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다시 찾은 건 딱 2년 만이었다. 나름 서울 여행이라며 관광명소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들을 찾아다닐 때였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튀는 붉은 벽돌, 뾰족한 지붕을 한 건물이 길모퉁이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1층엔 흔히 문방사우라고 하는 붓, 종이, 먹 등을 판매하는 필방이 있었고, 2층에는 'Since 1986'이라고 쓰인 것만 봐도 오래된 곳임을 알 수 있는 커피숍이 있었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건물을 꼼꼼히 살피던 중에 '서울 미래유산'이라고 적힌 붉은 동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미래유산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설명에 의하면,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해당 건물이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인데, 어떤 스토리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는 소개되어 있지 않아서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건물이 아니라 1층에 자리한 '동헌필방(東軒筆房)'이었다. 1966년 창업한 이후로 50년 동안 필방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인사동의 빠른 개발 흐름 속에도 살아남은 상징성을 인정받아 서울의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건물에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등록문화재 후보로 올라와 있었고, 1934년 당시 수입품을 취급하던 상점 '남계양행(南桂洋行)'의 사옥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동헌 붓 필방의 진열장 자리가 바로 남계양행의 정문이었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닌, 우연히 알게 된 건물에서 서울 미래유산인 동헌필방과 건물의 숨겨진 역사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나름 뿌듯함을 느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왔는데 빠르게 흐른 시간만큼이나 변화가 있었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던 동헌필방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커피 판매점이었다. 한쪽 벽에 부착되어 있던 미래유산 동판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알지 못할 동헌필방의 존재. 다행스럽게도 한쪽 벽면에는 건물의 역사와 함께 동헌필방이 있었음을 알리는 자료를 모아 액자로 걸어 두었다. 그 당시에는 내부를 미처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사라지고 나서야 그 흔적들을 보게 되다니 마음 한편이 허했다.
"예전에 이곳이 동헌필방이었잖아요. 혹시 폐업하신 걸까요?"
"네. 폐업하시고 이 공간을 인수하신 분이 커피 판매점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유∙무형의 자산들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영문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는 것도 보았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서울 미래유산의 지정은 개발 논리에 맞서, 가치를 인정받기도 전에 사라지는 근∙현대 문화유산의 무조건적인 철거나 개발에 대비한 보존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때문에 지정∙등록에 관한 사항은 강제적인 의무가 아닌 소유자의 자발적 참여에 의의를 두고 있다.
<서울 미래유산 선정기준>
1.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 등을 이해하는데 현저하게 도움이 되는 것.
2. 서울을 소재∙배경으로 하는 작품 또는 서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기념물.
3. 특색 있는 장소 또는 경관으로서 서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
4. 서울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현저하게 도움이 되는 것.
선정 기준을 잘 살펴보면 '현저하게', '널리 알려진' 등의 문화유산을 대상화하는 범위와 정의가 다소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미래 세대에 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자산'이라는 정의도 사람마다 '가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다르기에, 하나의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1971년 중림동에서 노량진으로 옮겨온 이후 서울의 대표적인 수산물 교역장 역할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수협과 일부 상인이 시장 현대화 사업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데, 존치와 철거 사이에서 '서울 미래유산 지정'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유리한 발언을 위해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노량진 수산시장 외의 사례에서도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옛 시장상인, 구 노량진 수산시장의 존재>
"노량진 수산시장은 서울시민인 상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시민이 애용하고 외국인이 서울을 찾아 추억을 만드는 소중한 공간. 추억이 새겨진 시장을 수협의 부동산 개발에 없앨 수 없다."
<수협∙도매시장 특유의 기능>
"수산물 교역을 위한 새벽 경매 등 도매시장 특유의 문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소비자와 상인이 만나는 소매시장의 기능은 노량진 수산물도매시장의 부가적인 기능일 뿐이다. 2016년 3월 16일 새벽 1시 새 시장 건물에서 열린 첫 번째 경매가 주목받았던 이유도 경매를 시작으로 노량진 수산시장의 모든 업무가 개시되는 등 새 출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가 준 미래유산 동판은 새 시장 건물에 걸려 있다.
*위 내용은 2018년 10월 19일 자에 작성된 뉴데일리 경제 기사에서 내용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소유자나 사용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속성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중요성을 알고는 있지만 현실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보존이 과연 보존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보존한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실효성이 나타나는 건지도 의문이 든다. 이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는 행위와 '지정되었다'라는 결과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후의 책임과 역할에 따른 명확한 이해관계를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정책이나 제도로 효력을 인정해주고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소유주와 충분히 논의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한 듯 보인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서울 미래유산 동판은 신축된 건물의 2층 기둥에 부착되어 있었는데, 이걸 찾느라 한참이나 헤맸다. 그나마 동판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간 것이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해당 동판을 발견할 가능성은 낮다. 회를 먹으러 오는 많은 사람이 지나가다 본다고 한들, 같은 노량진 상인 사이에서도 미래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데 일반 시민이라고 다를까 싶었다. 게다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근∙현대 유산은 총 470건(2019년 12월 기준)이다. 이중 사라질 위기에 처한 미래유산을 서울시가 매입한 경우도 있으나, 그 수는 아주 미비하다.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경우는 매입이 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사라져 버린다. 실제로 의문점을 남긴 사례가 있다.
대형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동식 식당 스낵카. 1970년대 고철 버스를 개조하여 운영되었으나 아시안 게임을 앞둔 1985년 정부에서 스낵카 전용 버스를 위탁 제작해 보급했다. 이때 '영동 스낵카'도 새로운 버스로 옮겼고, 한티역 8번 출구 인근의 나대지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35년을 한 장소에서 교체 없이 지속적으로 운영 해왔고, 2015년에는 그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영동 스낵카가 위치한 토지의 개발 제한이 해제되면서 상가가 들어섰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영업을 지속하기에 임대료가 부담되었던 사장님은 폐업을 결정했다.
식당 운영을 더 이상 하지 않더라도 스낵카를 폐차장으로 보내기에는 아쉽고, 직접 관리∙유지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서울시에 보존을 제안했다고 한다. 기대와는 달리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았고, 스낵카는 결국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서울시가 보존 여부를 결정하고 매입하는 대상은 어떤 명확한 기준이나 조건이 있는 것일까? 시민의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그렇지 못한 개인에게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불확실함 속에 본질은 사라져 버리고 이름만 남은 유산을 과연 누가 지키려 할까?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방직공장과 맥주 공장이 여럿 분포되어 있던 문래동에서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삼각형 대지 위 오래된 건물들. 과연, 정체가 무엇일까? 바로 밀가루를 제조하던 '대선제분 공장'이다. 핵심시설인 원통형 건축물 '사일로'는 건너편에 위치한 '타임스퀘어(Timesquare)' 건축물과 대비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잇고 있다.
처음에 이 공장을 마주했을 때 삼각형 대지도 그렇고 주변에 조성된 시장, 근접거리에 위치한 사무실 단지 등 다양한 성격의 공간들이 혼합된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역사의 시간들을 접하게 되었다.
동쪽에는 '경성방직', 서쪽에는 '종연방직' 경성공장이 있었으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그 흔적은 사라졌고 대선제분만 남았다. 2013년에는 대선제분 또한 아산으로 이전하면서 문래동(영등포) 공장 가동은 멈췄다. 그러나 사일로, 제분공장, 목재 창고, 대형 창고 등 총 23개 동의 공장 건물은 변형이 거의 없이 본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36년부터 단계적으로 구축된 일련의 건축물이다 보니,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5월에는 '우수 건축자산' 2호로 등록되기도 했다. 우수 건축자산은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문화재는 아니지만 역사적∙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니거나 국가의 건축문화 진흥 및 지역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건축물∙공간 환경∙사회기반시설을 말한다. 대선제분의 위치 또한 중요도에 한몫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좌∙우로 방직 공장이 이웃하고 있었고,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산업철도의 분기점도 이곳에 있었다. 우수 건축자산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와 별개로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역사와 이야기가 쌓인 장소임이 틀림없으니,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에 대한 화두도 끊이질 않았을 것이다. 2016년에는 패션쇼나 유명 수입 자동차 브랜드 프로모션 행사 등을 진행하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직접 그 모습들을 보진 못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지속된다면, 현시대와 맞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리라 생각했다.
대선제분에서는 이미 그런 생각이 있던 모양이었다. 구역 내 토지를 전부 매입하여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거나, 다른 사업 주체들과 공공으로 추진하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었다. 2018년에는 민간 주도형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면서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 재생사업 추진 선포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공장 원형을 보존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전시∙상업이 연계되는 복합문화공간 조성을 결정했다.
그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대선제분 공장 앞을 서성였고, 우연히 창고로 쓰였던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볼 기회가 생겼다. 어둠이 내려앉은 텅 빈 공간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바닥에 부딪혔다. 이곳이 변화한다면 과연 어떤 곳이 될 수 있을지 잠깐이지만 상상을 해보았다. 명확하게 그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주변의 환경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조화가 잘 되는 공간으로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길게 쭉 뻗은 담장을 따라 걸으면 바깥 측면에 위치한 사일로와 제분공장, 사무실, 대형 창고, 정미 공장을 볼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오래된 건물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어떻게든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업시설이나 주거공간으로 만들어 버리기에, 이런 풍경을 지켜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대선제분의 가치와 의미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지만 현재의 가치와 가능성을 충분히 담아내 실현만 잘 시킨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제분. 현재는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하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 중인데 차후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기대된다.
굳이 서울시가 택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유산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인지하고 지켜내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정해야 보존될 가치가 있고, 지정했음에도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애매모호한 서울 미래유산 프로젝트. 이제 그 의미를 되돌아볼 시기가 왔다.
* 해당 글은 열린 지성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드는 그룹, 프럼에이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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