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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20. 2018

[501번 버스] 화신백화점과 종로타워

종로를 상징하다.

내게 너무나 먼 존재, 종로타워

시원하게 달리던 버스는 복잡한 종로로 들어섰다. 창 밖으로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과 길 양 옆으로 선 고층 빌딩이 보였다. 그 사이로 위화감과 위압감을 동시에 주면서 시선을 사로 잡는 건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종로타워였다. 건축설계 하는 사람들에게나 익숙할 법한 모양새는 "건물의 모양은=네모"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던 내게 굉장히 파격적으로 다가 왔다. 뭐랄까 공간이라는 것은 용도를 설명하기도 전에 시각적인 측면에서 가장 먼저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공간적· 감정적 영향력이 훨씬 더 클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타워의 용도가 무엇인지 짐작 조차 힘들어서 한참이나 올려다 봤다. 건물의 기본 골격이 철로 되어 있어서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했던 것처럼 종로타워도 무엇인가로 변신할 것만 같았다. 중간 부분에 있는 유리창문이 커다란 전광판 처럼 작동하여 글씨가 나타나거나 화면이 떠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는, 옛날 만화영화에서 봤을 법한 장면을 잠시 상상 해보았다. 밤에는 막 -응? 막 - 레이져 쏘고 그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상상은 자유니깐)

서울 시내와 가까운 거리, 어딜 가더라도 종로타워가 보였다. 한번은 서울대학교병원 본관이 있는 연건동 언덕을 올라 먼 발치에 있는 서울의 도심부를 바라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가장 먼저 시야에서 보이던 것이 바로 종로타워였다. 그럴 때 마다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곤 했다. (상상은 자유니깐2)

매일 매일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종로타워의 뒷모습은 어떨까? 매번 도로변에 맞닿은 면만 보다가 뒷면이 궁금해서 한 바퀴 돌아 보았다. 뒤쪽은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고 유동인구도 적어서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앞, 뒤가 똑같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깐.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 것보다 거부감이 드는 모양새로 서 있는 종로타워모습에 좀 더 시선이 빼앗거 버렸으니. 지하 6층에 지상33층. 층수가 높은 탓에 건물을 보는 내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보면 볼 수록 위압감은 거세게 증가했다. 밖은 이렇게나 거부감이 드는데 과연, 종로타워 안은 어떨까?

사실 종로타워 지하층은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출구와 가까이에 있어서 굉장한 익숙한 공간이다. 그 반면에 지상층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심지어 올라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마음을 먹은 적도 없었다. 분명 같은 건물인데 말이다.

지인이 말하기를 가장 꼭대기층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손꼽히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했다. 내게는 데이트 장소로 이곳을 이용하는 것 보다 종로 한 복판에서 서울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많이 알려진 남산이나 낙산공원, 한양도성의 성곽에서 바라 보는 풍경 말고, 도심 속 고층빌딩에서 바라보는 풍경말이다. 같은 서울이지만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다.

작년 여름엔 우연히 명동 롯데백화점 근처에 있는 고층빌딩에서 서울 도심의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근에 있는 다른 고층빌딩들 때문에 시야가 막혀 있었다. 결국, 아래쪽을 내려다 보며 사거리를 지나는 수 많은 차들을 바라 보는 게 다였다. 종로타워 주변에도 고층빌딩이 있긴 하지만 다행이도 종로타워 층수보다는 낮아서 을지로 보다는 시야확보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로타워의 구조는 크게 3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지상에서 134m 상공에 떠 있는 고급 레스토랑 탑클라우드, 23층 지붕에 조성된 옥상정원, 13층에 돌출된 캐노피로 구분된 저층부와 고층부 이렇게 각각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종로타워 설계는 아르헨티나 출신 라파엘 비뇰리가 맡았고, 국내기업 삼우설계와 함께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무엇보다도 지상24층과 레스토랑 탑클라우드가 있는 33층 사이에 약 30m의 공간이 비어 있다는 것도 좀 특이한 점이다. 이는 종로 한복판에 상징성 있는 랜드마크 빌딩이 되길 바랬던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애초 비뇰리가 설계 했던 종로타워의 높이는 지금보다 1.8배가 더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법규와는 맞지 않았고, 높이를 낮추는 대신 상징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조선인이 운영하던 최초의 백화점이있던 곳
<1999년 한겨레 신문에 실린 화신백화점>

원래 종로타워가 세워진 터에는 1931년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화신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4년 뒤인 1935년 1월 27일에 화신백화점 서관에서 불이 나 전소된 후 박길룡의 설계로 1937년 11월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현대식 백화점 건물이 세워졌는데, 이는 당시 서울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내부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고 옥상에 전광뉴스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다가 백화점은 1987년 2월 문을 닫았고 건물은 4개월 후인 같은해 6월 철거되었다.」(*내용출처:위키백과)

종로타워 개발 계획 당시 이러한 장소적 특성을 반영하여 업무및 판매시설(신세계백화점)로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골조공사가끝난 상태에서 IMF 외환위기로 업무시설로 용도가 변경 되었다.  


<현 종로타워가 건설되고 있는 모습, 우측 앞쪽에 화신백화점이 보인다>

*사진출처:twitter.com/eun_gong

대신 판매시설에 맞게 설계 된 건물이라서 엘레베이터 위치를 보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준공 후에는 몇 년간 국세청이 신청사 건립을 하는 동안 입주해서 사용했다. 그 영향으로 아직도 종로타워를 국세청 청사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국세청이 돌아간 후로는 삼성증권 등의 삼성그룹 산하의 금융회사가 들어와 있다.


뭐랄까.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감정이고 생각이지만 건축물도 설계사의 생각, 가치관,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사람 혹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라 여겨 질 수 있다. 그런데 종로타워는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채 단절된 불통의 건축물이 되어버린건 아닌가 되묻게 된다.

건물을 세심히 살피다보면 아래쪽 벽면에 "서울특별시 건축상"라는 쓰여진 알림판이 부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 건축상은 건축의 공공적가치를 구현하여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우수한 건축물을 장려하고자 서울의 건축문화와 건축기술 발전에 기여한 건축가 및 시민에게 시상하는 상이다.
종로타워는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 것일까??

단절, 경고

종로타워 바로 옆에는 샛길이 하나 있는데 인사동과 연결되는 길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때 부터 남아있는 피맛골과도 연결된다. 피맛골은 종로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진 곳도 많지만 듬성 듬성 남아 아직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하지만 이 길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점심시간이나 주말에 이 길을 걸어 보았으나 도로변유동인구에 비해 극히 적었다.

만약 현재 종로타워에 층수가 낮은 건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길이 지금보다는 더 잘 눈에 띄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현재 종로타워 뒤쪽으로 이어지는 건물의 대부분이 10층 미만의 층수로 군집을 이루고 있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로 형성된 길들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같은 라인의 도로변에 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건물들. 마치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여 단절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현재 종로타워 바로 옆에 또 다른 고층빌딩이 신축 중이다. 건물의 모양새는 종로타워에 비해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지만 높이나 규모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나란히 선 건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이 가로 막고 있는 것은 단순히 시야 뿐일까? 뭔가에 가로 막혀 속빈 강정처럼 겉만 화려해지려는 미래의 서울에 대한 경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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