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 도보 7분 거리
서울 상경 후 첫 번째 방은 신림역에서,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이곳에서 더 살 수도 있었지만 동생과 따로 살기로 결정했고, 그로 인해 방값이 부담되면서 좀 더 저렴한 방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때문에 서울대입구역으로 이사한 것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방값'이라는 이슈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흘러 온 것이다. 학생들이 많은 대학가 주변이라면 '같은 원룸이어도 좀 더 저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조건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만큼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방 값을 낸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렴한 방 값'을 부르짖으며 방을 알아보던 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원룸과 투룸이 같이 있는 집을 보게 되었다. 동생과 이미 따로 살기로 합의한 상태였던지라 기대 없이 온 김에 한번 보라고 해서 봤는데, 생각보다 방 크기도 크고 신축건물이어서 그런지 여태 보던 집들과는 다르게 깨끗했다. 깨끗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상태에서도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더 신뢰가 갔다. 반지하층이라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반지하 방처럼 빛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한몫을 했다. 투룸이라 보증금 금액이 좀 더 높았지만 원룸에 살 때 보다 사용하는 공간이 넓어졌고, 감당해야 할 월세 부담이 줄어들었다. 결국, 나와 동생은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1) 거주기간: 2015년 1월 - 2017년 5월
2) 위 치: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 도보 10분 이내 위치
3) 거주형태: 반지하 / 투룸 / 보증금, 1천만 원/ 월 550,000원(관리비 포함)
4) 옵션: 세탁기, 냉장고, 인덕션, 책상, 책장, 의자,
5) 특 징: 주인집 4층 거주, 김장 때 김치 주심, 반지하층은 투룸 그 외 층 원룸
방 계약을 하고 처음에 살 땐 몰랐다.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이곳이 어떤 동네인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단지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마주하는 것들이 전부인 줄 알았다. 5분 이내의 거리에 커다란 GS마트가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편의점도 2개나 있었지만 가격과 품목의 다양성 면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에 발길이 마트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며 가며 인근에 있는 가게들을 두루 살폈다.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약 7-8분 정도가 걸리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걸어 가봤다. 좁고 가늘게 뻗은 골목길은 이쪽저쪽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사이사이로 마주하는 수많은 장면들이 나를 이끌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걸 알 수 있는 쌀집과 철물점, 전자 제품 판매점, 그들 사이로 보이는 새로 생긴 동네 술집과 카페, 빈대떡, 빵, 고깃집 등등이 자리하고 있었고, 동네의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의 적절한 조화는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었다. 신림역 인근에도 오래된 가게들이 있었지만 각각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현저히 달랐다.
이사를 하고, 살면서, 그리고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동네의 모습은 변화했다. 쌀집과 철물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옆엔 전자제품을 팔던 가게와 청년이 운영하던 조용한 맥주집이 있었다. 불현듯 조만간 이 가게들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2년 뒤, 건너편으로 이사를 가고 한 동안 이곳을 찾지 않았었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길 건너편, 구청이 매입한 부지에는 고층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지어지고 있었고, 좀 더 걷다 보면 골목 사이사이로 신축 원룸을 짓기 위해 분주하게 공사 중인 것을 쉽게 마주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이 있는 쪽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길 자체가 평탄한 길이 아니라 오르막이 심한 경사길이었기 때문에 고층 신축 원룸이나 오피스텔보다는 높아야 5층 - 6층 정도의 건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신축공사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도로 하나 차이로 분위기가 다르니 같은 동네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했다.
오래전부터 봐 둔 책방이 있었다. 일반 서점은 아니고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독립출판 서점. 책을 좋아하던지라 주말마다 서울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책방을 구경하러 다녔다. 이동시간만 해도 최소 30분에서 최대 1시간까지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한 서점들이었지만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보고 느끼고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 동네엔 독립출판 서점(책방) 없나?
해서 인터넷을 좀 뒤적거려 보니 '여행'을 테마로 잡고 운영하는 독립출판서점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뭐든지 가까이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나보다. 아무튼. 시간 나면 가보겠다 마음먹은 지 며칠이 지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목적지는 책방이었지만, 그곳에 다다르는 길에 마주하는 장면들이 자꾸 발길을 멈추게 했다. GS마트가 동네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인근에는 크고 작은 시장들이 있었고, 그 시장으로 가는 길엔 동네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탁소는 말할 것도 없고, 의상실도 보이고,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곳, 오래된 빵집 등이 쭉 이어져서 큰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알고 갔던 건 아니었는데, 몇 년 전 인터뷰를 할 일이 있어서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온 적이 있었다. 인터뷰어의 직업은 도예가였고, 작업실이 그 근처에 있었다. 그땐 초행길이라 길 자체를 잘 기억하지 못했는데, 근처에 오니 언젠가 한 번쯤 본 것만 같은 익숙한 풍경에 퍼뜩 기억이 났다.
아, 여기 식당에서 닭갈비를
먹었던 것 같은데!
인터뷰가 끝나고는 한 번도 찾아오지 못했는데, 동네에 적응이 될 만큼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한번 들려야겠다 다짐했지만 이곳에 산 2년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이사할 때까지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내 사는 일 바쁘니 마음처럼 쉽진 않더라. 작은 에피소드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책방에 들려 한 동안 넋 놓고 시간을 보내다가 두 손 가득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에 살면서 가장 기억나는 것을 꼽아 보라면, 단연 골목길에서 야채&채소를 팔던 할머니였다. 매일 나오는 건 아니었고, 주말이면 길과 길이 만나는 지점에 앉아 야채를 다듬고 계셨다. 자주 오셨던지 동네에 지나가던 아주머니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고 계신걸 몇 번이나 목격했다. 오며 가며 보다 보니 나도 왠지 할머니에게 뭐라도 하나 사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적고, 재료가 있다고 한들 음식을 해 먹지 않는 현실을 직시했을 때 야채를 사도 냉장고에 묵혀 두었다가 며칠 뒤에 그냥 버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할머니는 현금만 받으시니, 주머니가 가볍던 시절이라 저렴한 물건을 사는 데에도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동네 주민들 밖에 없었고, 할머니도 그렇게 큰 욕심이 있어서 장사를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팔 수 있는 만큼 팔고, 가셨기 때문이다.
"언제 또 오세요?"
"010 - XXXX -XXXX. 내 번호야 저장해둬"
주말에 오시는 건 알지만 주기적으로 오는 건 아니었고, 시간대를 정확히 몰라서 알려주시면 맞춰서 사러 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예 전화번호를 찍어 주셨다. 전화하면 갖다 주겠다고. 휴대폰을 바꾸고 난 이후로 그 번호는 사라졌고, 전화를 영영 걸 수 없게 되었지만, 짧은 순간순간에 마주했던 장면과 할머니와의 대화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위해 오랜만에 2년 전 살았던 동네를 찾았다. 기대를 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도 그때 그 할머니를 만났다. 자리가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골목에서 야채를 팔고 계셨다. 먼저 온 누군가와 대화를 한참이나 하고 계셨다. 그때 그 이후로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계신 것만으로도 왠지 반가웠다.
볼거리가 많으니 오며 가며 동네를 많이 살폈고, 그러는 동안에 동네 모습은 계속해서 변해 갔다. 단층의 주택과 상가건물이 헐리고 고층의 신축 임대 원룸과 오피스텔로 채워졌다. 슈퍼, 철물점, 쌀집, 미용실 등 다양성이 존재했던 동네 생태계가 사라지고 마치 복사 붙여 넣기 한 듯, 또다시 카페로 채워졌다. 기존에 있던 건물보다 더 높이 지어진 탓에 멀리서도 잘 보인다. 하지만, 인근에 있는 건물은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임차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의 수(양)는 증가했지만 부담해야 할 주거비용이 높아짐으로써 좋은 조건을 갖춘 주거공간에서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더욱 더 실감 나게 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동네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