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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Aug 01. 2018

[501번 버스] 상도터널과 수도산

터널을 지나가면 무엇이 나올까?

한강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을 잇는 것이 '대교'라면 산을 경계로 막힌 동네를 서로 연결하는 것이 바로 '터널'이다. 먼 거리를 운행하는 고속버스를 탈 때를 제외하고는 터널을 지날 일이 별로 없던 나는 서울에 살게 되면서 501번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일상에서 수도 없이 터널을 통과했다.


잠시 후 터널을 통과하오니
창문을 닫아 주세요.

익숙치 않은 방송이 나올 때 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사람들이 창문을 닫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창문을 닫았다. 터널 안을 달릴 때는 불안한 마음에 '언제 터널 끝에 닿을까' 하며 목이 빠져라 앞만 바라 봤다. 낯설고 불안하기만 했던 순간들이 어느 샌가 일상에 젖어 들어 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창문을 닫고 창 밖을 바라보거나 원래 하던 일을 계속 하는 익숙한 순간이 되었다.  

501번 버스가 지나는 터널은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상도터널로 1981년 한강대교 확장공사가 진행되면서 준공되었다. 동작구 상도동, 사당동 지역과 본동을 연결하며, 터널을 지나면 곧장 한강대교로 이어진다. 상도동에서 한강을 건너려면 노량진을 돌아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1982년 상도터널(한강대교->상도동 방향) 과 인근 동네 모습/ 사진출처: 인스티즈

사실 상도 터널에 눈길이 간 건 최근 일이다. 관심이 갔던 건 오히려 터널을 통과 하기 직전 상도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집들이었다. 버스가 터널에 진입할 때 까지 내 관심은 온통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또, 터널 옆, 위쪽으로 자리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처럼 애초에 '터널'자체를 면밀히 살폈다기 보다는 주변을 관찰하면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공간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 보다가 자연스럽게 터널로 연결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기획 했던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에 다소 부합하지 않는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지 넣은 이유는 501번 버스가 지나는 노선에 위치한 유일한 터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터널이 통과하는 일부 구간에는 흑석동 수도산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수도산에 관한 정보는 거의 찾을 수가 없어서 지도로 존재 유무를 확인하고 직접 가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상도터널에 산을 통과하는 구간이 있다.
상도터널 내부를 걷다

버스를 타고 터널을 통과할 때 마다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터널 내부에 있던 인도였다. 터널 내부의 먼지가 들어 오지 않도록 창문을 닫으라고 그렇게 방송을 내보내는데 정작 터널 내부에 사람이 걷는 인도가 있다니 참 아이러니 했다. 그럼에도 터널을 지날 때 마다 걸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미세먼지로 매일 떠들썩 했던 3월이 지나고 오랫만에 맑은 하늘이 짠 하고 등장했던 날, 과감히 걸어 보기로 결심했음에도 망설여 지는 건 사실이었다. 터널 앞에서 안절 부절 못하고 있던 찰나에 맞은 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는 큰 용기를 얻어 곧장 걸어 들어 갔다.

터널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
차가 지나가는 도로 바닥에 적힌 문구 '안전거리 유지'

터널 안은 생각 했던 것 보다는 갑갑하지 않고 괜찮았다.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차가 지나가는 도로와 인도 사이에는 큰 유리로 된 창문들이 설치 되어 있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걸으면서 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동시에 같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인도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벽면에는 '자전거 탑승금지'라고 적혀 있었다. 자전거를 타지 말고 끌고 가라는 말을 덧붙여서 함께 말이다. 자전거를 타던, 끌고 가던, 중요한 건 좁은 통로였다만약, 동시에 각각의 두 사람이(도보로 가는 사람과 자전거 이용객) 지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정면도 아닌 사선으로 비껴서서 한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잘 보이게 LED조명으로 된 소화기 간판
평소보다 더 큰 비상구 표시

가는 길 내내 벽에는 비상구와 소화기 간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형태의 간판들이었다. 그 때문에 오고 가는 사람이 없어도 지루하진 않았다. 한 15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터널 끝에 다다랐다. '생각 보다 걸어 보니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과 동시에 터널을 통과하자 마자 한강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터널을 건너기 전에는 7호선인 상도역이 있었는데 통과한 뒤에는 9호선 노들역이 있다니. 그렇게 터널은 동네와 동네를 연결하고 있었다.

상도터널은 쌍굴의 형태를 하고 있고, 상도동 쪽보다 한강대교로 넘어가는 방향의 기울기가 더 낮다. 지도에 찍혀 있던, 상도터널이 통과하는 수도산은 어떤 산일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 봤지만 보이질 않는다. 대신에 상도동 방향에서 위쪽으로 올라가 봤는데 오르는 길 또한 차가 지나 갈 수 있도록 도로가 깔려 있었고 그 옆으로 좁게 나마 인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터널이 뚫려 있다 뿐이지 상도동의 일부 동네였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놀랍게도 古 김영삼 대통령의 사저가 나온다. 날이 더워 가는 길을 되돌아 왔지만, 날이 선선해 지는 가을이 오면 산책 삼아 다녀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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