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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15. 2018

[501번 버스] 봉천고개와 아파트단지

도대체 이 동네에 왜 이렇게 많은 아파트가 생겼을까?

버스가 봉현초등학교가 위치한 봉천고개를 넘는 순간만큼은 하던 일을 멈추고 창 밖을 한번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긴말을 전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시야를 가로 막는 아파트가 병풍처럼 겹겹히 서 있다는 것을. 서울의 아파트에 대해선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주로 원룸·주택 밀집 지역에 살다 보니 체감 정도가 높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쭉 접해 왔던 건물의 대부분이 오피스용 고층빌딩이 더 많았기 때문에 고층아파트는 지나가면서 먼 거리에서 보는 정도가 다 였다. 하지만 봉천동에 살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아파트를 접하고 있다.

봉천고개에서 바라본 아파트단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무관심

서울 상경 이후로 거주하게 될 동네의 범위를 지하철 역을 기준으로 선정했었다. '출·퇴근하기 편하면서 방세가 저렴한 곳'이라는 기준을 동네를 선정하는데 가장 우선 순위로 두었기 때문이다. 처음 2년은 신림역 부근에서, 이후 2년은 서울대입구역 부근에서 살면서 신림역 보다는 서울대입구역 쪽이 훨씬 살기 좋은 동네라는 판단을 내렸고, 그 다음 해에도 역시나 서울대입구역 인근에서 집을 구했다. 이렇게 구구절절 그 동안 살았던,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서 구지 말을 하게 된 이유에는 그 동안 서울의 수 많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탐색하고 공부하면서도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내가 살았던,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서는 정작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평소 자주 타고 다니던 501번 버스를 타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봉천고개에서 바라 본 아파트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 왔고, '도대체 이 동네에 왜 이렇게 많은 아파트가 생겼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면서 동네를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아파트 말고도 숨겨진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걸 왜 이제서야 발견하게 된 것인지, 그 동안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얼마나 무신경 했었는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봉천동?봉천고개?

다행인 것은 그렇게 발견한 아파트와 봉천고개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에 위치한 동네들에 대해 파헤치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언급되고 있는 '봉천'이라는 단어에는 '하늘을 받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렇다면, 봉천고개를 넘으면 도착하는 봉천동의 범위는 어디까지고, 아파트가 생기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으며,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생겼을까? 현재까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봉천동은 법정동이며 행정동인'보라매동, 청림동, 성현동, 행운동, 낙성대동, 청룡동, 은천동, 중앙중, 인헌동' 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 (중략). .  1963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고, 1966년 신림동과 봉천동으로 분동하였다. 1973년 관악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내용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귀 동냥으로 들은 봉천동에 관한 몇가지 정보로는 지금은 개발되서 아파트 천지지만 아직까지도 "달동네"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지 못했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2008년 부터 행정동 명칭을 바꾸기 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적절한 조치였을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좀 더 살기 좋은 동네로 환경을 조성하고 그에 적절한 이미지 변신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에 달동네였던 사실을 부정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버릴 순 없었다. 이곳을 아는 많은 이들이 봉천동 하면 달동네였던 그 시절을 떠올리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조경란의 「나는 봉천동에 산다」라는 소설을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다. 소설이지만 봉천동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는데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달동네가 아니였다.


"봉천동은 봉천리였던 1933년 당시 인구 1인당 면적이 1,212평 정도로 인구수가 매우 적은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논농사를 짓고 살았다. 장이 서고 지금의 봉천고개인 살피재고개에 이따금씩 호랑이가 나타나 조용한 마을을 놀라게 했다. 저습지대였기 때문에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마을이 여기였다...(중략) p36

"1961년 당시 7,104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965년에는 10,134명, 십 년 후인 1975년에는 그 세 배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비단 관악구 지역만의 현상이 아니라 새로 편입된 몇몇 변두리 지역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가장 큰원인은 도심의 불량주택 철거정책에 따라 철거민의 집단 이주 떄문이다. 관악구 지역에 철거민 이주 정착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9월 용산구 해방촌 철거민이 관악구 철거민 수용소로 집단 이주하면서 부터였다. 신림동 철거민 수용소 입주가 끝나고 난 다음해는 수해로 인한 이재민 3,600여 가구가 관악구 지역에 이주해옴으로써 봉천동엔 본격적으로 철거민 정착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중략) 1966년 부터 1968년 사이에 청계천, 목동, 여의도, 도동, 창신동 등지에서 철거민들이 이주해옴으로써 관악구 지역 곳곳에 밤골, 산동네, 화재민촌으로 불리는 대규모 철거민 집단 정착촌이 생겨난 것이다. 이곳이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달동네라고 불렸던 봉천2동, 봉천3동, 봉천5동 지역일대다"p36-p40

*내용출처, <나는 봉천동에 산다, 조경란>


즉 봉천동은 한 마디로 1960년대 이후 부터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 온 철거민들이 이주해 와서 살던 집단 정착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역사를 100% 부정할 순 없을 터인데. 이는 '봉천동'이라고 검색해도 '달동네'라는 키워드가 여전히 함께 검색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명칭을 바꾼 것이 현재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까?

달동네의 소멸, 거대한 아파트단지 생성

아파트단지가 들어 서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서울외곽의 무허가 주택단지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부터였고, 봉천동에도 큰 바람이 불었다. 거대 아파트 단지는 봉천동의 이미지를 변화 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처럼 보였고, 2008년 9월 1일 이후에는 행정구역이 개편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조금씩 달동네가 소멸되며 지워졌다. 물리적 공간과 환경적인 변화로 이제는 거주 하는 사람들도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구역별로 다른 재개발 진행 상황으로 원룸과 다세대주택, 아파트단지가 혼재 되어 있기도 하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어느 동네로 이주를 했을까? 정착한 그 동네에서 또 다시 삶을 이어가며 오랫동안 살아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주민은 평생 이주만 하다가 정착도 하기 전에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파트별 준공시기
우성아파트: 2000년 12월
푸르지오: 관악푸르지오 2004년 8월
             관악파크푸르지오 2014년 9월
성현동아아파트: 2000년 5월
관악드림타운 :2003년 9월
일두아파트: 1985년 11월

봉천고개 인근에 있는 아파트 준공시기를 살펴보니 주로 200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고,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느 동네든 현재를 보고 그 모습이 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과거를 지우려고 한들 흔적은 어디든 남아 있으며,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 앞으로 봉천동은 또 어떻게 변화할까? 빽빽한 아파트 단지가 봉천동을 가득 채우고 난 뒤, 더 이상 지을 곳이 남아 있지 않을 그 때 또 다시 과거를 지우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처음 봉천동으로 이사를 왔던 무렵에는 이 일대가 온통 저습 지대의 계단식 논이었다고 한다. 야산은 깊고 험했으며 나무들이 빽빽했다. 그때는 이곳에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개통되리라는 걸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봉천동이 일거에 발전하게 된 건 서울대학교가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그 후 교육지구 진입도로 주변 지역의 개발 추진 필요성이 인정되어 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자연지형을 따라 형성된 협소한 소로만 있었을 뿐 도로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지하철 개통도 서둘러 공사를 진행했다. 옆 동네 신림동엔 하숙촌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p24"
<조경란, 나는 봉천동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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