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주제는 ‘동네’로, 경민 님께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에세이를 청탁하려고 합니다. 브런치를 보니 꾸준히 분석을 하고 정리한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만약 원고를 쓰게 된다면 경민님만의 글의 색이 드러나야겠지만, 좀 더 이해가 쉽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말할 때 광범위한 지역 단위로 비교하는 것이 아닌, 직접 겪었던 일들을 기반으로 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주 가던 망원동의 카페가 갑자기 없어졌는데 그 이유가 높은 세로 인한 이유였다든지 하는 일화요. 팩트를 알려줄 순 있지만 너무 부정적인 시선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동네를 애정하는 마음에서 보는 날카로운 시선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가능한 담백한 문장이면 더할나위 없을 것 같고요."
평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화두에 관심이 많고, 현상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변화 하는 과정을 순간 순간 기록하고는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동네를 둘러 보는 일은 익숙하지만 자주 찾는 특정한 장소나 공간 또한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사라진 경우를 발견하더라도 "어? 앗!" 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스치듯 지나가는 감정들과 변화를 감지할 뿐이었다. 꼭 카페나 식당과 같은 상가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맥락으로 의도치 않게 월세가 올라 다른 동네로 이주하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과 잘만 연결지으면 충분히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익선동이 떠올랐다. 지금은 핫플레이스 중에서도 핫 핫 플레이스가 된 익선동은 비교적 저렴한 월세를 내며 살아 가는 저소득층의 주거지였다. 하지만 골목에 청년들이 오픈한 몇몇개의 가게를 시작으로 조금씩 수가 증가 하면서 상권이 형성이 되었고, 20년 넘게 추진되 오던 재개발도 해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월세가 조금씩 올랐고, 주민들은 의도치 않게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에 맞닥 뜨렸다. 이는 시사저널e이 기획,취재한 '서울, 시(市)공간 POROJECT '를 통해 상세히 알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현상들을 동반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임대료 상승' 은 공통적인 현상이므로 익선동은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물리적 공간의 상실이 아닌 변형이라는 점에서 동네 자체가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기존에 살던 주민들과 공존 혹은 공생이 아닌 타동네로의 이주 이후 외부인의 유입이라는 점에서 간접적인 사라짐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나가고, 익선동은 빠르게 변화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록의 필요성을 느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는지, 주거지로 남아 있는 집은 몇 채인지 살펴보고 상황이 된다면 주민들과 인터뷰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네에 있던 세탁소, 슈퍼, 한복집, 철물점, 식당(작은)도 계속 남아 있는 건지 혹은 이후에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인지도 함께 살폈다.
익선동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종로3가 골목과도 연결이 되는데 그 사이에 게스트하우스나 점집도 있었다. 관찰했던 기간은 2018년 5월 21일 부터 6월 7일 약 2주간 . 짧다고 생각하면 아주 짧고 적당하다고 생각하면 적당할 수도 있는 기간(사실 이때 잠깐 일을 쉬고 있었던지라 가능했던 시간) 인데도 리모델링 공사가 매일 진행 되었던 지라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고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글을 썼으나, 여기까지 였다. 보고 들은 건 있었지만 뭐랄까 직접 경험한 것에서 부터 우러 나오는 감정이 부족했고, 익선동은 관찰의 대상이었지 생활권에 속하는 우리 동네가 아니였다. 혹은 자주 들리는 카페나 식당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결국 내 글은 실리지 못했다.
는 기고를 제안했던 에디터님의 답변 때문이었다.
" 음, 기존에 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경민 님은 왜 그렇게 발품을 들여서 일일이 조사를 해나갔을까요?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에 왜 그토록 관심이 많이 갈까요? 본인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어본 경험이 있어서인가요, 주변 또래 친구들의 사례를 목격한 건가요, 아니면 원주민들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그냥 사라짐이 안타까워서인가요? 만약 사라짐이 안타까워서라면, 왜 하필 ‘오래된 동네의 사라짐’에 마음이 쓰일까요? 사라지고 있는 문화나 커뮤니티, 생활방식도 참 많은데요. 그런 시선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바라볼 때는 어떤 심경을 느끼나요? 등등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네요."
미처 나도 여기까지는 깊게 파고 들어가서 생각해 보지는 못했는데 이러한 질문을 통해 다시 한번 되묻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이슈에 왜 이토록 관심을 가는 건지, 왜 연령대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른 원주민들에게 감정이 이입이 된 건지에 대한 답을 찾긴 어려웠다. 사라짐에 대한 안타까움과 문화나 커뮤니티 생활방식이 아닌 오래된 동네의 사라짐에 마음이 쓰이는 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면에는 실리지 못했지만 이곳에 담아 'why'를 던져 보려 한다.
※ 아래 글은 제가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에디터님이 정리해주신 내용입니다.
빈자리를 기록하는 이유
Writer.Kyungmin Lee
익선동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신이 자주 가는 카페를 알려주겠다며 새로운 동네로 이끈 것이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 방문한 탓인지 카페 문은 닫혀 있었고,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위치를 기억해 두었지만 그 이후로 딱히 찾을 일이 없어서 잊고 있다가,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다시 익선동을 떠올렸다. 티브이 속 동네는 어느새 핫 플레이스가 되어서 내 기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여전히 슈퍼, 세탁소, 철물점 등이 존재했지만 한옥을 개조한 가게가 부쩍 늘었다. 뭐, 이때까지만 해도 새로운 가게가 열 곳 남짓했기 때문에 주거 공간과 동네로서의 기능이 가능했다. 수십 개의 한옥이 담벼락 하나를 두고 서로 의지하며 붙어있던 모양새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웠던 익선동은 시간이 갈수록 혼잡해졌다. 1997년부터 논의된 재개발 추진은 주민들 간의 대립으로 20년 동안 미뤄졌는데, 2004년 4월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다시 2010년 10월에 한옥 보전을 이유로 개발 계획이 부결되면서 2014년엔 개발 추진 위원회마저 해산하면서 결국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그렇게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 채 표류하던 익선동은 어느 낯선 이들에 의해 화려한 얼굴이 되었다. 카페, 공방, 게스트 하우스 등 가지각색의 가게들이 동네에 자리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소문을 탔고, 동네의 존재조차 모르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여전히 월세를 내며 사는 주민들이 존재했지만, 점차 동네의 풍경이 바뀌고 성격마저 바뀌면서 그들이 머물 곳은 마땅치 않게 됐다.
익선동의 변화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고, 또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이러다가는 ‘여기 사람이 살았다’라는 사실마저 잊혀질 것 같아서 현재 상태를 기록해보기로 했다.
나는 2018년 5월 21일~6월 7일까지 약 2주간 매일 익선동을 찾았다. 익선동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메인 골목 5곳을 기준으로 아직 상점으로 변하지 않은, 즉 사람이 사는 집을 체크해 두었다. 편의상 골목 1, 2, 3, 4, 5로 명칭하겠다. 골목 1에는 5채, 골목 2에는 아예 없음, 골목 3에는 2채, 골목 4에는 4채. 골목 5에는 22채, 이렇게 합을 더하면 남아 있는 한옥 33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떠나는 동안 철물점, 세탁소, 한복집 등 또한 하나둘씩 사라졌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2014년~2016년까지 익선동 전체 인구는 1,247명에서 1,104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인구 자체는 143명 줄었지만 실제 이곳을 떠난 사람들은 매년 평균 100명을 훌쩍 넘었다. 익선동 전출자 현황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2014년 112명, 2015년 166명, 2016년 99명 등 약 377명이 이곳을 떠났다. 아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 주거용이었던 한옥은 상업적 가치가 드러나면서 평당 가격이 약 2배 가까이 뛰어 4000만 원이 되었고, 20~30만 원이었던 월세 역시 100만 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세는 동네 가게에도 영향을 미쳤다.
익선동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젠트리피케이션을 떠올리게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저소득층 계급이 사는 주거지역에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를 지칭하는데, 익선동의 경우 중산층이 유입된 것은 아니지만 점점 커다란 상권이 형성되다 보니 월세를 내며 살아가던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익선동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있어 박물관 같지 않다.” “상업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거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거주가 없는 공간은 진짜가 아니다.”
-스페인 건축가 곤잘레스 하비 -
그의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좋으련만 서서히 들이차는 상권의 물결은 원주민을 슬그머니 밀어냈다. 사정을 모르는 관광객은 오래된 한옥과 세련된 가게의 분위기에 취해 시간 여행을 하는 듯 좁은 골목을 오갔다. 마치 하나의 체험인 것처럼. 어쩌면 나도 익선동의 예전 모습을 몰랐더라면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상업적인 면모로 바뀐 익선동은 가게의 수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2014년엔 42곳이었는데 2년 사이에 101곳으로 늘어났다. 2016년을 기점으로 약 2년 동안 지속해서 생기는 가게들을 보면서 이러다 점점 임대료가 올라서 상가 젠트리피케이션마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에 찾은 익선동은 더욱더 혼잡해졌고, 새로 생긴 가게들도 늘어났다. 나의 관심사는 오롯이 ‘그동안 또 얼마나 바뀌었고, 마지막으로 봤던 집들은 아직 남아 있을까?’였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가게로 바뀌지 않은 집들의 수를 세고, 혹여나 사라진 가게는 없는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익선동이 막 뜨기 이전부터 영업했던 가게 하나가 문을 닫았다. 불 꺼진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니 이미 비워진 상태였다.
"익선동의 복잡한 골목을 떠나 새로운 공간을 찾아보려 합니다. 너무 급작스러운 이별이지만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약속드려요."
명확한 이유는 알리진 않았지만, 현재 익선동의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게가 소규모 가게들을 밀어내거나 5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않아서 익선동의 큰 윤곽은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8년 3월, 서울시가 마지막 한옥마을로 지정하면서 생긴 규정 때문이었다.
가끔, 익선동이 애초의 계획대로 한옥을 허물고, 14층짜리 오피스텔, 관광호텔, 아파트, 상가가 들어섰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대지 면적을 확보하고, 길을 정비하면서 골목길은 사라졌을 테고, 단층 건물밖에 없어서 잘 보이던 하늘도 고층 건물로 인해 시야가 답답했을 것이다. 뭐, 무엇이 나은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시민으로서 혹은 낯선 동네에 온 이방인으로서 익선동을 계속 기록할 예정이다. 기억하는 눈이 늘어난다면, 섣부른 변화의 속도도 느려지겠지.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