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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Dec 13. 2024

운명 같은 나의 한남동에서, LP바 리저브

* 해당 글은 저널서울에 기고된 글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이태원에 위치한 LP바 리저브 ⓒ서울수집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쫓겨나면 어떤 기분일까? 그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을 운영하는 건 또 어떤 의미일까? 이야기 듣는 내내 여러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이태원에서 <리저브> LP 바를 운영하는 나상운 대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 일대에서만 3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럼에도 거주지는 한남동에, LP바는 이태원동에 거점을 두고 있다. 그가 동네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LP바 : 리저브의 탄생 

리저브의 나상운 대표 ⓒ서울수집 

Q. LP바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요? 

회사에서 연차가 쌓였을 때 비전이 안 보이면 보통 이직하게 되잖아요. 어딜 가더라도 팀장급으로 가야 하는데, 새로운 곳에서 기존 인원들에게 인정받으며 팀을 운영하는 상황이 벅차게 느껴졌어요. 지금 나만의 것을 하지 않으면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주변에 음악 하는 친구도 있고, 틈틈이 디제이로서 활동하며 부수입도 생기다 보니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리저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리저브는 와이너리에서 제일 좋은 와인을 칭하는 뜻이에요. 오래 숙성하는 만큼 시간과 공이 들어가죠. 스포츠에서는 예비 선수를 리저브라고 하고요. 교체선수가 경기 흐름을 바꿀 때 투입되듯이, 제가 그동안 모아온 아카이브가 이제야 경기에 투입되는 리저브 같다고 생각했어요.


Q. 바 위치를 이태원으로 선택하신 이유는요?

제가 사는 곳이자 자주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한남동, 이태원 일대거든요. 또, 이동하는 거리나 교통편을 고려 해 봤을 때 서울 어디에서 출발하든 중간에 위치한 이태원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더 의미를 덧붙이자면, 미군 주둔 시절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고,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어도 이 부근을 우선순위로 봐두었을 것 같아요.


직접 모은 LP판들 ⓒ서울수집


Q.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할 수도 있나요?

LP로만 틀어야 해서 신청곡을 따로 받지는 않고, 날씨나 시기에 맞는 테마를 잡아서 즉흥적으로 틀어줍니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신나는 음악을, 비 오는 날에는 차분한 음악, 한글날에는 가요를 트는 식으로 운영합니다.


Q.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LP판이 있나요?

한국에만 있는 DJ 홍보용 LP판이 조금 특별합니다. 일반 소비자는 구매할 수 없고 1990년대 DJ들에게만 배포되던 음반이에요. 한국에서는 소매용 LP 생산이 1995년에 끝났거든요. 근데 클럽이나 라디오에서 DJ들이 LP판으로 노래를 틀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었어요. CD로 플레이하는 기술이 보편화 되기 전이라 2000년대 초반까지도 DJ들이 LP판으로 노래를 많이 틀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LP 수요가 계속 있었어요. LP판을 들고 가수와 매니저가 전국을 돌면서 라디오, 클럽 DJ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홍보하던 시절의 낭만이 있다고 할까요. 사람이 많은 곳에서 DJ들이 LP판을 틀어 주는 만큼 홍보가 되던 시대여서, 음악계에서 DJ의 영향력이 컸고, DJ가 음반 제작자로 전업하는 일이 많았어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Q. 음악을 주제로 네트워킹 하는 모임이나 그룹도 있나요?

특정 그룹이 있기보다 오며 가며 만나게 되는 이벤트나 장소가 늘 있고, 서로 끌어올려 주는 문화가 있어요.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협업하기도 하고요. 취미가 문화이거나, 직업인 사람들 중심으로 더 모이는 것 같아요. 사적이면서도 비즈니스이기도 한,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이죠. 다들 즐기며 협업하니까 네트워킹이 활발한 것 같습니다. 자주 마주치는 만큼 사적으로 혹은 일로 연결되니 주변에 살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픈하자마자 들어온 손님들 ⓒ서울수집

Q.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오픈 초창기에 집이 바로 앞이라 찾아온 단골손님이 있었는데, 실연당하고 우울하게 있길래 마감 시간 지나서까지 일부러 슬픈 노래를 틀어주면서 놀리듯 달래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은 유튜브로 신청곡을 요청하셨는데, LP로만 음악을 트는 업장이어서 판이 없으면 신청곡을 틀어드릴 수 없다고 했는데 다짜고짜 욕하셨어요. 보는 손님도 많았는데 몸싸움도 조금 있었고 돈 안 받을 테니 나가달라고 했어요. 명함도 받았는데 검색해도 안 나오는 유령회사더라고요.


Q. '리저브'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화려하진 않지만 오랫동안 같이 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가는 사람 중 자신의 취향과 맞는 곳이라면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고, 그런 손님들이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리저브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창 밖 풍경 ⓒ서울수집

돌고 돌아 이곳에서 :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하다 


Q. 구축 아파트에 거주 중이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되었나요?

2019년부터 살았으니까 4~5년쯤 되었어요. 기간이 길진 않은데 2016년도부터 구축아파트에서 살려고 계속 찾아봤었어요. 2014년에 직장과 가까운 한남동으로 처음 이사왔고, 그때만 해도 한남동은 다세대 주택의 월세가 저렴했었어요. 근데, 4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건물이 팔리거나 상가로 용도가 변하면서 쫓겨나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가로 바뀌지 않는 거주 공간을 고민하다가 구축 아파트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Q. 상가로 바뀌진 않지만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구축아파트만의 장점은? 

복합적인데요. 주택 경우 평수와 가격만 보면 저렴한 집들이 꽤 있지만, 월세가 10만 원 이상 저렴해도 단열이 안 좋아서 전기와 가스비로 10만 원을 더 내야 하는 집도 있고, 해가 드는 시간이 너무 짧거나 겨울철에 제설이 용이한 길목인지 등 하나씩 조건을 살피다 보면, 결국 이유 없이 저렴한 집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다세대주택 볼 때 창문이 샷시인지 커튼을 치고 사는지부터 봅니다.) 원했던 지역의 다세대 주택 경우 상가로 용도 변경되면서 퇴거 경험을 두 번이나 겪었고, 상가로 바뀔 여지가 없는 곳은 차 한 대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좁고, 치안이 잘 안 되어 있어 위험하거나, 택배기사님이 어려워할 만큼 너무 골목에 있거나 교통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았어요. 리모델링된 다세대 주택은 가격이 주변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쌌습니다. 또 집주인 거주 여부와 성향에 따라 골치 아픈 경우가 있었습니다. 옥탑방 살 때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수시로 옥상에 올라와 화초를 키운다거나 목공을 한다거나, 요청도 안 했는데 집에 들어와서 문을 고치고 간다든지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살아 보지 않고선 집주인의 성향이 어떤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변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세대, 다가구 밀집지역 중 하나인 한남동과 보광동 ⓒ서울수집

다세대주택 밀집 구역은 골목에서 누가 떠들기만 해도 너무 잘 들리고 서로 조심해야 하는 묘한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런 고민이 있던 찰나에 아파트는 많은 가구가 한 건물에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최소한의 것은 지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개발 이해관계가 복잡하거나 상가로 바뀌지도 않아서 하루아침에 쫓겨날 일도 없고, 집주인과 가까이 살지도 않고요. 재개발이 예정된 아파트를 투자로 구매했다가 세를 놓는 경우가 꽤 있고, 건물의 노후와 하자보수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지쳐있는 집주인이 꽤 있었습니다. 월세가 저렴한 대신 세입자가 그냥저냥 살아주길 바라는 집주인을 만났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선 동의하고 계약기간을 연장하여 살고 있습니다. 재개발이 안 됐으면 하는 세입자와 재개발을 바라는 집주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공생하는 지점에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후에도 한두 번 정도는 구축 아파트에서 더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이전 살던 집에서 쫓겨난 이유는요?

2014년 8월, 처음으로 한남동 제일 기획 근처로 이사 왔습니다. 2층짜리 다세대 주택 2층에 살고 있었고 집주인이 1층에 살았습니다. 2015~2016년쯤 인근 집 대부분이 상가로 용도가 바뀌던 시기였고, 집주인이 지하 1층, 1층을 상가로 임대를 놓게 되면서, 2층에 직접 거주하겠다며 계약연장을 거부한 상황이었습니다. 급하게 인근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했는데, 여기도 거주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건물주가 건물을 팔면서 상가로 바뀌었어요. 이태원에서 4년 동안 살면서 2번이나 쫓겨나는 경험을 하다 보니 ‘이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개발되지 않으면서 건물이 팔리지 않을 만한 곳이 어디 있을지 고민하다가 구축 아파트가 떠올랐습니다. 당시는 상황이 맞지 않아 눈여겨 본 구축 아파트로 바로 이사하진 못했고, 서대문 인근 아파트에 잠시 거주했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평수가 좁은 편이어서 답답한 면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창 시위가 자주 있을 때여서 동네에 가는 길이 매번 차로 막혔습니다. 여러 모로 불편한 점이 있다 보니 한남동에 괜찮은 집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렸고, 원했던 구축 아파트 매물이 떠서 급하게 이사했습니다. 그렇게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한남동에 있는 구축 아파트 ⓒ서울수집

Q. 만약,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와도 구축아파트 거주는 변함이 없는 건가요? 

아직, 집을 마련할 계획이 없어요. 현재 월세로 살면서 집을 옮기고 있는데, 작년과 재작년, 10년 전을 비교해 봤을 때 집에 대한 생각이 항상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구축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몇 년 뒤에는 안 그럴 수도 있어요. 앞으로 최소 40년 이상은 더 살 텐데 정해진 곳에서 살긴 이르다고 생각해요. '정착해서 살고 싶다.'는 확신이 들기 전이고 아직은 ‘적은 리스크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사는 구축 아파트에 정도 많이 들었어요. 한남동으로 돌아오면서 동네 친구들과도 계속 교류할 수 있었고, 가게 오픈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돌아오지 않았다면 억울한 대로 직장생활에 안주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포주공아파트도 봤었어요. 재건축 이슈로 15평인데도, 보증금 1,000/월세 60이었어요. 그때 이사를 결정했으면 2~3년 정도 살 수 있었는데, 바로 재건축될까봐 결정을 못 한 거죠.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재건축 아니라도 2-3년 살다 보면 다른 이유로 이사해야하는 상황이 늘 생겼었어요. 변수를 생각해 보면 재건축 때문에 이사를 가는 게 큰 이슈는 아닌 것 같아요.


Q. 한남동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집 내부는 살면서 바꿀 수 있는데, 입지는 못 바꾼다고 생각했거든요. 한남동이 교통도 좋고, 중간에 있어서 어디를, 어떻게 가든 30~40분 거리거든요. 또, 동네가 너무 정겨운 것 같아요. 산책하기도 좋고, 멀지 않은 곳에 쇼핑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놀거리도 있으면서 사람 사는 느낌도 나요. 타지역의 1인 가구도 많지만, 로컬 사람들도 많고, 문화가 있는 관광지이면서도 조용한 곳도 많아요.

다양한 연령대가 이용하는 망원시장 풍경 ⓒ서울수집

Q. ‘사람 사는 느낌’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모호하긴 한데…….망원동 망원시장에 가면 그런 느낌이 많이 있거든요.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있는. 요즘 이태원 메인 길에는 사람들 연령대가 다양하진 않아요. 젊은 친구들, 외국인이 조금 있는데, 반면에 보광동은 아이들부터 젊은 사람, 할머니까지 다 있어요. 서로 교류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연령대가 존재한다는 게 시야에 확 보이는 거죠. 그런 것들이 ‘사람 사는 느낌이 난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제가 만나는 연령대가 또래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다양한 나이대 사람들을 한 장소나 공간에서 보면 사람 사는 느낌난다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한남동도 그런가요?

작년까지는 그런 풍경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재개발 이주 때문에 아파트, 상가를 제외하면 주민들 대부분이 이주했어요. 한남역 주변, 유엔빌리지 아래쪽, 북한남 쪽 제외하고는 가족 단위로 장기 거주하셨던 분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네요. 이태원도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고, 이쪽은 주거지인데, 영업하면서 노래 크게 틀면, 문 닫고 있어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문 열릴 때 시끄러울 수 있거든요. 근데 민원이 안 들어와요. 외국인들이 옥상에 왔다 갔다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있더라고요. 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앤비 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주거 공간처럼 보이지만 상가 건물도 꽤 있는 거죠. 골목골목에 가게들이 좀 많이 생겼는데, 경리단길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한남3구역의 한남동, 보광동 ⓒ서울수집

Q. 앞으로 이 일대(이태원동, 보광동, 한남동)가 어떻게 변해갔으면 하나요?

보광동의 경우, 재개발 이후 길이 사라지고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이전에는 존재하던 보광동-한남동의 연속성이 없어질 것이라는 씁쓸함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재개발이 진행된 이후에 이 동네에 대한 애정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연속성을 가지려면 길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지역 활동도 생겨날 텐데, 길이 막히는 순간 기존에 있던 주거, 상업공간은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밖에 없고,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활력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늘 그랬듯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겠죠. 실현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개발 할 때 어느 정도 길의 형태를 보존하면서 단계적 개발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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