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집에 방문한 적이 많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 왔을 때 '그래도 손님인데 간식이라도 챙겨줘야지' 하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또 할머니와 함께 살다 보니 집에 어른이 계실 때 신경 써야 하는 것들에 촉이 곤두서 있었고,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이라 할지라도 물건이 정해진 위치에서 벗어나거나 배열이 흐트러지는 게 싫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손님을 응대하는 방법이라든지 교육을 따로 할 만큼 엄격한 분들도 아니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누군가를 나의 공간에 혹은 집으로 초대한다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반면에 남의 집 문턱은 자주 넘나들었다. 덕분에 '집'이라는 공간의 다양한 형태와 쓰임, 부모님의 소득, 취향, 생활습관에 따라 청결 상태까지도 직 -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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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절친의 집에서 잠을 잔적이 있다. 하루를 넘긴건지 잠깐 낮잠을 잔건지 정확하진 않다. 그런데 방 바닥에 죽은 벌레의 흔적이 여기 저기 있었다. 휴지로 닦던지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대로다. 뭔가 찜찜한데 그렇다고 막상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이후 친구는 전학을 갔고, 다시 갈 일이 없는 집이지만 근처를 지날 때 마다 생각났다.
왜. . 벌레를 안 치운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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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네에 살다가 다른 동네로 이사간 친구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친구는 이전에도 아파트에 살았었고, 이후에도 아파트에 살았다. 이 당시만해도 (1990년대 후반) 아파트는 5층 ~6층 정도의 저층 아파트가 대부분이었고, 고층 아파트는 짓기 시작할 때였다. 친구는 대구에서도 가장 부유층이 거주하는 동네로 이사했고, 친구의 집은 신축 고층 아파트였다. 온통 새하앴다.
새하얀 고층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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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과 비슷한 마루 바닥 거실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같은 재질이었다. 쿵쿵 - 울리는 발걸음 끝에 친구의 방이 있었다. 문을 열면 환한 빛이 쏟아졌다. 드라마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더 넓고, 더 고급진 주택이었다.
마루바닥 그리고 고급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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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던 한 친구네 집은 1층은 식당, 2층은 가정집. 일명 상가형 주택에 살았다. 식당은 부모님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었다.
상가형 주택
좀 더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특정 상황과 연관된 하나의 장면과 그 당시 기분 정도만 생각이 난다. 어찌되었든 나의 어린시절의 대부분은 타인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이 문방구, 식당, 신문배달소 등 가게를 운영한 경우에 집과 동일한 공간으로 사용된 곳들이 많았다. 교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일 경우 아파트나 고급주택에 거주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느 하나 똑같은 집이 없었다. 아파트였어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지 않았고, 주택이었어도 구조나 형태가 달랐다. 덕분에 다양한 집을 경험했으니 다행이다 싶다.
그 와중에 나는 친구의 방을 둘러보면서 각자의 취향이 담긴 소품들을 유심히 보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갖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뿐이었다. 단순하게 관찰하고 탐방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아주 작고 사소할지어도 그 사람의 생각, 가치관이 묻어났고 더 나아가 '소유한 물건 = 그 사람' 이라는 관점에 집중했다. 고로 내게 남의 집을 탐방한다는 건 공간의 구조를 보는 것도 있지만 상대방을 더 깊게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아, 이렇게 사는구나 !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 구조를 자주 바꾼단다. 어렸을 때 방 벽지도 직접 골랐다고 했다. 부모님이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다. 참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 방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민 뒤 사용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 벽지부터 가구의 배치도 함께 고르고 정한다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공간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필요에 의한 덧붙힘과 정리를 스스로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방구조를 자주 바꾸는 것도 익숙한 사용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조성함으로서 자신에게 맞는 구조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 자신이 어떤 환경과 구조에 맞는 사람인지, 어떤 색감과 스타일을 좋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인지를 <자기만의 방>을 통해 만들어 갈수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일까? 요즘들어 주거공간의 중요성을 더더욱 느끼고 있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들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고 추측해 볼 수 있는 도구이다. 아주 사적인 공간이지만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공간, <집>. 사람마다 집이 가지는 의미와 무게는 다르지만, 다르기 때문에 더 들여다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아마도 누군가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것에 허락하는 한 지속적으로 타인의 집을 탐방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