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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24. 2018

[501번 버스] LS용산타워와 그 옆

용산타워 바로 옆에서 벌어진 용산참사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늦은 새벽녘, 도심 속 환하게 빛을 발하던 건물. 잊을 수가 없다. 불이 켜진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건물을 짓고 난 뒤 조명이 잘 들어오는지 테스트를 하려고 일부러 켜둔 건지 알았다. 빛이 건물을 뒤덮고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 층에 다 불이 켜져 있었다. 혹시 그날만 그랬던 걸까. 며칠 후 비슷한 시간대에 또 다시 건물 앞을 지나쳤는데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시간대는 어떨까? 그땐 왜 불이 켜져 있었을까? 이 건물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프로스펙스를 만든 국제그룹의 사옥

그렇게 내 눈을 사로 잡은 건물은 다름 아닌 LS 용산타워다. 건물 상단부에 LS라 적혀 있어서 당연히 LS전산 본사 사옥인줄 알았는데 사옥은 안양에 있고 네트웍스만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정확한 명칭은 LS용산타워였다. 왠지 모를 존재감에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이곳은 1980년대 대기업으로 이름을 날린 국제그룹의 주력회사 국제상사의 건물이었다. 국제그룹은 고(故) 양정모 회장이 1947년 부산에서 창업한 회사다. 초창기 고무신 생산 업체로 시작한 국제그룹은 이후 중화학·섬유·건설 등에도 진출하며 1980년대에는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발브랜드 프로스펙스를 만든 회사가 바로 국제상사. 대기업 반열에 올랐음에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전두환정권 당시 정치자금을 적게 내 미움을 사게 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이던 제일은행이 ‘국제그룹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룹이 해체되고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국제상사는 한일그룹에 인수됐으며 국제센터빌딩도 같이 넘어갔다. 1998년에는 한일그룹도 부도가 났고, 이후 2002년에는 이랜드가, 2006년에는 LS그룹이 인수 받아 2007년에는 LS용산타워로 이름을 바꿨다.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낸 LS용산타워 건물은 1984년에 지어진 것으로 그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용산에 가장 주목 받는 건물이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변화한다

도로에 면한 건물의 앞쪽 단면이 다소 단조롭다고 느끼고 있었을 쯤 사진을 찍기 위해 근처에 있는 육교로 올라가 LS용산타워를 봤는데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육교 위에서는 건물의 정면이 아닌 측면 즉 옆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모양은 마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악어를 떠올리게 했다. 원래는 사진만 찍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제대로 봐야겠다 싶은 마음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앞면과 뒷면은 비슷한 듯 다르게 평평한 모양이고옆은 계단모양에 아래로 내려갈 수록 좁아진다. 측면 모서리 부분은 접힌 책처럼 각이 꺾여 있다. 표면은 비교적 매끈매끈한 재질로 되어 있고 앞, 뒤, 옆에서 보는 느낌이 다 달라서 건축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흥미를 주는 건물이다. 이쯤 되면 실내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해진다. 외형의 모양새를 따라 얼마나 잘 활용되고 있는가도 건물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유용지물이 될지 무용지물이 될 지는 공간의 활용도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저 계단부분. 궁금하다.

화려한 이면에 가려진 용산참사

평소에는 잘 몰랐었는데 건물 가까이에 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인근에는 오래된 저층 건물이 군집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고, 뒷편에는 가려져 있어 몰랐던 먹자골목도 보였다. 주차장, 모델하우스, 공사현장, 고층아파트. 50m 안되는 짧은 길을 걸으며 마주한 수 많은 장소들은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그 자리에 있었고 서로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섞여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어도 불현듯 떠오르는 사건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장소였다. 맞은 편에 보이는 용산역이 생각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그 바로 옆에 LS용산타워 건물이 있다. 왠지 모를 숙연함에 발걸음이 느려졌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람이 여럿 목숨을 잃었지만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고 한동안 그 자리는 주차장으로 사용되다가 2016년이 되어서야 공사가 시작되었다


모델하우스는 철거 되지 않고 남아 있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여전히 주차장으로 쓰고 있고 인근 건물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이 주변에서 담배를 피운다. 마치 그런 일은 애초에 일어난 적 없다는 듯 일상을 보낸다. 나 또한 용산참사를 들어만 봤지 직접 보진 못했다. 하지만 유유히 떠다니는 묘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 돌았다.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선 전혀 느낄 수 없던 감정과 생각들.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장소들과 그곳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이 화려한 LS용산타워의 이면에 가려진 채 검은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또 다시, 무너졌다.

얼마 전 용산의 무허가 건물이 무너졌다. 무심코 들은 소식이라 정확한 장소가 어딘지 알지 못했지만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인근에 볼 일이 있어 다시 LS용산타워 근처에 왔다가 우연히 사고 장소에 닿았다. 새로 들어설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바로 앞쪽에 있었다.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가?' 싶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법한 분위기였다. 솔직히 나도 근처에 언론사 차량이 주차된 것을 보고 나서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으니. 고층빌딩이 주변을 둘러 싸고 있어 그만큼 장소적으로 괴리감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 전에도 이랬을까?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장소 인근이자 현재 건물이 무너진 장소 주변이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슴 아픈일을 다시금 들춰내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찾아봤다.)

*사진출처: 리서치뷰

용산참사가 일어난 장소는 용산4구역인데, 그 인근에는 여전히 오래된 저층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얼추 그 당시 모습들을 유추해볼 수 있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세번째 사진을 보면 남일당 건물 뒤쪽으로 LS용산타워건물이 보인다. 그 당시에는 고층으로 뻗어나간 건물이 LS용산타워와 뒤쪽에 보이는 용산 센트리울 아스테리움 정도 였기 때문에 용산4구역의 범위가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현재는 LS용산타워 옆과 앞쪽에 또 다른 고층빌딩들이 생겨나면서 그런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이곳을 지날 때마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든다. 용산이라는 구역은 서울의 가장 한 가운데위치해 있지만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미군들에 의해 접근이 제한되는 유일한 곳이다.한국인이 한국에 있는 땅을 자유롭게 쓸 수 없을 뿐더러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는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드러난다. 고층의 고급 빌딩·아파트거나 오래되어 낡아 있는 저층 상가 건물이거나. 용산4구역 맞은 편에는 용산역이 있어 자연스럽게 기찻길이 존재한다. 기찻길 주변으로는 오래된 주택과 건물들이 모여 동네를 형성하고 있지만 주변부로 고층빌딩들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고 언제 또 다시 재개발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무허가 건물이나 낡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고층빌딩이 들어설 수도 있다.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보수공사를 하고 싶어도 안전등급을 받기가 힘들고 공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 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이번 일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궁금증의 시작은 LS용산타워 였지만 인근의 지역적 특성에 의해 용산참사 사건과 연결이 되었다. 1905년 일제의 병참기지화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던 땅인 용산의 특성이 현재 LS용산타워가 있기 까지의 과정을 통해 잘 드러난 것 아닌가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본다.

(참고로 LS용산타워와 용산참사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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