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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30. 2018

[501번 버스] 피맛골과 D타워

사라진 피맛골과 재해석된 피맛골 사이에서

여기가 피맛골이었어

평소 광화문에 오면 교보문고를 시작으로 청계천 주변, 서울시청, 서울역사박물관, 경복궁 등등으로 뻗쳐 사방팔방으로 돌아 다닌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오거나 명동이나 서촌 혹은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광화문 인근에서 밥을 먹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니 없는 것 같은게 아니라 없다. 왜 그랬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밥을 제때 챙겨 먹는 사람이 아닌지라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크게 영향을 주었을테다. 광화문 특성상(주거지역이 아닌 오피스사무실이 몰려 있는)인근에 있는 가게들이 주말 낮에 영업하는 곳이 별로 없는 것도 한 몫을 했다그렇게 나는 광화문을 벗어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여 굶주린 배를 채웠다.

종로 피맛골을 접하게 된 건 광화문에 있는 회사에 (정확히 말하면 청계천 바로 앞쪽)출근하면서 부터다. 점심시간 때 잠깐 들린 건물 안에 엄청  많은 음식점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세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건물은 건물대로 있었고, 지하에도 아케이드라고 해서 음식점만 모여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종로에 있는 맛집을 몇 군데알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는 이곳이 피맛골이었다는 걸 몰랐다는 사실이다. 처음 알기 시작하게 된 건 골목탐방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골목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다큐3일을 통해 피맛골이 있다는 것도, 밥을 먹으러 종종 들리던 그 건물이 바로 그 자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방송이 나간 그때는 이미 피맛골은 재개발 대상지로 확정되어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한 상태였다. 그래서 재개발이 되기 전의 피맛골의 모습과 이곳 상인들이 어떻게 장사를 하고 삶을 일구어 나가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에 편집된 부분들이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피맛골에 발길을 들이는 손님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애정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피맛골을 자주 찾는 이들은 오랜기간 추억을 쌓은 공간을 보내기 아쉬워 했고 못내 그런 감정들은 재개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 받는 대화 중에 표출되었다. 재개발을 해서 환경적으로 나아졌으면 하는 의견과 지금 모습 그대로 두었으면 의견으로 갈라졌지만 피맛골을 애정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같다. 그 어느 쪽도 가볍다 말할 수 없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없다. 

누군가는 사라지기 전  피맛골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고, 또 어느 누군가는 어릴 적 자신이 살던 집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사무실을 얻어 일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살던 집을 그리워하며 없어지는 날까지 계속해서 찾는다. 이 모든 행위들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의도치 않은 단절로 인한 것이다.


빌딩 숲, 사이에서

지금의 피맛골 자리에는 거대한 고층 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식으로 해석하여 그 흔적을 남겨두었고 몇몇 식당은 이전하지 않고 신축된 건물 안에서 남아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지만 예전의 그 분위기는 나질 않는다. 또 피맛골 인근에는 조선시대의 거대한 시장 상권이 형성되어 있던 자리였다. 고층빌딩을 짓기 전 그러한 흔적들이 발견되었고 일부 유리막으로 막아 남겨 두었다.

피맛골의 본격적인 시작은 르미이에르 빌딩부터고 그 앞전의 D타워와 뒤쪽 그랑서울은 창진동 일대 시장 터다. D타워는 아래쪽에는 런던의 소호거리를 딴듯 '소호'라는 이름을 붙이고(의미는 전혀 다르다. 여기서 소호는 작은 즐거움이라는 뜻) 피맛골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도록 길을 열어 두었다. 하지만 스타벅스 카페가 1층에서 2층까지 고개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위치에 있으며 다른 동네에서도 이미 유명한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리김밥,벤스쿠키,로라방앗간, 연남빠니니. 최신 트렌드 음식점이 다 모여있지만 왠지 아쉽다. 이곳에 자리한 가게들은 꼭 여기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는 곳들이기 때문에 시간 내서 일부러 찾아올 이유도 없다. 분위기도 다소 딱딱한 느낌이 없지 않아 흐른다.


과거와 현재를 찾다

피맛골을 직접 경험해 본 건 아니지만 영상 속에 나오는 모습만 봐도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좁지만 연결된 길이 피맛골의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현재는 고층빌딩 사이로 반듯하게 깔린 길이 뭔가 맥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다.

안쪽에 자리한 가게들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기 보다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개별로 존재하는 마치 큰 상자에 끼워넣은 각기 다른 블럭 같았다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나름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가게들도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D타워에서 르미이에르를 지나면 그랑서울 아래에 위치한 '청진상점가'가 나온다. 왠지 모르겠지만 D타워에서 그랑서울 방향 쪽으로 갈 수록 인적이 줄어드는데 이곳은 무색할 정도로 한산하다.

상점이 없는 건 아닌데 구간이 다소 짧다. 끝 지점엔 분명 빽빽하게 칸을 채우고 있는 간판이 있지만 몇몇개를 제외하곤 보이지 않는다. 상점가에 해당되는 가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비밀은 지하에 있다대부분 그랑서울 지하1층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피맛골은 이 구간에만 있는 건 아니고 종로1가에서 
종로3가까지 이어져 있다. 다만 D타워, 르미이에르, 그랑서울이 있는 종로1가에 있던 피맛골이 재개발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건물 사이를 걷다보면 군데 군데 가게들이 남아 있는 곳도 있어서 이곳이 피맛골이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중에서도 D타워

피맛골의 본격적인 시작은 르미이에르 빌딩 부터이지만 정작 내 눈을 사로 잡은 건 D타워였다. 위치적으로 가장 앞 쪽에 있어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도 있지만 건물 자체로만 봐도 눈에 확 뛰었다. 각각 똑같이 생긴 건물이 두개씩 있었지만 그랑서울은 다른 고층빌딩과 비슷하게 통유리였고, 르미이에르는 위층이 오피스텔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느 오피스텔과 다름 없었다. 즉 두 건물은 기존의 형태나 디자인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D타워는 전반적으로 아주 작은 크기의 창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자체적으로 형태가 구분이 되어있다. 창이 너무 작아서 답답하지는 않은 건지 다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그건 사용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하실테니깐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밤에 이 건물을 보면 저 작은 창문에 불이 켜져 마치(약간 오버를 하자면) 별이 빛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건물 자체를 칭송하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D타워에는 지인과 밥을 먹으러 딱 한번 들어가봤는데 생각보다 비쌌고 사람이 많아서 그냥 나온 기억이 있다. 사실 이 경험만 놓고 보자면 좋은 기억은 아닌데 나란히 선 세 개의 건물만 놓고 보자면 D타워를 우선 순위로 둔 이유에는 아무래도 이목을 끄는 외양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는 것 같다. 평평한 바닥에 상자를 차례대로 쌓은 모양새는 마치 블럭놀이를 하는 거인을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아직 윗층에 올라가보진 못해서 못내 아쉽긴하다. 그래도 인상이 강한 사람이 기억에 남듯이 건물도 마찬가지로 인상이 강한 건물이 머리 속에 새겨지고 잔상도 오래 남는다.

이번을 기회로 종로1가 혹은 광화문 인근에 오게 된 다면 세개의 건물도 비교해보고 피맛길에 들려서 음식도 먹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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