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선으로 만드는 답사, 상수-공덕코스
1 STEP) 지하철로 점찍기
처음 서울에 왔을 땐 지리를 잘 모르니 지하철을 타고 점을 찍듯이 이동을 했다. 버스도 충분히 탈 수 있었지만 내가 살던 도시와는 다르게 노선이 워낙 복잡한 데다가 종류는 어찌나 많은지 잘못 탔다가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어플을 검색해서 나오는 결과대로 버스를 타기만 하면 되는, 어찌 보면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빠른 속도로 달려와 사람들을 태우고 또다시 빠른 속도로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는 것이 너무 겁이 났다. 그렇게 서울에 상경해서 살면서 오롯이 지하철로만 이동하며 주요 장소(예, 홍대, 인사동, 광화문, 시청 등등) 들을 익혀 온지 3년이 되었을 때 쯔음 우연히 참여한 투어를 통해 서울의 많은 장소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알아 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2 STEP) 걸어보기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에서 시청역으로 가려면, 5호선을 타고 을지로 4가 역에서 하차 후 2호선으로 환승하여 이동해야 한다. 소요시간은 약 15분 정도이다. 버스를 타면 11분~17분 정도, 도로 상황에 따라선 그 이상도 걸릴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걸어가면 어떨까? 믿기지 않겠지만 9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걷는 데는 개인차가 존재하니깐 더 빨리 갈 수도, 더 늦게 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하철과 버스보다는 적게 소요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서울시청에서 서울역까지, 반대로 경복궁까지 혹은 종각역까지도, 전혀 다른 1,2,3,5호선 지하철 노선이 존재했지만 각역에 내려서 환승해서 가는 것보다 걷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거리가 가깝다는 의미다. 만약, 이 거리를 직접 걸어 보지 않고 계속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었더라면 어땠을까?
* 서울 주요 관광지 도보 이동시 소요시간
1) 광화문역 기준
광화문역 - 서울시청: 8분
광화문역 - 서울역: 26분
광화문역 - 인사동: 11분
광화문역 - 경복궁 or 경복궁역 : 7분
광화문역 - 안국역 : 14분
광화문역 - 정독도서관: 17분
광화문역 - 종각역: 9분
광화문역 - 을지로: 23분
2) 시청 기준
시청 - 명동: 10분
시청 - 을지로: 16분
시청 -남대문시장: 10분
시청- 남산 케이블카, 산책로 입구: 18분
위의 표 안에서는 주로 광화문과 시청 인근을 예로 들었지만, 서울 도심 중심부를 통과하는 지하철 노선도에 표시된 한 개의 역을 기준으로 해서 앞, 뒤로 두 개정도의 역은 30분 내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이다. 2호선 홍대입구 역을 기준으로 신촌, 이대까지 혹은 합정, 당산까지. 5호선 충정로역을 기준으로 애오개, 공덕까지 혹은 서대문까지. 1호선 용산역을 기준으로 남영, 서울역까지 혹은 노량진까지. 물론 한강을 건너는 구간은 대교 위를 걸어야 해서 30분 이상 소요될 가능성이 있고, 중심부와 멀어질수록 역과 역 사이의 거리도 멀어지는 곳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해당 거리를 네이버, 다음, 구글 맵스를 통해 검색해봤는데, 데이터가 전달되는 정보에 차이가 있는 것인지 도보가 가능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구글 맵스는 '도보가 불가능하다'라는 검색 결과를 보였다.
한국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아무래도 구글 맵스를 통해 검색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나도 일본 여행 갔을 때 구글 맵스를 이용했다.) 잘못된 정보 전달로 혼선을 빚게 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분명 도보가 가능한 거리인데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경우 훨씬 더 불편한 점이 많을 테니. 택시의 경우 혼잡한 거리에서 세우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지하철을 타다가 걷기 시작했다. 점으로 찍혀 있던 곳들이 선으로 서서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가 하나의 맥락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광화문 - 시청 - 숭례문(남대문) -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세종로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만든 새로운 길이고, 종로타워 - 보신각- 을지로 사거리 - 명동 - 남대문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조선시대의 주요 길이라는 것(남대문로). 각각의 장소(점)가 길(선)로 연결돼서 하나의 영역(조각)으로 맞춰질 때 비로소 서울의 지리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서울 중심부를 위주로 답사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길들이 숨어 있었고, 연결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방문했던 각각의 장소에서 연결점을 발견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다. A라는 공간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고, 긴 시간을 머물렀던 것도 아녔기에 그냥 가기 아쉬워 지리도 익힐 겸 주변을 돌아본 뒤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B라는 공간에서 지인이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손님이 워낙 많았기에 긴 시간을 머물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주변을 둘러보며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그 지점부터 지하철을 타고 갈 생각이었다. 걷다 보니 지난번에 방문했던 A라는 공간이 위치한 곳과 가까웠고, 예상치 못한 연결성에 탄력 받아서 더 걸었더니 어느새 이미 알고 있는 장소까지 와 버린 것을 발견했다.
상수역 - 광흥창 역 - 신수동 - 경의선 숲길, 대흥동, 염리동 - 공덕오거리 (도보 37분)
이 구간을 발견하고 나서 몇 달 뒤 제대로 다시 걸어보았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지점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12시 52분에 상수역을 출발하여 2시 37분에 공덕오거리에 도착했다. 도보로 약 1시간 50분 정도가 걸렸다. 지난번에 거치지 않은 길로도 걸어 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 사진을 찍고 전혀 알지 못한 새로운 것도 발견하고 하면서 느리게 걷고 좀 더 자세히 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 12시 52분 출발 ▶ 2시 37분 도착
상수역 3번 출구 - 광흥창 역 - 신수동 - 경의선 숲길, 대흥동, 염리동 - 공덕오거리
상수역과, 경의선 숲길, 공덕오거리는 내게 익숙한 장소들이었지만 광흥창역, 신수동은 2018년에 처음 방문한 장소들이었다. 점으로 존재했던 장소들이 길이라는 선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하나의 조각이 탄생했다. 이렇게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들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거주하고 있는 동네 외에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이동하는 장소 말고도 더 많은 곳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머릿속엔 점으로 찍혀 사이사이로 끊긴, 보이지 않는 범위들이 존재하지만 지금부터 하나씩 그 선들을 잇다 보면 얼마든지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올해 점을 선으로 만드는 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코스가 바로 오늘 걸었던, 상수-공덕 코스. 첫 번째로 걸었을 때는 지하철 역을 중심으로 큰길로 이동했지만 다시 걸을 땐 길목에 연결된 작은 골목길로 다녀 보았다.
큰 도로 위주로 걸었을 땐 37분이었고, 연결된 작은 골목길로 걸었을 땐 46분 정도 약 9분 정도 더 소요된 것으로 지도에 찍혔지만 체감상으로는 볼거리들이 더 많아서 오히려 더 적게 소요된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상수역 - 광흥창역- 공덕역>에 해당되는 구간을 도보로 충분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또 지하철을 탔더라면 보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 광흥창역?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에 있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지하철역이다. 병기 역명은 서강이다.
역명은 조선 시대에 곡식을 보관하였던 창고인 광흥창에서 유래하였다.
* 광흥창?
문무백관의 녹봉의 수입, 지출을 관리하는 관청. 광흥창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했었으며, 이 부근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광흥창역이라고 명명하여 오늘날에도 예전의 광흥창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출처> 위키백과
* 구수동? 신수동?
수철은 무쇠를 뜻하는데 옛날 이곳 일대에 무쇠 솥과 농기구를 제조하던 공장이 있어 무쇠막 또는 무수막이라 불렀는데, 그것을 한자 화하여 수철리라 하였다. 후에 신수철리와 구수 철리로 분리되었고 신수철리가 신수동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 밖 지역이었다. 이에서 비롯된 구수 철리를 후에 신수동과 구별해서 구수동이라 하였다. 구수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내용 출처
1) [네이버 지식백과] 구수동 [舊水洞] (서울 지명사전, 2009. 2. 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 [네이버 지식백과] 신수동 [新水洞, Sinsu-dong]
(한국 지명유래집 중부 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 경의선 숲길?
경의선 숲길은 총연장 6.3km, 폭 10~60m의 선형 공간
홍제천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 공원 구간(4.4km) 경의선 및 공항철도 역사구간(1.9km)으로 이루어짐. 경의선 및 공항철도가 지하에 건설되면서, 그 상부에 조성된 공원.
* 자세한 사항은 <https://www.gyeonguiline.org> 참고해주세요 :-)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관광지 주변을 돌아본다. 관광지 주변엔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고, 안내원들이 있으며, 숙박 및 문화시설 등 관광지와 연관하여 그 도시의 인프라가 가장 잘 구축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머무르는 기간이 길다면 관광지 말고도 숙소를 기준으로 주변을 살펴 본다. 가까이에 슈퍼, 상점, 식당들이 어디에 있는지 길을 걸으며 눈에 익혀 둔다. 시간이 지나면 전혀 몰랐던 낯선 도시에 대한 정보 조각들이 맞춰지고 마침내 퍼즐이 완성된다. 서울을 내가 전혀 모르는 낯선 도시라 생각하고 걷다 보면 현재 마주하는 서울의 다양한 모습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