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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Dec 13. 2024

보광동의 일상과 연극: ‘월간연극’을 통해 만난 사람들


* 해당 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재개발의 경계에서: 보광동을 기록하는 남선희 배우의 이야기(2)
아이들과의 특별한 공연부터 재개발 속 동네의 진정한 의미까지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12월 연극 '버려진 것들' 중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Q. ‘나’를 가져와서 이야기를 풀다가도 아이들이 공연 했던 순간도 있었는데, 어떻게 진행이 된 건가요?

바라카 작은 도서관 대표님이 예술가들이 뭘 한다고 하니까 초반에 연극을 보러 오셨어요. 그때 연이 돼서 아쉬 랩 대표님도 공간을 무료로 쓰게 해 주셨고요. 사전에 아이들에 관해서 ‘바라카 아동들이 예술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다.’고 전해주셨어요. 이슬람 문화권이고, 사정을 가진 친구가 많은데 한국 사회에서 학교 다니면서 적응하기 쉽지 않은 거예요. 부모님은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하니 한국 아이들과 격차는 계속 벌어져요. 마침, 바라카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었고, 대표님이 여유가 된다면 한 번 정도 아이들과 연극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제안을 주셨어요.


팀원들과 논의해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했죠. 방학 때 짧게 연극 캠프처럼 진행하기로요. 돌아다니다 보니 <행복나눔재단>이라는 공간도 알게 되고, 이런 좋은 프로젝트라면 공간을 그냥 쓰게 해주겠다고 한 거죠. 공연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흘러가는 상황이 월간 연극 취지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들과 논의하다가 ‘애들 연극 수업하고 나서 작은 발표회 하면 그게 월간 연극이잖아. 새로운 포맷을 할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Q. 일정이 촉박했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12월 연극 '버려진 것들' 중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그 부분에 있어서는 팀원들한테 너무 감사했어요. 선택의 결정권은 저에게 있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팀원들과 함께하는 거잖아요. 팀원이 많은 것도 아니고 4명이 하거든요.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었어요. <월간 연극> 끝나면 첫 주 쉬고 그다음 주에는 제가 돌아다니면서 아이템을 찾아요. ‘이번 달 이거다.’ 아이템 제안하면 친구들과 논의해서 ‘디벨롭 해 보자.’가 되고, ‘야 큰일 났다. 이번 달 망했다 못 찾겠다.’ 이러면 ‘고민해 보자.’ 이런 식으로 항상 팀원들이 다 백업을 해줬어요.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12월 연극 '버려진 것들' 중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그러다보니 월간 연극은 2~3일 전에 텍스트가 완성된 날들이 많아요. 대본 공유한 뒤에는 ‘쓴 게 대단하다.’ 이러면서 당당하게 공연을 했던 것 같아요. 바라카 아이들과의 7월 공연도 그렇게 진행되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춤추거나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부모님들이 너무 행복해했어요. 12월에 한 번 더 할 수 있는지 문의가 와서 고민하다가 ‘그냥 하자. 바라카 애들 조금 더 몇 번 더 연습해서 하면 되지 않냐.’라고 해서 진행했는데, 부하가 걸려버렸죠. 


Q. 아이들은 반응이 어땠나요?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8월 연극 '바라카' 중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즐거워했어요. 길에서 만나거나 바라카 작은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아이들이 환대해 주는 것을 느끼니까요. 즐거운 순간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 제게는 아이들과 제가 재밌는 순간을 함께 기억하는 것 거기까지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가장 애정 하는 <월간연극>은 무엇인가요? 

바라카 아이들과의 공연이요. 저희끼리 했으면 동네 산책하고 끝인데, 바라카 아이들 공연은 최소 단위 연습이 6번 이상이고 한 번 할 때마다 2시간에서 3시간씩 같이 부딪히고 이야기 나누거든요. 평소,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저는 편견이 엄청 많이 작동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8월 연극 '바라카' 중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물론, 편견의 기저에는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사실이 너무 과장되면, 고립되게 만드니까요. 계속 고립되면 편견대로 되잖아요. 막상 만나보면 똑같거든요. 바라카 아이들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가장 소중한 만남이지 않았나 싶고요. 요즘 아이돌 음악에 맞춰서 춤추고 노는데, 부모님이 자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불가능하거든요. 근데 아이들은 한국문화를 익힌 한국인인거에요. ‘선생님 블랙 핑크 노래 틀어줘요. 뉴진스 노래 틀어줘요.’ 이러면서 자기네들끼리 누가 제일 좋은지 투닥 거리는 모습이 제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싸웠던 것과 똑같다고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이런 걸 계속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가부장제가 강력해요. 공간 안에서도 남녀가 분리돼 있어요. 가부장적인 제도를 벗어나 서로 존중할 수 있고 배워가는 것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사단길에 있는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저널서울 정민구

이후에 사원 근처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괜히 말 걸면서 안부 전하는 그런 경험들이 소중해지더라고요. <월간연극>할 때도 그랬지만, 아이들과의 시간을 통해서 보광동, 한남동, 이태원 일대가 진짜 ‘나의 동네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년기에 나고 자랐던 곳이 고향이기도지만 부모님과 집을 떠나서 살아온 서울에서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딱히 없었어요. 늘 그냥 사는 곳. 이웃을 알아야 할 이유가 딱히 없는 공간들에 있다가, 보광동에서 살았던 4년 6개월 동안 작업을 하면서 진짜 동네가 됐어요. 처음 작업할 때 친구들이 꼬집어서 이런 말을 했었거든요. ‘아니 너 맨 처음에 가장 이용해 먹으려는 눈으로 쳐다봐 놓고는 왜 점점 동네를 사랑하나?’고요. ‘그러니까. 나도 그게 아이러니하다. 이 동네 살면서 계속 보니까 사랑하게 돼버렸다.’라고 했어요. 


Q. 시대가 바뀌면서 이웃도 예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잖아요. 보광동 같은 곳이 사라지면, 기존 개념이 유효할까요? 이웃을 향한 관심이 유지될까요?

보광동 골목. ©저널서울 정민구

다른 커뮤니티가 생성되겠죠. ‘그들만의 리그’가 완벽해지겠죠. 인간은 결국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전해지고 싶으니까요. 안전해지려면 나의 이웃을 알아야 되잖아요.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어느 집에 나와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는지 혹은 엄마나 아빠가 된다면 내 아이의 친구네 집이 어딘지, 또 어떤 애들이랑 어울리는지를 알아야 되잖아요. 그런 것들이 동네에서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보광동처럼 골목과 연결된 형태는 ‘동네’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데, 아파트가 되면 커뮤니티가 되겠죠. 커뮤니티 라운지 같은 특정 범위 안에서 어울리겠죠. 


Q. 보광동과 비슷한 동네에서는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유효하지 않을까요?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동네에 대해 제가 단언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유년기를 보낸 부모님 댁은 내게 동네이고, 보광동이 내게 동네이다. 나와 다른 개념의 동네를 모두 하나씩은 갖고 있지 않을까요? 


Q. 연극 보러 오신 분 중 기억나는 사람이 있나요?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11월 연극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다 해서 이번엔 정말로 무엇을 할까 고뇌하는 11월호를 맞이하며.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우연히 들어온 관객들도 있었고, 매달 와 주신 관객들도 계시거든요. 매달 뭔가 발견할 때도 있고, 발견하지 못한 때도 있고, 어물쩍 넘어간 때도 있고, 온 힘을 다한 때도 있는데, 그런 기복을 꾸준히 봐주신 분들이 있어서 계속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저희끼리 농담처럼 웃으면서 그랬거든요. 학교 다닐 때 연기 연출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해야 할 걸 지금 1년째 하고 있다.’라고요. 그러는 중에 매달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신 분들이 기억에 남고 감사한 것 같아요. 


Q. 집으로 초대한 월간연극이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옥상풍경도 멋있었고요. 

한남3구역 일대에서 본 석양. ©서울수집

보광동 집에서 제일 좋아했던 게 옥상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극장이나 아쉬랩에서 옥상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이 집에서 나가면 아무도 없고, 곧 사라질 테니 ‘이 집에서 하자.’고 생각하고, 첫 번째는 냉장고 털기하고 두 번째 물건 털기 해서 짐을 줄이는 방식이었죠. 저한테도 의미 있었고, 그 공간을 잘 떠나보낸 것 같아요. 아쉬 랩과 집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들어가서 가장 많은 걸 얻어서 나왔거든요. 처음 프로젝트 할 때 바랐던 것이 ‘이 집이 극장이 됐으면 좋겠다.’였는데, 거주 공간이다 보니 불특정 다수 관객이 방문한다는 점에서 안전·보안 측면에서 괜찮은 건가 싶었던 거죠.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집주인이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염려됐던 부분이 해결이 된 거죠. 


Q. 아쉬랩에서 전시할 때 대본을 비치 해두었잖아요. 대본에 ‘아버님이 건축업에서 일을 했고, 이사를 자주 했었다.’고 언급된 부분이 있었는데, <월간연극>을 기획할 때 연결된 부분이 있었을까요?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11월 연극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다 해서 이번엔 정말로 무엇을 할까 고뇌하는 11월호를 맞이하며.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글쎄요. 그 부분은 어쩌다 보니 연결된 것 같아요. <보광의 밤>이라고 해서 Bar 컨셉으로 보광동, 이태원, 한남동 나눠서 이야기할 때였던 것 같아요. 보광동을 제가 담당했었고요. 그런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개발업자, 즉 아파트를 짓는 사람이었는데, 제가 지금 재개발 지역에 살고 있으니까, 인생은 알 수 없다고요. 지방에서 꽤 큰 건설사 사장님이었고, 일이 잘 안 풀리면서 사정이 안 좋아졌으나 이전 삶은 풍족했어요. 지금 예술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예술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많이 주었기에 연극을 할 수 있었던 거죠. 동시에 개발업자 딸이었는데, ‘재개발 지역에서 나가기 직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웃기다. 연극적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삶은 이렇게 뒤바뀔 수 있는 건데 일반적으로 영원할 거로 생각하고 살잖아요. 


Q. <월간연극>으로 진행했던 것 중에서 가장 ‘보광동스러웠다.’고 생각했던 주제는요?

한남3구역 일대에 버려진 냉장고. ©서울수집

냉장고요. 각각의 특징을 명확하게 가진 것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섞이진 않잖아요. ‘그 안에 잘 보존되어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게 좋든 싫든 삶의 층위를 다 보는 거예요. 김여정 작가님이 쓰신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 책에 그런 내용이 나와요. 이태원에 ‘양공주’라고 불렸던 사람들도 살았는데, 그들에게 함부로 ‘네 삶은 잘못된 거야.’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고요. 그냥 똑같이 이곳에 사는 주민이고, 다양한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여겨야 한다고요. 저는 그 지점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삶도 아주 부자였던 시기와 가난했던 시기가 있었듯이, 우리 삶이 역동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함께 경험하면서 보고 알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잖아요. 

한남3구역 일대에 버려진 냉장고. ©서울수집

제 삶의 키워드는 건강한 삶이거든요. 한국 사회는 특정 목표를 정해놓고,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과 압력이 엄청나게 크잖아요. 인생은 계속 오뚝이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넘어질 때도 있고 일어날 때도 있고 다칠 때 있듯이 다양하게 많은데, 그것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동네가 보광동 일대였다고 생각해요. 이 안에서 살아가는 누구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는, 그러면서도 서로가 무사히 잘 살아내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아서, 버려진 냉장고로 정했던 건데, 보광동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Q. 재개발이 진행되면 예전 보광동처럼 될 순 없겠지만, 변화된 보광동이 최소한 이러한 곳이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람 같은 것이 있을까요? 

글쎄요. 변화된 보광동은 이전과는 다르겠죠? 그 공간을 사유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달라질 테니까요. 그저 보광동 같은 공간들이 우리에겐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전부입니다. 


Q. <월간연극> 대본을 묶어서 책 만드신다고 살짝 언급해주었는데, 기대해도 될까요?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11월 연극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다 해서 이번엔 정말로 무엇을 할까 고뇌하는 11월호를 맞이하며.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 최도아

대본에는 인터뷰이 말을 제대로 다 실지 못한 상태였어요. 연극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만 정리해 놓은 거였는데, 전체를 정리를 해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더라고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일단, 논문을 먼저 쓰고 다음에 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10월에 작품이 하나 있는데, 아예 새로 쓴 내용이에요. ‘극장전’이라는 여행자 극단에서 하는 페스티벌에 초대받아서 공연을 할 것 같고, ‘배우로써 연기를 잘하는 것이 뭘까?’라는 고민하고 있어서 워크샵을 듣고 훈련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습니다.  


피플 앤 더 시티(People and the City)

살면서 우리는 각자 살고 있는 도시를 가깝게 마주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먹고 사는 일이 바쁜 현실 속에서 마음을 쓰고 들여다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먹고 사는 일’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위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지나쳤던 것들이 나의 이웃과 나의 삶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계속 무관심할 수 있을까요? 여기,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터’에서 어떠한 지점으로부터 삶이 연결되는지를 깨닫고 도시를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다만, 그 깨달음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과 이슈를 더 이상 모른척 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도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냅니다.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삶 속에서 도시와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발견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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