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민 Feb 12. 2020

왜?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오는가?

당연한것같지만 당연하지 않은 질문

<동네, 도시, 서울>이라는 키워드로 서울을 답사를 한 지도 4년이나 되었다. 상상으로만 존재했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도시에서 살게 되었고, 나고 자라 익숙하고 지루했던 도시는 마음에서 떠나 잠시 머무르는 곳이 되었다.


오늘도 누군가에겐 선망의 도시, <서울>

어릴 적 꿈은 공연기획자였다. 무대 위 주인공들에게 멋진 기획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장을 만들고, 이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뿌듯함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곧장 공연기획자로서 경험과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회사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비슷한 듯 다른 분야인 이벤트 회사가 전부였다. 물론 이벤트 회사에서 일을 하다 옮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나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나마 있는 이벤트 회사의 일이라는 것이 크고 작은 단위의 지역 축제나 아주 개별적 단위의 생일, 경로, 돌잔치 정도의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공연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연말에 몰아서 진행되는 전국투어 콘서트나 몇 년 만에 돌아오는 드림 콘서트, 지역축제 공연(대학가요제 포함) 등이 전부였다. 이런 경우 지역 공연기획사가 주체가 아니라 서울의 공연기획사가 범위를 넓혀 움직이는 행태였다.

<사진출처: 엠빅뉴스×로드맨 유투브 8화, 서울공화국편>

<연극, 뮤지컬, 콘서트>등의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데 익숙지 않은 도시였고, 이후 오페라 하우스 공연장이 생기긴 했으나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던 지역축제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축소되면서 <보는> 것에서 <경험하는> 체험형 마켓으로 성격이 변화하여 오히려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줄었다. 당시 나는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인기 가수의 팬으로서 서울을 오가며 느꼈던 한계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울>이라는 도시, <서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팬 활동뿐만 아니라 넓은 범위의 문화 활동을 경험하고 관련 콘텐츠를 기획할 기회가 주어지는 곳. 한 번이라도 과거에 자신이 경험하고자 하는 분야 활동에 제한을 받아 본 적이 있는 (타) 지역의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채울 수 없는 한계점을 서울에서는 당연히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부푼 희망으로 꿈을 꾸며 한 발짝 더 나아가 마침내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살던 도시는 대한민국 5대 도시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이러한데 다른 도시는 오죽할까? 이러한 현실은 EBS 다큐 시선, <서울, 다녀오겠습니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례 1) 강원도에서 직장을 다니지만 자기 관리, 문화생활은 서울에서 하는 청년
사례 2) 지역에 미대 입시를 준비할 학원이 없어서 매주 서울에 있는 미술학원으로 이동하는 고등학생
사례 3) 특화된 기술학교를  다니면서 실력을 심화할 수 있는 기회나 배움의 장이 부족하여 한계를 느끼는 고등학생

각기 다른 개인의 삶과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환경은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등등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마저도 무의식적으로 연결고리가 작동한다.


우리 지역의 친구들도 똑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면 훨씬 잘할 친구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다큐 시선, 서울, 다녀오겠습니다> -

서울 가면 지하철 타는 방법도 모르겠어요.
같은 대한민국인데 너무 낯설어요.
-<다큐 시선, 서울, 다녀오겠습니다> -
"인천의 어느 서점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 앞에서 K의 흥분과 경외감은 극에 달했다. 반쯤 몽롱한 상태로 넓은 서점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던 그날의 문화 충격은 에미넴의 [원샷, 원 오퍼튜니티]처럼 K의 기억에 강렬히 남았고, 서울에 대한 K의 동경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유의 경험은 비단 K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인천에서 자라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은 한 감독은 "내가 누릴 수 있는 문화 활동이라고는 '관객'으로서 뿐이었고, 그 또한 인천에서는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모자란 갈망은 늘 서울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성인이 되고 자연스럽게 관객에서 '창작자'로 변하게 되는 시점에서 애관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은 충무로의 영화 현장으로 심지에서의 음악 감상은 홍대 앞 밴드 활동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라고 고백했다. <확장도시 인천 중, P334-335>

서울, 타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행정구역상 서울 면적(토지)은 한정되어 있지만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기능들이 집중되어 있고, 이에 따라 유입되는 인구 증가로 서울과 지역 간 불균형이 지속적으로 발생,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과거에 수차례 언급이 되었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여럿 있었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기대에 못 미쳤다. 효과가 있었더라면 누군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몸소 느껴졌을 텐데 말이다. 지방에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대규모 공장이나 대학을 수도권에 못 들어오게 규제를 했다. 잘 되는가 싶다가도 정책 결정자가 바뀜으로써 방향이 달라지고 불확실해진다.


과연, 이러한 현상이 타도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지역 중소도시에서는 교육/ 의료시설 같은 기본 생활편의 시설에서부터, 전시/공연과 관련된 문화산업 인프라, 다양한 분야와 전문성을 갖춘 일자리가 부족하다. 최근 들어서는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취업의 문은 더 좁아졌다. 뿐만 아니라 대학들마저 수도권 이전 추진으로 서울/경기권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불편을 겪는 일은 일상이 되어 버렸고 <서울과 그 외 지역>으로 구분되어 무시와 경멸로 가득한 경계 짓기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대학과 일자리>라는 두 측면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지방의 일자리 부족은 지방대 침체에 영향을 미친다. <지방도시 살생부>의 저자인 마강래(48) 중앙대 도시계획 부동산학과 교수는 <단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방대가 저평가를 받는 것은 교육의 질보다 지역의 일자리 부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자리 경쟁이 심해지고 교육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학생들이 취업 기회가 많은 '인 서울' 대학에 몰리고 지방대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마 교수는 이어 "수도권에 모든 인구와 자원이 쏠리는 불균형이 심해짐에 따라 지방의 대학들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각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강한 일자리 정책을 펴서 주변 지역과 연계시키고, 과도기적으로 지방 공공기관에서 지역 출신 인재에게 기회를 할당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내용 출처: 오 마이뉴스, "서울도 아닌데 최저임금 달라고?"... 지방 떠나는 청년들 >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가려는 것은 지방대 학생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방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속하지 못한 이들을 보란 듯이 배제한다.

"어우, 지잡대 냄새."
지난 2016년 10월 서울대 대나무 숲(익명 고발창구) 페이스북에는 '지방 대생인 친구와 쇼핑몰에서 놀다가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는 서울대생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가 한 지방대 마크가 들어간 후드 티셔츠를 입은 친구와 떠들고 있었는데, 서울 소재 한 대학교 과잠바(학과명이 들어간 윗옷)를 입은 행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지잡대 냄새'라고 말했다는 사연이었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수천 건이나 공유된 이 이야기는 당시 언론에도 보도돼 공분을 일으켰다(관련기사: "지잡대 냄새 왜 이리 독해" 지방대생 보고 막말한 대학생).
<내용 출처:오마이뉴스, "그것도 학교냐?" 이국종 교수도 당한 지방대 혐오 

<대학-취업>의 구조는 지역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자신이 속한 지역 내에서 취업하려는 사람보다 서울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인구유출이 심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이 지역 내에 미치는 경제 기여도 줄어든다. 이처럼 <서울>이라는 도시가 미치는 위계질서와 영향력은 꽤나 크다.

<사진출처: 엠빅뉴스×로드맨 유투브 영상>

거주 도시의 생활방식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앞서 한번 언급하긴 했지만 지역격차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개인의 삶이 달라진다. 가치관, 사고방식, 경험의 질과 양, 기회, 직업, 어쩌면 먼 미래까지도. 특히 한 지역에 특정 산업군의 비중이 큰 도시일수록 영향력은 커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지역은 산업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지역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에너지원은 될 수는 있지만 보호 대상은 아닌 것이다. 그 어떤 결과가 나오든 뒷감당은 개인의 몫이다.


영화 <땐뽀 걸즈>에서는 <거제도>라는 지역에서 <조선업>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취업을 앞둔 자녀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에서, 쇠락의 길로 들어선 <조선업>을 접고 창업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어느 아버지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참고로 거제의 경우는 <조선업>이라는 산업이 지배하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분리해서 따져 봐야 하는 게 맞지만. 지역 산업과 개인의 삶을 연결하여 제한된 범위 안에서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이후에  벌어질 결과나 과정에 좀 더 주목하려 한다.


# scene 1.

"나, 조선소 가면 되겠지? 근데 할 게 딱 정해져 있잖아"

# scene2.

"누구보다도 인정받고 잘 해왔던 건데..."


거제도는 조선업을 위해 조성된 특수성을 띤 곳이기 때문에 <선택권>에 있어서 범위가 제한된 곳임에는 확실하다.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어도 딱히 할만한 것이 없는 곳이었는데,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조선업마저 불황을 맞으면서 희망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실력도 있었고, 인정도 받았던 한 아버지는 이제 거제도를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 창업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조선업을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지만 의도치 않게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감춰지지 않았다. 과거 산업도시 거제가 한 아버지의 삶에 영향을 주었듯이 현재 거제도의 상황이 또다시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태어난 도시 VS 사는 도시,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가?


'어느 도시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혹은 '어떤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로 연결된다. 부족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물리적 / 문화적 환경의 개선에서부터 삶의 원초적 물음에 답하기 위해 거주 도시를 결정하는 것이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만 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진출처: 스브스뉴스, https://www.youtube.com/watch?v=-2pF1f2znkI&feature=share>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문득 나의 고향인 대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구를 떠난지도 9년이나 지났다. 얼마나 변했을까? 부족하다고 느꼈던 상황들은 나아졌을까? 그렇다고 해서 고향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고 몸소 체감했다. 하지만 그 변화의 깊이가 겉모습만 화려해진 것인지, 상황 자체가 변화한 것인지 진짜 속사정은 알 수 없었다. 그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을 놓고 봤을 때 지역의 고유한 특색은 사라지고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타도 시의 닮은 모습들만 보이는데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더 깊이 보고 어떻게 느낄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변화하기 이전과 이후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 눈을 가리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오는가?"라는 물음이 시작이긴 했지만, 내가 만약 다시금 대구로 돌아간다면 변화된 상황 들이  "과연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 보고, 한 발짝 더 다가서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참고자료>


1. 독립영화 <땐뽀 걸즈>

2. EBS 다큐 시선, <서울, 다녀오겠습니다>

3. <확장도시 인천>, 기획 박해천

4. 오 마이뉴스, "서울도 아닌데 최저임금 달라고?"... 지방 떠나는 청년들

[서울-지방 불공정 취업전쟁 ①] 부족한 취업 기회... 청년 채용공고 약 80% 수도권 집중

5. 엠빅뉴스 × 로드맨, 서울공화국 편

6. 스브스뉴스, 지방러가 힘들어도 서울에 살려는 이유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