수 있다.

철거된 땅 위에 세워진 아파트 1세대가 경험한 봉천동


특징

1) 경험하는 장소: 아파트 단지와 아파트 단지 사이를 이동하면서 존재하는 공간들에서 유희를 즐긴다. 그렇다 보니 아파트 상가와 단지 내에서 쌓은 추억에 대한 기억이 많다. 봉천동 자체에 대한 기억이라기보다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경험한 기억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 놀이터, 아파트 상가 내 여럿 장소, 아파트 사이에 존재하는 풀숲 길,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도서관

2) 중학교 때 까지는 주거지 인근 학교로 등교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다른 동네로 이동하면서 교육을 받는다. 강남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과 개별적인(부모님) 작용으로 '서울의 교육열'이라는 영향력을 일부 받는다. 제보자도 교육을 위해 강남 대치동에서 일정 기간 거주한 경험이 있고, 친구들도 대부분 관악구 내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보다는 인근에 있는 다른 지역구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고 했다.

3) 비포장길 흙 도로나 오래된 집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 존재하는 일부일뿐 의미를 부여할 만큼의 장소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동코스

성현동아아파트 -> 관악 드림아파트 -> 소슬 유치원 -> 관악 드림파 아트 상가 ->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 구암초 방향 -> 봉천역 -> 학원 -> 서울대입구역 -> 봉천 곱창 쪽 방향 원당초등학교 -> 시장 -> 브라운스톤 쪽 관서 길 -> 도서관 -> 성현동아아파트 단지 -> 상가 건물 2동 -> 놀이터 -> 뒷산 -> 넘어서 -> 상도역 -> 노량진



아파트 단지 특성


1) 임대아파트와 일반분양 아파트가 공존하지만 담벼락으로 구분되어 있는 영역성과 출입구의 위치가 다르다. 시설면에 있어서도 차이점이 존재한다. 아파트 내 상가의 규모와 출입구의 상태(?)가 눈에 띄게 다르다.

2) 놀이터 시설에 대한 법 개정으로 인해 모든 놀이터의 시설 배치나 소재의 변화가 있었다.

3) 아파트 단지 내 있던 사유지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개방되었다. (이전에는 못 들어가게 철창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다고 한다)

4) 고저의 차이로 인해 건물의 층수 변화가 꽤 있다.

- 아파트 상가 5층에서 밖으로 나가면 아파트 단지와 이어지는데 단지 쪽에서 상가 방향으로 오면 마치 1층처럼 느껴진다.

- 분명 지하 2층을 누르고 내렸지만 막상 밖으로 나오면 1층 같은 기분.

5) 동과 동 사이가 거리상 매우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담벼락으로 바로 가로지를 수 없도록 막혀 있다.

이유는 임대아파트와 일반 분양아파트와 구분하기 위한 것.



느낀 점

자료로만 접했던 봉천동의 삶은 대부분 판자촌이라 불려졌던 곳에서의 삶이었는데 아파트에서 거주했던 이들의 삶은 서로 달랐음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아파트 세대는 '봉천동'이라는 동네 자체보다는 아파트 단지 내에 존재하는 장소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재개발 초창기의 봉천동 아파트에 입주했기 때문에 달동네의 모습을 한, 과거의 봉천동의 형태가 존재하는 상태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공간이라고 하면 이해가 잘 될까? 아파트와 집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주택가. 그럼에도 기억 속에는 그 주택가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이건 아마도 어린 시절을 보낸 한 개인의 활동 범위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예를 들면 주택가에서 사는 친구가 있었더라면 혹은 활동반경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길 건너, 이곳, 저곳. 답사를 함께 진행했던 당사자는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까지 는 봉천동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고등학교 교육은 다른 지역에서 받았다. 아파트 또한 자가 소유의 어느 정도 경제력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당사자의 경험과 기억에 봉천동의 과거와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험을 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봉천동의 과거'는 좀 추상적인 표현이긴 한데 간단히 말하면 '이주민의 삶' 을 상징한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이주민이거나 이주민과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봉천동이 변화하는 과정을 경험했거나 하는 것들의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시간들을 말한다.


같은 봉천동에 살아도 다 다른 삶을 사는구나.
근데 언론이나 사람들의 인식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이 존재하는 곳이 봉천동.
그래서 해당 구에서는 이미지 메이킹에 매우 적극적인 편

조건의 차이
1) 거주공간 : 아파트 or 주택(다가구, 다세대, 단독)
2) 거주지역 : 구 봉천1동 ~ 구 봉천 11동 (현재는 행정동 변경되었다.)
3) 부모님
- 타지에서 상경 / 타지에서 이주
- 봉천동 토박이
4) 거주형태와 기간
- 자가
- 월세 / 전세 (계약기간 존재, 이사 가능성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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