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민 Jul 09. 2023

[기고] 지속가능성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우연이 만드는 연결의 기록 


* 해당 글은 도시연대에 기고된 글입니다.

* 원글을 보실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우연이 만드는 연결의 기록] 지속가능성이란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원주아카데미극장 사례를 통해 짚어보기


재개발 대상지를 반복적으로 기록하다보면 무심코 지나쳐 버릴 것을 붙잡고 들여다보게 된다.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고, 질문하게 된다. '이게 뭔데? 별거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한다.눈으로 목격하는 장면이 어떤 현상의 결과이거나 과정임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감각이 살아난다. 어느 하나 허투루 보거나 지나칠 수 없게 된다. 단편적으로 훑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깊이 살펴본다. 가끔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멍을 때리다가도 과거의 무언가가 사라지고, 새롭게 생겨나는 과정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동시에 그 이유를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그제야 이유를 묻고, 과정을 지켜보고, 질문함으로써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겨난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와 많은 감정,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가능한 한 엮어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찾아 흐름을 파악한다. 더 가까이 인지하고 더 많이 관찰함으로써 우리가 목격해왔던 도시의 변화는 개별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결합하건 연결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겉으로는 쉽게 확인되지 않는 관계성을 가진 것들이 사라지거나 생성된다. 


변화는 우리 일상에서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결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한 번에 다 없어지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변화인지는 의문이다. 동시에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되는 당연함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지도 헷갈린다. 변화라는 현상 자체보다는 변화를 해석해야 하는 관점과 변화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당연함'을 논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거듭되는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재개발 대상지를 살피는 이유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물음 때문이었다. 당장 답을 찾기보다는 어떠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고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지속 가능한 물음과 방향성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각기 다른 욕망이 존재하기에 한 가지 명확한 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상태로 지속해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음을 안다. 그저 지금보다는 좀 나은 상황을 만들고, 지금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행보를 만들어 나가야 누군가 그 뒤를 이어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방향성을 만들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과 동시에 갈등이 발화하는 현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며 상황을 파악하고 감정을 표현해 본다. 두 가지 경험은 시너지를 만들며 지속가능성에 가까워진다. 나는 '보존과 철거'라는 이슈가 존재하고 변화가 시작되는 모든 곳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변화와 지속가능성'이라는 애매모호한 경계 위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사례는 많다. 각자가 처한 상황 안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현재, 역사적,문화적,건축학적 가치가 존재함에도 '철거'라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는 원주아카데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무엇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정말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등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제안한다. 

1983년 아카데미극장 모습, 사진출처: 원주지명총람 


⓵ 개관부터 원주시 매입까지의 과정  

1963년, 개관. 서울에서 영사기사를 하던 정운학 옹이 극장을 열어보라는 제안을 받고, 평원로에 원주극장, 시공관, 아카데미극장, 문화극장을 운영함.


▶ 2005년, 멀티플렉스 극장 개관과 동시에 모든 단관극장 폐관.

▶ 2006년, 아카데미극장 제외한 4개 극장 모두 철거. 아카데미극장은 폐관 후 14년 동안 방치. 

▶ 2016년, 시민들이 모여 남은 아카데미극장 지키자는 마음에 보존활동을 시작.

▶ 2018년, 현 소유주에게 아카데미극장 문화재생 프로그램과 운영구조 제안, 시민자산화 위한 사회적협동조합 구상.

▶ 2019년, 중앙동 일대를 대상으로 한 근대 역사 문화 공간 재생활성화 사업 선정에 실패 후 아카데미극장 철거가 예정이었으나 원주시와 소유주 간 1년간 유예 결정 

(*원주시는 2019년, 2020년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으로 가톨릭센터, 금성호텔, 자혜의원, 아카데미극장, 나다갤러리, 청산의원 등을 신청했었음.)

▶ 2020년, 원주시와 소유주 간 ‘아카데미 극장 및 주변 토지매매 협약’을 체결 & 아카데미 극장 임차 계약 협의. (아카데미극장 소유주-사회적협동조합 모두) 원주시역사박물관과 원주도시재생연구회,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등은 아카데미극장 재생 시범사업 ‘안녕 아카데미’ 추진. 

(*14년 만에 극장 문을 열고 전문가 투어, 시네콘서트, 음악공연, 상영회 등을 진행함.)

▶ 2021년, 아카데미극장 철거 위기. 극장 매입비의 일부를 시민들의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아카데미 구하기)을 진행.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보전캠페인 '이곳만은 꼭 지키자' 문화재청장상 수상.

▶ 2022년, 아카데미극장 원주시 매입


⓶ 현재 상황

시의 매입 이후 극장에서는 시민 공모 프로그램, 영화 상영회, 정원 가꾸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며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활용을 위한 과정을 한 단계씩 밟아나가고 있었다.  2022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유휴 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에도 선정되어 국비 30억 원, 도비 9억 원 총39억 원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원주시는 최종적으로 국비지원을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2022년 6월 민선8기 원주시장 선출 이후 민선8기 원주시장직 인수위원회가 ‘아카데미극장 복원 중단’ 권고를 했고, 이에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결성되어 극장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2023년 3월, 원주시는 일상적 출입이 가능하던 아카데미극장 문을 닫아 통제했다. 시민들이 써놓은 보존 메시지를 철거하고 극장 안을 볼 수 없도록 가림막을 설치하였다. 


2023년 6월 6일 기준 아카데미 극장 현재모습, 사진 제공: 아카데미의 친구들

아카데미극장 재생여부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청구한 시정정책토론은 주민등록번호와 본적지 주소를 적으라는 억지행정으로 반려되었다. 이후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원주시장을 만났으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답변을 한 바로 다음 날 일방적으로 극장 철거 계획을 발표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의 활동은 아래와 같다.


2월, 극장 보존을 위한 띠잇기 챌린지 1차 진행, 시정정책토론 서명부 모으기 시작 
3월, 250명의 자필 성명부 시정정책토론 청구 및 극장 보존을 위한 띠잇기 챌린지 2차 진행 
4월, 시정정책토론 보완 후, 2차 청구 및 기자회견 진행, 온라인 서명 캠페인 시작, 극장 보존을 위한 띠잇기 챌린지 5차 진행 (중앙동 시민행진)
5월, 원도심 일대 상인 316명 아카데미극장 보존 지지 서명 동참, 극장 보존을 위한 띠잇기 챌린지 6차 진행 (아카데미 시민행진), 국회 기자회견, 원주시의 아카데미극장 철거결정을 규탄한다!
*극장 보존을 위한 띠잇기 챌린지의 3,4회차는 원주시의회의 <제240회 2차 본회의>기간 동안 원주시청과 시의회 앞에서 릴레이 시위로 진행함.

[내용출처: 아카데미극장 지키기 온라인 서명 캠페인, https://campaigns.do/campaigns/913 ] 


아카데미극장은 철거 위기를 여러 번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시민들과 함께 기억을 공유하고, 공간을 활용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과거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쓰임에 대해 고민했다. 여러 세대가 함께 머무르게 함으로써 아카데미극장의 역사, 인물,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진짜 지켜내고자 한 것이 단순히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먼지 쌓인 극장 내부를 청소하고, 물품을 정리하며 기록하며, 지켜낸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갔다. 

2016년, 2020년, 2021년, 2022년에 진행된 다양한 활동들, 사진제공: 아카데미의 친구들


아카데미극장을 얼마나 애정하고 있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 마음은 아카데미극장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새로운 경험과 좋은 인상을 남겼다. 나도 아카데미극장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방문했었고 지나온 세월과 공간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공간만이 품고 있는 시간과 온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애써 흉내 낼 순 있어도 진정성은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아카데미극장뿐만 아니라 다른 오래된 공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각의 공간들이 전하는 감각과 특성은 다를 것이고, 대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건물을 활용•관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된 공간은 오래된 만큼 시간을 들여 살펴야 한다. 지속해서 건물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활용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력•시간•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을 하나씩 따져 본다면 아카데미극장은 잘 관리되고, 활용되는 편에 속했다. 자발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으니 운영•관리•유지가 잘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가치를 알기에 이 시간이 지나면 여러모로 힘이 있는 공간이자 장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철거 상황에 놓인 아카데미극장 사례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매일 습관처럼 말하고 다니던 지속 가능성의 실현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듣기 좋은 소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능하긴 한 것인지 의심도 들었다. 그동안 현실성 없이 그저 입으로만 떠들어댄 건 아닌지 허무함이 밀려왔다. 혼자 한 없이 좌절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결론을 내리기보다 뭐라도 해가며 방향성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올린 것이 바로 ‘질문하기’였다. 아카데미극장에 대한 혹은 아카데미극장이 있는 원주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함께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제안하고 생각이 싹트고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⓷ 질문하기

Q. 아카데미극장은 왜 철거되어야 하는가? 혹은 왜 보존되어야 하는가? 

Q. 보존과 철거 문제를 떠나 지금의 상황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Q. 원주시 발전을 위해서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Q. 주차장 확보가 필요한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은가? 

Q. 다른 부지를 활용하여 주차장을 조성할 수 있지 않은가? 

Q. 왜 꼭 아카데미극장 부지인가? 

Q. 원주는 어떤 도시인가?

Q. 아카데미극장 보존활동은 다른 도시(혹은 지역)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Q. 아카데미극장 보존활동이 원주 지역 전반에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가?

Q. ‘문화를 만들어 간다.’ 는 의미에서 아카데미극장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었을까? 

Q.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있는 것을 충분히 활용하여 만들어 나가는 행보를 쌓는 것도 좋은데, 이러한 행보를 구태여 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Q.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원주?’ 라고 물었을 때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나 키워드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Q. 아카데미극장이 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Q. 원주의 미래는 누구에게 달렸는가?

Q. 아카데미극장을 기억하고 경험한 사람들에게 아카데미극장은 어떤 의미인가?

Q. 아카데미극장의 철거는 아카데미극장만의 문제일까? 

Q. 아카데미극장에 대한 기억은 특정 세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