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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충정아파트의 운명은?

by 이경민

# 해당글은 2022.09.07일자 [빅이슈 코리아]에 기고된 글입니다.

# 기고링크 : https://bigissue.kr/magazine/new/307/1868



'여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 보존과 철거 사이에서 엎치락취치락하며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바로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충정아파트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물 외벽에 칠해진 독특한 초록색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로도 알려져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맨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어 '최초'여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여러모로 화제가 되는 와중에 사람들에게 문득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혹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과 주변을 둘러싼 상황, 개발과 보존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이해 관계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말이다.


'최초의 아파트', '무단점유', '인민군 학살', '트레머 호텔', '김병조 사기극'....

충정아파트 사진1(출처기재요청합니다. 사진제공, 박건).jpg [사진제공_박건]

아마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모두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에 갖춰진 물질적 요소와 경제적 가치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과거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관계 요소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물리적 환경이 직접적으로 변화하는 것 외에도 그 일대에 형성되어 있는 지역 생태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골목으로 연결된 길, 충정아파트만큼이나 오래된 한옥과 상가 건물들, 그 사이에 자라난 오래된 나무,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들 등. 동네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요소에 변화가 찾아온다.


현재, 충정아파트가 포함되어 있는 마포로 5구역은 지하 5층, 지상 28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을 포함한 공동주택(아파트)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충정아파트 존폐 여부에 따라 도로 등 도시계획 시설이 변경되고, 용적률이 달라진다. 문화시설로서의 보존인지, 철거 후 아파트 부지 면적에 포함하는지의 여부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과정 중에 현재 충정아파트의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과 세입자들의 관계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원래 건물은 4층이었지만 불법 증축을 통해 5층이 되면서, 토지와 건물 소유권에 따른 보상금 문제도 얽혀 있다. 현재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여러 측면을 면밀히 살피고, 따지고, 보완하면서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단단하게 오랫동안 보듬은 땅은 쉽게 무너지지 않듯이 말이다.


개발이라는 행위는 결국 각기 다른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만큼 긴중한 문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과정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고,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로 진행된다. 그런 탓에 자극적인 문장과 격렬한 격투를 벌이는 현장의 모습을 담은 뉴스 보도는 자칫 재개발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나 반대로만 비치기 쉽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론적인 부분만 보인다. 이러한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내부에 존재하는 상황과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충정아파트의 가치를 알리는 모임, 충정아파트 패밀리

최근 진행하고 있는 시민공모전_충정아파트 지키기.png copyright 제20회 시민공모전 충정아파트 지키기 포스터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대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파악하고자 충정아파트의 보존을 지지하는 모임에 참여 하게 되었다. 충정아파트는 1979년에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40년 동안 재개발을 추진하였으나 이해관계의 합을 이루지 못해 계속 지지부진했다. 그러는 동안에 충정아파트의 역사적, 건축학적, 주거사적 가치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구해왔고, 근대유산으로서 보존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해왔다.


그 결과, 2019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용적률 인센티브와 함께 충정아파트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안을 수립하고, 지역 유산을 지키는 차원에서 최종적으로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불과 3년만인 올해 2022년에는 철거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어떠한 이유로 보존으로 결정된 사항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게 된 것일까?


충정패밀리_활동사진4.jpg


이러한 맥락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공론화하기 위해 오래된 동네에 관심 있는 기록자, 연구자, 답사가들이 모여 시민모임을 만들었다. 충정아파트는 현재 마포로 5구역 2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범위에 속해 있다. 충정아파트 자체의 역사성도 중요하지만, 그 일대의 지역적 특성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기에 여러모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다양한 시도와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구체적인 일정과 현재 진행 중인 활동들은 SNS 계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나도 재개발 과정에서 건물의 존치 여부를 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되는지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개발, 즉 정비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낙후 정도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시행 방법을 정한다. 따라서 현재 충정아파트의 재개발 과정에서의 존치여부는 주민의 의사도 반영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 우리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적합한 근거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에 제시하기 위해서는 보존과 개발이라는 이분법적이고 결과론적인 차원의 관점을 넘어서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설득할 수 있도록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도 재개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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