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참. 울림. 새로운 세계. 설렘.
온갖 긍정적인 단어들로만 가득하고 온몸의 세포가 저절로 반응하는 이곳은 다름 아닌 서울역이다. 내게 서울역은 기차역 이상의 상징성 가진다. 새로운 삶을 바라보게 한 시작점이자, 이전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관문 같다고 할까? 여러 모로 복잡한 감정이 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드 넓은 서울역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모두 어디서 왔는지, 과연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다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선 매번 서울역을 나섰다.
서울역 밖엔 가슴 벅참을 더욱더 상기시켜주는 건물이 또 하나 있었다. 옛 대우빌딩이자 현 서울 스퀘어. 건물 위에는 마치 마술을 부린 듯 약 4만 2000여 개의 LED 도트를 사용한 미디어아트 작품이 상영된다. 겨울에는 매일 오후 6시부터, 봄가을은 오후 7시, 여름은 오후 8시부터 11시 20분까지 10분마다 연출된다. 이 작품을 보면 진짜 서울에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매번 서울역에 도착할 때마다 전면으로 등장하는 화려한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이것이 서울 그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매번 서울역의 정면에 보이는 풍경만 바라보며 들떠있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 앞을 지날 때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온갖 화려함과 설렘이 가득한 곳이자 이면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광장 바닥에 앉아 술을 먹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서울역 밖으로 나와 광장을 가로지르며 이 광경들을 목격하게 된다. 사실상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갈길을 가면 된다. 다만 이들의 존재 여부를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에 따라 이곳의 생태계를 인지하는 것이 달라지기에 꼭 한 번은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서울역 앞 광장에 선별 진료소가 있지만, 그 이전만 해도 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또 옆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남영역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다 보면 철길을 따라 저층 건물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이곳에 형성되어 있는 나름의 상권이 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가게들의 업종을 보면 조금은 알 수 있다.
무료급식소, 저렴한 가격의 식당, 사랑 실천 공동체, 남대문 쪽방 상담소, 인력사무실, 고시텔 그리고 커피 자판기. 물론 이것들이 전부라 말할 수 없지만, 서울역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과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들 말고도 오래된 책방, 의료기기 판매소, 장애인 보호 작업장, 자동차 판매 대리점, 게스트하우스, 호텔이 있고, 몇 년 전에 생긴 카페와 샐러드 가게도 있다. 여러모로 다양한 업종과 고객층이 존재하는 곳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자주 목격했던 풍경을 떠올려 보자면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날이 되면 급식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쪽 길은 서울역과 가까이에 있지만 이곳을 일부러 지나가지 않는 이상은 발길 닿을 일이 거의 없다. 걷지 않아도 버스는 중앙차선으로 통과하여 지나가고 그 흔한 카페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기본적으로 뭔가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기 딱히 이곳을 찾을 이유도 없는 곳이었다.
최근에는 돈가스 맛집으로 알려진 가게가 생기면서 소문을 듣고 찾는 이가 늘어났다.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창밖으로 보면 이 가게 앞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황이 달라서 비교하기엔 말이 안 되지만 교묘하게 무료급식소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매칭 되곤 한다. 그리고 조금씩 티는 안 나지만 주변으로 카페가 몇 군데 더 생기면서 이 주변을 찾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임대 문의'라는 글씨가 적힌 현수막이 이곳저곳에 걸리기 시작했고, 내가 자주 목격했던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긴 하는데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흩어졌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 같다. 아마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무료급식 제공이 중단되어 더 이상 오지 못하는 것이 시작점이 되었을 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존재하던 생태계가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예식장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몇 년 전부터 비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포토 스튜디오가 생긴 걸 보고 나서는 더욱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여기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변화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곳을 보고 있었다. 분명 조금만 더 가면 가슴 두근대는 서울역이고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여기는 왜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는 것처럼 오고 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시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근데 알고 보면 여긴 변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에 위치를 찍어 보면 '동자동'이라고 뜨는데, 동자동은 쪽방촌으로 잘 알려진 동네이다. 쪽방촌은 길 건너편 고층 빌딩 뒤에 위치해 있는데 내가 언급하는 곳은 서울역 인근을 말한다. 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곳으로 조그마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곳, 서울역 - 남영역 - 숙대 입구역으로 이어지는 1호선 전철이 지나가는 길과 나란한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길이 더 닿지 않는 곳, 언제 무엇이 어떻게 사라져도 관심 밖인 곳이라 예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맛집으로 알려진 돈가스 가게가 불꽃을 쏘아 올려 사람들이 줄곧 찾고 있지만 또 언제, 어떻게, 급작스럽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갑자기 사라지거나 혹은 여태껏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게와는 성격이 다른 가게들이 생기거나 혹은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하거나. 지금껏 내가 지켜본 동네의 변화를 되짚어 보았을 때 속도만 달랐을 뿐 변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어떤 하나의 흐름을 타고 변화하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빨라지는데 그 타이밍이 아직 오지 않았을 뿐 이곳도 또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여기서 나는 무엇을 보고, 이 변화하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변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계속 지켜볼 예정이다. 가끔은 내가 변화에 너무 민감은 것은 아닌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는데 변하는 건 당연한 건 아닌가 되짚어 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갑작스럽거나 불합리한 부분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과연 변화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곤 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망가지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변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왜곡된 변화라면 잠시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