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동을 담은 영화, 무너지지 않는다
3명의 감독, 3개의 이야기로 구성, 원주를 살아가던 평범한 시민들이
관찰자에서 주체자로써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과정 담아
2022년 어느 날, 원주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아카데미극장에서 시민기록가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데, 혹시 워크샵 진행을 맡아 줄 수 있냐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기록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러 한 달 동안 원주를 오갔기 때문이다. 수업을 듣던 수강생이 워크샵을 진행하게 되다니 감개무량했다. 워크샵을 통해 원주라는 <도시>와 원주 아카데미극장이라는 <공간>을 기록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공통 기억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연이 이어져 원주와 아카데미 극장을 기록했다. 그러던 중, 아카데미극장의 철거 소식이 들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과 여러가지 상황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아카데미극장은 문이 닫힌 채로 한참이나 있었다. 인근에는 원주극장, 시공관, 문화극장 등 다른 극장들도 있었지만 모두 철거되었고, 아카데미 극장만 남아 있던 상태였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5년부터 극장보존활동을 진행했다. 시민대상 설문조사, 포럼, 연구프로젝트, 문화 재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운영구조 논의, 실측 조사, 시민 자산화를 위한 행정적 절차도 밟아 나갔다. 2021년에는 시민 모금 1억 원 확보,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재청장상(현 국가유산청상)수상하면서 2022년에는 원주시가 아카데미 극장을 최종적으로 매입했다. 연이어 2023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유휴공간 재생 사업 선정, 국도비 39억 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민선8기에 들어서며 갑자기 아카데미극장 철거가 결정되었다.
8년 동안 많은 사람이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철거 예정 발표 후 보존 활동을 위해 결성된 아카데미의친구들은 끊임없이 정책토론회, 의견 수렴을 통해 원주시장에게 대화를 요청했지만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결국, 철거가 진행되었다. 아카데미의친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아카데미 극장 보존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5월에는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무너지지 않는다>가 제작되었고, 6월 에는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다.
**아카데미의친구들: 아카데미극장 보존활동을 위해 모인 시민들을 지칭
영화는 물리적 공간으로써의 아카데미극장은 철거되었지만, 보존 활동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존활동이 원주 시민이자 개인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알려주고, 앞으로도 행보를 계속 이어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영화 <무너지지 않는다>는 3명의 감독이 각각 에피소드를 연출하여 구성한 옴니버스 영화다. 그 중에서『아카데미에서 만난』을 연출한 미자리 감독 만나 무너지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원주에서 책 만들고 영상 작업하는 미자 리입니다.
Q. 아카데미극장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어떻게 참여 하게 되었나요?
아카데미 극장이 철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주환 프로듀서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아카데미 극장을 주제로 다큐를 만들자고 하시더라고요. 전화 받고 ‘이게 말이 되나?’ 싶었어요. 아카데미 극장 철거 이후 그 어떤 것도 회복이 안 된 상태여서 너무하다 싶었죠. 제가 전화로 제안받으면 거절을 잘 못해요. 충동적으로 수락해 버린 거죠. 다른 분들과 같이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하시는데, 거기서 정신이 딱 들더라고요. 공동 작업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옴니버스** 형태로 만드는 것이 어떤지 제안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옴니버스: 각자 독립되어 있는 에피소드
아카데미보존활동을 담은 영화 <무너지지 않는다>는 3명의 감독이 연출한 각각의 에피소드가 묶여 제작되었다. <시민귀민>, <아카데미에서만난>, <노란텐트> 총 3편이며, 영화전체를 총괄한 박주환프로듀서와 함께 4명이 영화를 만들었다.
Q. 영화 제목이 ‘아카데미에서 만난’인데,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요?
그 전에 개인 다큐를 작업 중이었어요. 저를 아카이브 하는 영화인데, 아카데미극장은 저한테 꽤 중요한 존재여서 영화에서도 많은 분량을 차지해요. 그 소스를 활용한 거죠. 완전히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닌, 제가 수집하고 다듬은 것 중에 가져왔어요. 영화 초반에는 관찰자 입장에서 극장 물건들을 조명했고, 후반에는 제가 주체가 되어 영상에 등장하는 흐름으로 전개해 봤습니다. 영화 제목대로 ‘아카데미에서 만난’ 것들(사람들)의 총집합이 영화의 주제나 다름없어요.
Q. 어떤 방식으로 제작 되었나요?
영화를 제작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진 않았어요. 이미 아카데미극장 이야기가 있었고, 다큐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가 뚜렷하게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거든요. 극장 구석구석을 담은 영상에 제가 경찰서로 연행되는 영상을 붙여 에스컬레이터식으로 고조되는 상황을 보여줬죠. 극장을 향한 저의 마음이 점점 커지는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요. 또 <무너지지 않는다>의 인트로를 제가 담당했거든요. '사회적협동조합 모두'에서 아카이브 해 놓은 아카데미극장 영상들을 빠짐없이 보고, 출처가 없는 것은 팀원들과 함께 출처를 찾는 작업을 했습니다. 기록과 정리의 중요성을 체감했어요. 과거 극장 자료들을 보며 행복했던 건 말할 것도 없고요.
Q. 이쯤되니, 아카데미극장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영상미디어센터 담당자님이 14년 만에 아카데미극장 문을 여는데, 청소하러 와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청소하면서 쓸모없는 물건들이 나오면 가져가도 된다고 했어요. 바로 간다고 했죠. 워낙 문 닫힌 극장에 대한 호기심이 컸으니까요. 그렇게 극장과 이어졌다고나 할까요. 실은 청소하기 전에 극장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어요. 안엔 화장실을 수리 중인 분이 계셨고, 저는 혼자 몇 시간이고 극장을 돌아다녔죠. 흥분되고 신나고 무섭고 황홀한 하루였어요. 그때 찍은 영상들이 <아카데미에서 만난>에 쓰였습니다.
Q. 영화 속 장면에서도 흥분과 신남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동시에 경찰들이 활동가를 연행하는 것을 보고 강한 어조로 경찰서장에게 말을 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건가요?
원래 화날 때 제일 말을 잘하기도 하고요. 극장을 너무 지키고 싶었어요. 극장이 사라지면 조카한테 아주 창피할 것 같았어요. 사랑하는 곳 하나 못 지키는 도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원하는데, 시민들의 목소리를 뭉개버리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걸 아이한테 각인시켜 주기 싫었습니다.
Q. 그런 순간을 마주하면서도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동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나요?
포기가 안 되었죠. 저보다 몇 배는 힘들여서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포기할 자격이 없었어요. 8월 8일 시청 공무원들과 대치하던 날, 경찰 중에 제가 아는 분이 있는 거예요. 같은 체육관을 다니는 분이었는데, 자신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여성을 밀치는 걸 보고 환멸감이 들더라고요. 이러려고 ‘예를 중시하는 운동을 배우나’ 싶고요. ‘시장이 이렇게 시민들을 갈라놓는구나, 이런 시장이 있는 곳에 사는구나.’ 싶었죠.
Q. 아카데미극장 보존 활동 하는 분들 외에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글쎄요. 그분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시니, 알 길이 없네요. 한번은 지인이 “(아카데미극장)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왜 뉴스에서 못 봤지?” 하는데,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찾아보면 다 나오는데. 그렇지만 관심도 에너지가 필요한 거니까, 서운한 마음을 지웠죠.
Q. 영화 제작 과정에서 기억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많아요. 감독 셋이 늦은 밤 작은 상영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내레이션 녹음하던 것도 생각나고요. ‘DCP**’라고 영화제에서 요구하는 상영 포맷이 있어요. DCP가 잘 나오는지 테스트하려면 극장에 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대관비가 너무 비싸서 영업이 끝난, 밤 12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강릉의 극장으로 가서 테스트하던 것, 틀어봤더니 문제가 너무 많아 원주로 돌아오는 길이 침울했던 것, 그 와중에 DCP가 담긴 외장하드를 강릉에 두고 와서 그걸 찾으러 다른 날 또 강릉에 간 것이요.
**DCP: 시네마 서버용으로 구성된 오디오, 비디오 및 메타데이터 파일
Q. 영화 상영 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원주에서 상영회를 했는데, 너무 많이 우시는 거예요. 그분들은 영화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잖아요, 당사자니까. 영화로 기록을 남긴 걸 많이 고마워하셨어요. 극장이 철거된 지 반년도 안 돼서 나온 영화거든요. 시기적절하게 이 분노를 다른 곳으로 전파할 수 있는 걸 고마워하셨죠. 다른 지역에서 상영했을 때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는 반응이 많았고요. 저희 영화가 생각보다 많이 '셌다'고 하더라고요.
Q. 관람객들에게 영화가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요?
2023년인데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 모든 것이 개발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지만, 낡고 오래된 것들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 원주에 이렇게 근사하고 매력적인 극장이 있었다는 것. 이 정도만 알아주셔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Q. 아카데미극장은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다른 도시에서는 어떤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철거를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작은 극장을 운영하는 분이 비슷한 질문을 해주셨었어요. 아카데미극장은 극장을 사랑하고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신이 일하는 극장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극장을 지킬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질문이 마음 아프고 어려웠어요. 우리도 못 지켰으니까. 일단 기록을 해놓으시라고 했어요. 영상이든 사진이든 글이든 철저하고 낱낱이. 그러면 극장이 사라졌을 때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인 것 같아요.
Q. 그런 측면에서 아카데미극장 보존활동은 다양한 콘텐츠로 연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의 메시지라기보다는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많이 쓰는 표현인데 ‘그래도 사람이 남았다’는 거예요. 정말로 사람은 남아 있고, 덕분에 목소리를 어딘가로 전파할 수 있고, 그들의 기록들도 남았고요. 아직 해볼 만한 게 많이 남았잖아요. 비록 극장은 무너졌지만, 또 다른 극장의 초상을 만들 수 있는 거니까요.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처럼 누군가는 기록집을, 그림책을 만들고,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어요. 아카데미극장과 연결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무언가는 여전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죠.
Q. 결과적으로는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되었는데요. 그 순간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연행돼서 경찰서에 있었기 때문에 철거되는 장면은 못 봤어요. 무너지는 극장을 똑바로 마주한 사람이 있어요. <무너지지 않는다>의 김귀민 감독이 그랬죠. 극장이 철거되는 걸 꿋꿋이 촬영하고 생중계까지 했더라고요. 어떤 마음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짠하기도 하면서 존경심이 들었죠.
Q. 감독님의 삶에 투쟁 활동이 들어온 이후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요?
다른 지역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나, 더 관심 두고 보려고 해요. 구미의 두 여성 노동자들, 파주의 여성들, 나도 잘 알고 있는 **물류센터의 환경과 그 안의 사람들. 이런 것들에 대해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하고 싶은가, 자주 생각해요. 극장 철거 후 원주에 뭐가 남았고, 또 뭐가 사라져가고 있는지 집착하는 한편 뒤로 물러나 있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가도, 무엇도 기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사라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마음은 여전해요. 그것을 기록으로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요.
Q. 영화 제목이 <무너지지 않는다.>인데, 정말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극장을 다룬 그림책도 거의 다 작업해놨고, 극장이 꽤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인 다큐도 열심히 작업 중이에요. 곧 사라질 것들, 이미 사라진 것들도 틈틈이 기록해 놓고, 원주가 조금 싫어져서 남들은 어떤 곳에 사나, 눈도 돌리고 있어요. 남의 마을 탐방이랄까요. 무너지지 않고 계속 가는 게 아닌,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멈췄다가 다시 가야죠. 다행히 제겐 그럴 힘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