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고달픈 바램
남의 집 아니고 우리 집
내가 <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게 된 시기는 아마도 할아버지가 돌아 가신 이후 본격적으로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부터 였다. 아빠, 엄마, 동생, 나 이렇게 4 식구가 이사를 다니며 세입자로 살다가 할머니 집으로 들어온 이후엔 세입자로서의 삶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정말 세입자로서 살았는지는 그 당시 내 나이가 6~7살 때였어서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그 시기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 동네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서 3번 정도 이사를 했었던 것 같다. 2번은 같은 아파트 동만 바뀌었고, 1번은 다세대 주택에서. 아파트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는 걸 보면 그리 오랫동안 살진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어렸을 때라 그런가? 다세대 주택에서는 1층은 집주인, 2층은 우리 가족이 살았다.
거실 한편에는 나무문이 있었는데, 열 수 없는 금지된 문이었다. 집주인이 2층을 쪼개서 세를 줬던 탓이었다. 출입문은 따로 있으나 내부에 연결된 문이 있었으니. 아무튼 세입자로서의 마지막 집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할머니와 우리 가족은 함께 살게 되었다. 2층 단독주택이었고 1,2층 모두 가족이 사용하는 집이었다. 집 명의가 누구 앞으로 되어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오롯이 우리 가족이 모든 공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후에도 이사를 두 번 정도 했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우리 집이었다.
세입자의 삶
집주인-세입자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던 우리 집에서 살다가 서울로 상경한 이후에는 세입자로 살게 되었다. 창문을 열면 건너편 건물 벽이 코앞에 있는 것도 낯선데, 2년 후면 떠나야 하는, 현재 살고 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는 집에서 산다는 것이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또 상상 이상으로 좁거나 지상이 아닌 지하로 내려가는데도 주변 시세가 반영되어 월세는 어찌나 비싼지 어이가 없기도 하면서 그제야 실감이 났다. 환경적인 조건이라도 좋으면 그나마 조금 이해했을 텐데 그마저도 충족하지 못할 때는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이래서 내 집을 사야 하는 거 구나. 내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거구나.'
매일이 불안하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빼돌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소식이었다. 나에게 아직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매일이 불안한 삶처럼 느껴졌다. 불안함을 안겨 주는 다른 요소들도 많은데 <집>이라는 공간이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사실이 정서적으로 미치는 가장 큰 영역인 것 같았다. 상황이 이쯤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인 가치를 떠나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장치 같은 것이 아닐까. 천재지변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내 집'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매달마다 내야 하는 월세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상상 이상의 핑계를 대며 간섭을 하거나 요구를 하는 집주인과의 불필요한 관계도 맺지 않아도 된다. (아 참고로 좋은 집주인분들도 있으니 모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생각한다.
'아 이래서 내 집을 사야 하는 거 구나. 내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거구나.'
타인의 집, 애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외삼촌네 가족은 자주 이사를 다녔고, 들어가기 전에 새집처럼 리모델링을 했다. 어린 마음에 집주인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세입자였다. 물론 또 다른 세입자가 살다가 이사를 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청소나 도배를 새로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리모델링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집주인은 따로 있는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하곤 했다. 더군다나 현실에서 세입자로 살아보니 더더욱 그런 것 같은데, 반면에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나름 잘 꾸며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몇 년을 살지 모르지만 이왕 살게 된 거 자신의 취향대로 살고자 하는 바람이었으리라. 과연, 나는 이들처럼 애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더군다나 요즘은 집에 대한 생각이 <소유>가 아닌 <공유>의 방식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서 하나의 방식으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공유되는 집들도 결국엔 목적이나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합이 잘 맞아야 하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뭘 어떻게 하든 아무 간섭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온전히 내 공간, 오롯이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 - 집이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