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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an 16. 2024

[기고]서울을몸으로 느끼고 지도에 없는 나만의 길만들기

* 해당 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어딘가 이동할 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지도다. 지도는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해 준다. 물론 지도를 만든 사람, 용도, 목적, 기능에 따라 담기는 범위와 내용은 다르다. 행정구역이 변경되고, 도로•철도 개설로 교통망이 확대되고,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바다가 되기도 하면서 지도 위 경계선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고, 적재적소에 맞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도시의 속성을 이해하고, 지리에 밝아야 하며, 아주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춰야 한다. 아쉽게도 모든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던 나는 지도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까만 것은 글씨요 조각난 땅들은 그림이었다.


서울 상경 이후 회사와 집만 반복적으로 오갔고, 주말에는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를 주로 다녔다. 그 외 장소는 가 본 일이 없어 서울 지리를 잘 알지 못했다. 모르면 찾아보면 될 것을 그땐 낯선 장소에 잠시라도 발을 디디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는 밤이 되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늦게 귀가하는 날엔 길을 잃을까 노심초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야 할 서울은 낯설기만 했다. 더 늦기 전에 서울 지리를 익혀 몸이 반응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골목 구석구석, 이름 모를 동네 어딘가를 걸으며 서울을 조금씩 알아가던 중 우연히 회사 동료들과 걸어서 반포대교를 건넜다. 출발지는 이태원이었고 도착지는 반포였다. 매번 대중교통으로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했는데 대교를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반포대교. ©서울수집

이때부터였다. 익숙지 않은 지도 앱을 켜 목적지를 설정하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도착할 때까지 지도가 안내하는 길이 아니라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걸었다. 혹여 길을 헤매면 정해둔 목적지에 꼭 가지 않아도 된다는 느슨한 규칙을 정했다. 처음 정해 놓은 곳은 길이 익숙해지면 다음에 가면 됐다. 가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고 가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익힌 길은 다음에 왔을 때 잊지 않게 되고 그 길은 곧 나의 길이 되었다. 지리적인 감각을 몸으로 익히고 걸었던 길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나만의 지도를 완성해 갔다. 한번 걷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걷고 다양한 방법으로도 걸었다. 그럴 때마다 목도하게 되는 풍경과 분위기는 모두 달랐다.


가끔 막다른 길이나 끊긴 길, 산을 올라야 하는 길과 만나곤 했다. 돌아갈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나 자신이었다. 이때 지도에 표현되지 못하거나, 표현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굳이 걸었다.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당 장소가 위치한 지역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을 찾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과정과도 같았다. 어느 이름 모를 동네에서 봤던 풍경, 분위기, 냄새, 스쳐 지나가며 마주했던 사람들은 수치나 객관적인 지표로써 표현될 수 없다. 


감각으로 느낀 부분들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공통된 정보로 담아내기 어렵다. 이러한 지점은 시간을 어긋나게 하고, 장소성을 드러낼 수 없는 한계점을 반영한다. 사방으로 흩어진 정보 안에서 도시마다의 정체성을 드러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름 모를 누군가 선택한 정보로 표현된 지도를 보며 우린 과연,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오랫동안 나에게 지도는 벽을 장식하는 멋진 장식물이거나 길을 찾을 때 필요한 수단 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도가 지표면을 축소해서 그려낸 객관적인 기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지도를 실제 공간의 반영물이기 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간을 그려내기 위해 만든 창작품으로 이해한다. 지도는 상상력을 통해 그려지는 일종의 언어이자, 보는 사람들 역시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해석하게 되는 소통의 매체인 셈이다. 그리고 소통을 위한 지도를 만드는 과정은 곧 한 시대의 역사적 이해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지도는 철저히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8, <지도 만드는 사람>, 심혜인


저자는 사람들이 지도의 객관적 정보를 100%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하고 자기만의 해석을 덧붙여 소통하는 도구로써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이라고 전한다. 어떤 특정 장소를 언급했을 때 모두가 같은 풍경과 같은 건물을 보지 않는 것처럼 각자가 인지하고 있는 장소의 이미지가 다른 것이다. 각 이미지가 모이고 쌓이면 그 장소가 가진 이야기는 풍부해진다. 그때 비로소 지도가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객관적 수치, 데이터, 기호로 만들어진 지도와 주관적 이미지, 이야기가 담긴 지도는 목적과 대상이 애초에 다를 수 있다. 결국 각자가 어떻게 활용하고, 표현하는가에 달렸다. 나의 경우는 객관적 데이터로서 제공되는 정보보다 이미지와 이야기로 구성된 정보가 해당 장소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에 있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길을 걸으면 이미지와 이야기가 만나 몸으로 감각하게 되면서 지도가 완성 되는 것이다.


동네를 주제로 한 전시에서 사람들이 직접 그린 지도. ©서울수집


몇 년 전 동네를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다. 이때 관객 참여로 지도를 그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정보를 제공하는 지도가 아닌 각자 마음속에 있는 동네 지도를 그리길 요청했다. 전시가 끝나고 확인한 지도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네 모습이 담겨있었다. 비슷한 지점도 있었고, 다른 지점도 있었다. 누군가는 보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 관심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동네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같은 동네지만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았다. 각자가 그린 동네 지도는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걷고, 헤매고, 지도에서는 알 수 없는 흔적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되짚고 몸으로 감각하는 자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만의 지도를, 나는 나만의 서울 지도를 완성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여섯 개의 서울은 곳곳을 다니며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수집해 온 나만의 서울지도다. 지극히 ‘사적인 지도’로 보여 질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니 궁금하다면 눈 크게 뜨고 지켜봐주길 기대한다.


* 저널서울에서 보기

https://www.journal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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