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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Aug 13. 2018

[501번 버스] 국제극장과 광화문빌딩

그때 그 극장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영화 보러 가자!

종로 3가를 천천히 걷다 보면 뛰엄 뛰엄 이긴 해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길목에 영화관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익숙한 듯 낯선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구) 허리우드 영화관 자리에는 노인전용 영화관인 실버 영화관이, 구) 피카디리 극장은 CGV 피카디리 1958, 바로 맞은편에는 1907년 최초로 민간인이 설립한 실내극장 단성사가 단성 골드 주얼리센터 건물로 재탄생, 지하 2층에 단성사 영화관이 생겼다.

1980년대 허리우드 극장, 사진출처: 장기명 브런치
종로3가 탑골공원, 인사동과 연결되는 낙원상가에 있는 허리우드클래식
1960년대 피카디리 극장, 사진출처: 씨네플레이
CGV 피카디리 1958
1907년 단성사,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단성골드주얼리센터의 단성사

단성사가 있는 곳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메트로 -> 세기-> 서울'로 상호가 여러 번 변경된 서울극장도 있다. 소개된 모든 영화관들은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기존에 있던 건물이 철거되거나 비슷한 듯 다른 상호를 사용하거나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 이 때문에 예전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순 없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줄 뿐만 아니라 한 자리에 머물며 각자 자신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많던 극장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산 예약시스템이 되어 있던 게 아니니깐 영화 보려면 줄을 서야 했어요. 피카디리극장에 새벽 5시쯤에 왔는데 이미 100명이 넘게 줄을 서 있어서 여기서 못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거기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하는 수 없이 세종대로에 있던 국제극장으로 갔었는데 거긴 다행히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거기서 봤어요."


지인에게 들은 경험담은 그 당시 사람들이 종로의 영화관을 얼마나 많이 이용했었는지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종로에만 극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종로와 가까운 을지로 국도극장, 충무로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는 국제극장, 시네마, 아카데미 극장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 많던 종로/광화문/충무로 극장들이 어디로 갔을까?

을지로 국도극장
국도극장 바로 옆에 있던 명보극장
명동코리아 극장
명보극장 근처에 있던 스카라극장

 *사진출처: 모두 다 보물섬 블로그


1990년대 중반부터 영화산업이 점차 커지면서 충무로에 있던 많은 제작사들이 서울 강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함께 대형 영화 유통사가 멀티플렉스를 늘려갔고, 관람객 발길이 줄어든 충무로와 종로 일대 영화관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현재 남아 있는 영화관들도 사실상 따지고 보면 상호만 남아 있을 뿐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다. 이외에도 광화문 세종대로에도 극장이 있었다.

철거된 국제극장 대신 고층 빌딩

501번 버스는 종로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서울신문사 앞 정류장에 멈춰 선다. 이곳에 내려 맞은편을 바라보면 코리아나 호텔과 광화문 빌딩이 보인다. 광화문 빌딩이 선 자리에는 과거 국제극장이 있었다. 1957년 9월 28일에 국제문화관으로 개관했다가 2년 뒤 1959년에 국제극장으로 운영되었다. 도시계획을 감안하여 임시 가건물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설계 기법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한 건축물이었으며, 극장 앞에는 넓은 광장과 대형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고급인력들이 국제극장 직원으로 채용되었으며 상주 인원이 50명에 다다랐다. 훗날 광화문 도심 재개발 정책에 따라 1985년 4월 14일 폐관하고 철거되었다.

현재 동화면세점 자리에 있던 국제극장

건물은 철거되었지만 혹여나 그 당시를 짐작해 볼 만한 흔적이 남아 있는 건 없는지 궁금해서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넓은 공간에 배치된 조형물과 벤치가 있었고, 그 앞쪽으로는 관광 안내소와 서울 시티투어를 포함한 버스정류장이 전부였다. 누군가 '여기에 국제극장이 있었다'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전혀 모를 정도로 싹 지워졌다. 애초에 도시계획을 감안하여 가건물로 지은 건물이었지만, 앞쪽으로 광장과 분수대까지 있었으니 눈에 띄었을 거다. 더군다나 설계 기법이나 부수적인 조형물, 대규모로 채용된 직원 수 등 예상 외로 부수적인 부분들에 신경을 쓴 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현재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광화문빌딩도 눈에 띄기는 마찬가지다.

광화문 빌딩에는 동화면세점, 롯데관광, 주 한국 타이베이 대표부, 터키항공 서울사무소 등 다양한 기업들이 입주해있다. 내부로 들어가서 용무를 본 적이라고는 은행 업무뿐이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면세점이 있다 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앞, 뒤, 좌, 우 모두 똑같은 형태인 직사각형 건물,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소 밋밋한 부분이 없지 않아 존재한다. 일정한 형태와 크기로 직사각형 상자를 띠로 둘러싼 듯 무한 반복되고 있는 창문들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한 느낌마저 든다.(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니 오해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한 고층 빌딩 안에 여러 회사가 모여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은 한정된 도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매우 좋은 방식이다.


만약, 이 자리에 국제극장이 종로에 있는 다른 극장들처럼 여전히 남아 있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국제극장 또한 멀티플렉스라는 변화의 흐름을 맞닥 뜨렸겠지만 오피스 건물이 있는 것과 문화 공간인 극장이 있는 건 애초부터 성격이 다르니 지금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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