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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Nov 21. 2022

[기고] 아파트를 기록하며 깨닫는 것들(1)

* 해당 글은 2022년 11월 9일 빅이슈 코리아에 기고된 글입니다.

* 원문을 보시려면, 해당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https://bigissue.kr/magazine/new/311/1999 

아파트가 고향이라고 했다. 사라지는 아파트를 그리워하며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아파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주택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낸 나로서는 그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파트만큼이나 주택도 사라진 곳이 많다. 기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주택은 주로 동네에 묶여서 이야기된다. 사라지는 주택보다 신축되는 주택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다. 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주택 한 채, 한 채를 세밀히 살피는 일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측면을 잘 반영한 창작 기록물이 있다. 조부모가 40년 동안 거주했던 동네의 재개발 소식을 듣고 집들과 함께 조부모의 삶을 함께 들여다 본다. 사실에 기반을 둔 소실, 함윤이 저자의 <서울집>이다. 도시형 한옥의 건축학적 의미보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네보다 조모의 삶에 좀 더 비중을 두었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도 볼 수도 있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결코 삶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기에 더 가치 있다. 또 동네로 묶여서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이 아닌 '집'이라는 공간 자체를 바라보고 있따는 측면에서도 기존 기록물과는 다른 점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져 그런 것일까? 그동안 목도한 풍경 속에는 아파트만큼이나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존재하기에 그런 것일까? 자본이 움직이는 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주택보다는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사라지는 아파트를 기록하는 일이 주택을 기록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클 수도 있다. 덕분에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게 되었다.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이해해보려 했다. 몇년 전 일이지만 주공아파트에 살던 주민이 운영하던 투어에 참여하여 단지 길을 걸어보고, 소리 수집을 위해 녹음도 해보았다. 아직 재건축이나 철거 논의가 없는 아파트 단지도 걸으며 분위기를 느껴보았다. 그 과정에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단지를 돌아본 일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규모가 큰 것 이상으로 단지의 구성이 주택가 골목길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사이에는 차량 이동을 위해 조성된 도로가 있었지만, 폭이 좁았다. 길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건물과 놀이터 간 거리도 짧아서 집 안에서 놀이터로 소리쳐도 들릴 정도였다. 보통은 단지 내에 차량 이동 구간과 도보구간은 분리되어 있거나 도로 폭이 훨씬 넓다. 하지만 목동 신시가지 단지 내 길은 차량 이동 구간은 최소화 하되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의 이동에 우선순위를 두고 길이 조성된 느낌이었다. 이런 부분들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아파틍 대한 애정과 생각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택과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만 다를 뿐,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와 감정은 같은 맥락에서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포주공아파트를 기록하는 사람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동작역에서 내려 반포천으로 향하는 출구로 나오면 곧장 반포주공아파트를 만날 수 있다. 반포주공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을 앞두고 있으며 건물은 공사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한눈에 봐도 꽤 큰 규모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눈여겨 보던 곳이었고 재건축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는 종종 방문하고 있다. 1973년 대한주택공사가 '남서울아파트'라는 이름으로 공급한 대규모 단지로 강남개발의 실질적인 시발점이 된 아파트다. 주거 공간을 넘어서 서울이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변해가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영동 지구의 땅을 대한주택공사가 매입해 처음으로 지은 단지로, 한강을 매립하여 부지를 만들고, '남서울'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여 한강 이남의 존재를 부각한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1970년 중후반부터 압구정, 잠실 등에도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되었다. 반포주공아파트는 1,2,3,4주구로 나뉘어 있는데 명칭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1,2,4주구는 반포주공1단지, 3주구는 AID 차관주택이다. AID 차관주택이란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미국이 제공하는 장기융자를 일컫는 말이다. 주택 건설 자금을 원조 받아 건설 했다는 것은 당시 대한민국 상황이 어떠 했는지 절실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나씩 따져보며 살펴보니 한국 현대사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이 실감난다. 

곧 사라질 반포주공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이런 의미들을 곱씹고, 그 당시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조금씩 기록해두고 싶었다. 이미 많은 분이 이주한 상태였고, 동마다 '공가'라는 글씨가 적힌 빨간 스티커가 붙었다. 주민인지 알수 없는 사람들이 계속 지나갔다. 주인이 누구일지 모를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쓰레기가 쌓여 있었으며, 여러 모로 어수선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건물을 자세히 살피기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장을 관리하는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입구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더불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모습이 포작되었다. '찍은 사진을 삭제'하라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그걸 알고 나서 돌아보려니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긴장된 상태에 있다 보니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다. 오래 머물기란 더욱 힘들었고, 그때 그때 달라지는 풍경을 기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재개발 현장보다 기록하기 버거웠다. 그 와중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누군가 반포주공아파트의 사라짐을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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