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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17. 2018

[501번 버스] 한강대교와 노들섬

동작구와 용산구를 잇는 제1 한강교

한강을 잇는 다리를 걷다

한강에 가는 것도, 한강을 잇는 다리를 건너는 것도 좋아하지만 정작 가장 처음으로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넜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한강대교였는지 마포대교였는지도 헷갈린다. 분명한 것은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 이후로 자주 건넌다는 것이다. 날씨가 너무 좋거나 지인과 술 한잔 하거나 하면 필 받아서 '아, 오늘 한강 건너야지. 암 암~!'하며 막차 시간 따위는 잊어 버리고 일단 건너고 본다.

한강의 남과 북을 잇는 대교들은 각각 지어진 시기와 모양, 목적이 조금씩 다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포대교이다. 잠수교라고도 불리는데 2층으로 되어 있어 비가 많이 오면 아래쪽 다리가 잠긴다. 동시에 위, 아래로 달리는 차를 바라보고 있으면 고가도로를 달릴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 공간적 특성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다른 대교에 비해서 많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이태원과 강남을 연결하는 다리기도 하다.


지지난해 여름 소중한 인연들과 영화도 보고 가볍게 와인을 마신 상태에서 반포대교를 건넜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막차는 끊겨 버렸지만 다행이도 심야버스가 있어 무사히 귀가했다.마포대교는 마포구와 영등포구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여의도공원이 가까이에 있어서 출퇴근길에 종종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도에 내려서 걸어간 적도 많다.

10년 전, 국토대장정을 할 때는 성산대교를 건넜다. 비가 억수 같이 내리던 그 때 200여명의 잔존 인원이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며 걸었다. 그땐 대교를 걷는 경험 보다는 걸어서 서울에 왔다는 사실이 더 벅차서 잘 몰랐다.


마지막으로 한강대교를 건너게 된 건 가장 최근 일이다. 501번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기 전)상도동-(한강을 건넌 이후) -신용산-삼각지-서울역 지점을 지날 때마다 길을 눈으로 익히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일부러 걸어 왔다. 얼마 전에는 올림픽대교를 건넜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독 바람이 많이 불고 차량도 많이 지나가서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대교 마다 각각 서로 다른 분위기와 성격, 용도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쯤되니 과연 한강을 건너는 대교는 총 몇 개인지 궁금해진다. 시기별로 건설된 한강대교의 갯수는 다 다르다.


제1한강교, 한강대교

차가 달리면서 일으키는 강한 진동과 빠른 속도로 인한 의도치 않은 바람 그리고 차가 지나 갈 때 마다 내는 소리. 이 세가지를 견딜 수 있어야 대교 위를 건널 수 있다. 다리 위로 전해지는 진동은 대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곳은 없다. 그래서 처음엔 약간의 공포감도 생기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거나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를 안도감에 곧 사그라진다. 차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는 의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 더군다나 서울엔 차가 많은 것은 비일비재해서 익숙해지는데 훨씬 수월하다.

한번은 한강대교 맞은 편에 위치한 한강철교 위를 지나는 지하철을사진에 담아 보겠다고 살을 애위는 듯한 강 추위에 벌벌 떨며 걸은 적이 있다. 그 날 따라 강바람은 어찌나 부는지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를 혹여나 떨어 뜨릴까봐 힘을 꽉 주고 긴장했더랬다. 단렌즈의 한계로 만족할 만큼의 좋은 사진은 찍지 못했다. 게다가 어둠 속을 달리는 지하철과 기차소리는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보이지 않는 시야, 심장을 조일 듯한 소리, 카메라를 날려 버릴 듯한 강한 바람. 시각,청각,촉각을 마비시킬 만큼 자연스럽고도 강한 힘이 나를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추운겨울 보단 여름과 가을이 시작되는 6,9월 쯤이 좋고, 해가 쨍한 낮보다는 해질녘이나 초저녁이 가장 좋다. 시간으로 따져 봤을 때 오후 6시 30분 ~ 8시. 해가 긴 한 여름에는 너무 더우니깐 아무래도 밤이 낫다. 겨울도 나쁘진 않은데 춥다. 한강의 강바람은 생각보다 쎄다.


동작구와 용산구를 잇다.

한강대교는 동작구와 용산구를 연결하며 노량진과도 가깝고, 63빌딩도 잘 보인다. 불꽃놀이 계절이 되면 63빌딩 앞엔 사람들로 넘쳐 나는데 한강대교 위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여의도까지 갈 필요가 없다. 가끔씩 예상치 못한 이벤트성 불꽃놀이를 볼 때도 있다. 처음 다리를 건넜을 때 '구'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도 동이 바뀌는 만큼이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강의 남쪽과 북쪽이라는 위치적 특성을 따져 보았을 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리로 연결된 길은 하나고 15분 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으니 설마 바뀔까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다리를 연결한 것은 1차적으로 강남개발을 위한 이유에서이기도 했지만, 서울이라는 지역 안에서 어찌보면 단절의 가능성을 낮추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한강대교와 노들섬

한강대교가 다른 대교와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노들섬이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한자 지명으로 제1중지도라고 불렸으나 1987년 노들섬으로 공시 지명이 바뀌었다. 조선시대부터 물맛이 빼어난 우물물을 왕궁에 바쳐왔고, 섬이 아닌 한강변 백사장이었으며 나루터로 쓰였다. 1917년 한강인도교가 놓이면서 교량을 받치기 위해 옹벽을 축조했다.


1925년 대홍수
1936년 중지도 소공원
1950년 6.25전쟁과 함께 한강인도교가 폭파
1958년 한강대교복구
1960~1980년대 한강개발
1981년 한강대교 확장
1995년 일제지명 개선사업


이렇게 수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40년 간 방치 되었던 노들섬이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변신을 위한 공사에 들어갔다. 다행이도 나는 공사를 시작 하기 전에 진행 했던 다양한 행사에 참여 하여 노들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노들섬 내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텃밭을 가꾸는 사람도 있었다. 비교적 파괴되지 않은 자연 생태계 덕분에 맹꽁이도 살고 있었다.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시민들과 함께 맹꽁이의 이주를 돕기도 했다. 노들섬에서는 한강철교가 매우 잘 보였다. 지하철이, 기차가 지나갈 때 엄청난 굉음이 들리기도 했다. 모습은 계속 변화했지만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들섬은 1~2분 간격 하루에도 수 십번 지나가는 지하철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강개발이 진행되기 전 만해도 한강은 온통 백사장이었으며 노들섬 또한 수영장과 낚시터,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었지만 이후에 섬이 되면서 방치 되었다. 결과적으로 한강개발사업이 노들섬을 포함하여 한강주변생태계를 무너뜨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결국, 인간 스스로 망가뜨린 섬을 버려 두었다가 다시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는 묘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공사펜스가 쳐진 노들섬을 바라보며 없애지 않은 것이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다. 공사가 완료된 이후 노들섬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던 그 모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며 계절이 바뀌고 공사진행상황도 변화하겠지만 그러한 모습마저도 지켜보며 오늘도 나는 한강대교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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