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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Sep 02. 2020

더 이상 예전 그 동네가 아닌 것을

변화의 중심에서 동네의 의미를 묻다.

# 삶의 공간이었던 동네가 소비의 공간이 되다, 익선동

익선동이 지금처럼 핫플레이스가 되기 이전, 다큐 3일에 방송되고 1~2년 사이를 두고 알려지기 시작했을 그쯤, 나도 자연스럽게 익선동을 알게 되었다. 한참 골목탐방을 하느라 서울의 오래된 동네를 돌아다닐 때였고, 그중 한 군데가 익선동의 골목길이었다. 한 사람도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던 골목길을 걷다 고개를 들면 마음껏 하늘을 볼 수 있는 도심 속 유일한 동네였다. 지금은 대부분이 카페나 식당 같은 상업 시설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과거 이곳은, 외로운 이들이 모여 살던 사람 사는 동네였다.

<화면 출처: 시사저널, 서울, 시공간 프로젝트 웹사이트>
<화면 출처: 시사저널 http://seoulproject.sisajournal-e.com/>

예전 모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익선동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뿜어내는 매력에 빠져 들었고 하나둘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좀 특이했던 점이 하나 있다면 핫플레이스라고 칭하는 동네의 대부분이 젊은 층이 주를 이루는 것과 다르게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익선동을 찾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이곳을 찾을까?'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 달 정도, 매일 익선동을 찾았고, 사람들을 관찰했다.  


평일과 주말, 시간대별 방문자의 수, 연령대 등의 수치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불특정 다수를 무작위로 인터뷰를 해야 했고, 한 달이라는 기간으로는 부족했다. 좀 아쉽긴 하지만 눈대중으로 지켜보기로 했다. 일단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방문한 결과 굳이 구분해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치가 위치다 보니 평일 낮과 밤 모두 이곳을 지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주말이 되면 그 수는 배로 늘어났다. 게다가 익선동 내에 혹은 주변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이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의 방문도 많았다. 20대 ~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그 이유에는 '한옥'이라는 주거공간과 골목길이 자아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층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한옥이라는 공간에 대한 색다름이 중년층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들이 형성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난 건 아닐까?

익선동의 한옥은 북촌과 서촌의 한옥과는 달랐다. 일제 강점기 당시 집을 구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대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규모가 작고 서로의 담이 맞물려 모여 있는 모양새를 한, 한옥 밀집구역이었다. 그때부터 이곳에는 저렴한 임대료를 지급하고 세를 들어 살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익선동이 뜨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집주인들이 세를 받는 대신 집을 하나둘씩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 구매한 한옥을 리모델링하여 가게를 오픈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익선동은 더 이상 동네의 기능을 유지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동네의 모습은 바뀌어 갔다. 오래전부터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되면서 꽤나 오랫동안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빠르게 변해갔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새로운 가게들은 우후죽순 생겨 났다. 나는 새로 생긴 가게들보다 자꾸만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동네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던 세탁소, 철물점, 슈퍼 같은 동네가게들도 사라지는 것이, 수레에 짐을 가득 실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동네라는 곳이 그저 단순히 우리가 사는 물리적 공간이기만 한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 2018. 이경민 all rights reserved

물론 익선동은 상업 지구 용도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익선동을 방문하는 이들 중에 과연, 이곳이 사람이 살던 곳이라는 걸 알고 싶어 하거나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익선동 사람들은 지워지고 '핫'함 만 남았다. 사람들이 살던 삶의 공간에서 누군가 만들어 놓은 핫함을 사는 소비의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더 이상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고, 현재에서 이어질 변화를 지켜보는 수밖에 -


# 동네, 소비의 대상이 되다.

핫한 상점들로 꽉꽉 채워진 익선동.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온전히 소비의 대상으로 변해버린 익선동은 내게 더 이상 편안함을 안겨 주던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돈을 소비하러 동네에 오는 것일까? 익선동의 경우, '골목길과 한옥'이라는 동네의 물리적 공간과 특유의 분위기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고,  그에 비해 보통은 동네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이 시작점이 된 경우가 있다.  

ⓒ 2020. 이경민 all rights reserved


쉽게 말하자면, 첫 번째는 '동네 자체의 매력'을 느껴서 이다. 관광명소나 문화적인 자원이라고 할 만 것들과 가까이에 있어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게 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서촌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1) 고요한, 서촌

서촌에는 다른 동네와는 달리 고층빌딩을 보기가 힘들다. 고도제한과 문화재 보호구역이라는 법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한옥의 형태를 한 가옥들을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다. 1980년대에는 길이 확장되고, 집 사이를 뚫고 소방도로가 생겨나면서 기존의 원형은 많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다른 곳에 비해서는 많이 남아 있고, 미로 같은 좁은 길이 서촌만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한옥과 골목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서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고요함이 좋아서 자주 찾는다. 어느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동네 자체에 흐르는 분위기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어지러울 때 서촌을 찾아 걸으며 고요함 속에 빠져 그대로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정리가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서촌에 있는 오래된 공간, 새로 생긴 공간들도 모두 서촌을 닮아 고요하다.

<좌: 서촌의 길,  우: 서촌에 있는 카페 공간, ⓒ 2020 . 이경민 all rights reserved>

두 번째는 동네에 위치한 또 다른 공간이 매력적이어서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가 알려지는 경우다.  주변에 기반시설이나 상업시설이 다른 동네에 비해 적고 딱히 뭐가 없는데 "여기" 때문에 발길이 닿는다.


2) 수서동, 식물관 PH

수서동은 사람들에게 아직은 강남으로서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행정구역상으로 강남구에 있는 동이다. 수서 고속철도인 SRT로 좀 알려지긴 했어도 아마 그 외로 '수서동?'이라고 했을 때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게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수서동에 와 보면 뭐랄까 이제 막 조금씩 기반시설들이 갖춰지고 정리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예전부터 있던 아파트와 단독주택 단지가 가까이에 있긴 하지만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공간과 분위기와 새롭게 형성된 공간과 분위기가 서로 뒤섞여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고, 명확한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그런 곳이다.


식물관 PH는 수서역에서도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수서역에서 식물관 PH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들은 마치 도심에서 보지 못한 모든 것들을 모아 놓은 것만 같다. 도로변 아파트와 하훼비닐 하우스, 그리고 자원회수시설로 추정되는 시설의 굴뚝, 교회, 묘소까지 - 혼돈의 카오스가 끝이 날 무렵에 보이는 거대한 온실 같은 건물이 바로 식물관 PH이다. 건물 주변은 수서 제2근린 공원으로 둘러 쌓여 있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인지 길게 말하지 않아도 감이 올 것이다.

<사진출처: 매거진 브리크, https://url.kr/wSpNeq>


# 이미지로 만들어진, 만들어지기 시작한 동네

그렇다면, 동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없거나 동네에 위치한 다른 공간이 매력적이지 않은, 두 조건에 속하지 못한 동네는 어떻게 사람들을 모을까? 그리고 동네 자체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 2020. 이경민 all rights reserved

한 동네가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나니 결국 동네를 대표하는 이미지도 만들기 나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이미지화된 동네로 가장 잘 알려진 '강남'. '강남' = 부의 상징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등식이 성립하기엔 다소 현실적인 부분들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빈민촌 혹은 달동네가 가장 많고, 혐오시설이라 불리는 장소들이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곳이 다름 아닌 강남이다. 강남은 지리적 위치를 놓고 보면 과거엔 서울의 외곽지였고 1990년대에 편입된 강남 지역도 따지고 보면 서울의 끝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인식된 강남은 가장 좁은 단위로는 '강남역 일대'이고, 그다음 범위로는 구 단위이다. 강남구만 or 강남구, 서초구 or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이처럼 '강남'이라는 동네는 명확하게 지리적으로 나눠서 보기보다는 이미지로 형성된 보이지 않는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동네라고 보는 게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어디 여기뿐일까? 서울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동네들이 비슷한 맥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 숨기고 싶은 그 이름, '봉천동'

서울로 상경 후 처음 자리 잡은 동네는 신림동이었다. 많은 이들이 신림동이 그나마 월세가 싸다고 외쳤기에 과감 없이 결정했지만, 1년을 살아보니 월세가 타 동네에 비해 그리 싼 편도 아니었고 주변에 유흥주점과 술집이 많아서 밤마다 술 취한 누군가의 고성방가를 들어야만 했다. 게다가 월세에 비해 방 크기가 턱없이 작았다. 바로 옆 동네인 낙성대역과 서울대입구역 주변으로 집을 알아보니 비슷한 가격으로 좀 더 넓은 평수에서 거주하는 것이 가능했다. 고민할 것 없이 1년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서울대입구역 부근으로 이사했다.


서울대가 있기에 학생들이 많고, 원래 밀집 주거지로써 유동인구 자체가 많은, 분위기가 활기찬 동네였다. 자취를 하는 학생들을 비롯하여 직장인 등의 1인 가구가 많긴 했지만 가족 단위로 거주하는 인구도 꽤 있어서 연령층도 다양했던 것 같다. 덕분에 자주 동네 구경을 했다. 인근에 시장도 몇 개 있고, 골목골목마다 작은 규모의 가게들도 많고, 구청과 도서관도 있었다. 내가 사는 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기반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체감을 하게 된 순간들이었다. 이런 생활에 만족하며 일상을 보내다 동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련 자료나 책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소설가 조경란의 대표적인 소설 '나는 봉천동에 산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현재 내가 보고 있는 풍경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처음 봉천동으로 이사를 왔던 무렵에는 이 일대가 온통 저습 지대의 계단식 논이었다고 한다. 야산은 깊고 험했으며 나무들이 빽빽했다. 그때는 이곳에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개통되리라는 걸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봉천동이 일거에 발전하게 된건 서울 대학교가 들어서면서 부터 였다." <나는 봉천동에 산다, 조경란>

과거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고 사람들은 그러한 과거를 지우기 위해 '봉천동'이라는 행정동의 명칭을 변경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법정동은 여전히 봉천동이며 흔적 또한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점집이 몰려 있거나 오래된 시장들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고,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선 곳도 있지만 가로지르는 길 하나를 경계로 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곳도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어디 사냐고 꼭 묻는다. ...봉천동요. 아, 거기 신림동 있는 데요? 아뇨, 신림동은 바로 옆 동네에요. 아, 거기! 그래요. 지하철,2호선,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요. .....아하, 그쪽 잘 알아요.
<나는 봉천동에 산다, 조경란>
ⓒ 2020. 이경민 all rights reserved

지우려고 하는 것은 동네의 풍경과 명칭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상황 자체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 '봉천동'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애써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에겐 이러한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왜 서울에서 유독 사는 동네에 대한 경계가 심한 것일까? 지방이 고향인 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혀 체감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어느 동네에서 사는가' 보다는 '어떤 집에서 사는가'가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아파트에 살면 부자, 주택에 살면 그냥 보통' 이런 느낌 정도였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서울에서 낯선이 들을 만나면 부천, 인천, 서울 어디 등 지역 위주로 상대방의 거주지를 파악하게 되었다. 특히나 서울은 같은 지역구여도 앞서 말한 것처럼 서로가 인식하는 정도가 달라서 알게 모르게 경계하는 사례들도 많이 보였다. 게다가 각 구마다 혹은 각 동마다 좋아 보일만한 콘셉트로 어필을 하곤 하는데 왠지 모르게 억지스러운 부분들도 많다. 봉천동은 과거 달동네 시절의 이미지를 지우려는 듯 애써 <서울대학교>과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를 주로 부각하려고 하는데 참으로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민들 스스로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숨기고 싶어 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서다.

ⓒ 2020. 이경민 all rights reserved

#동네라는 공간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소비의 대상으로, 이미지화된 동네로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는 요즘, 동네라는 공간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최근에 재개발로 온 동네가 어수선한 아현동과 염리동을 다녀왔다. 아파트와 신축 원룸이 동시 다발적으로 지어지는데 동네 자체가 공사장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서 좀 인상 깊게 지켜봤던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독립출판 서적을 다루는 서점이 몇 개가 있었는데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부동산과 신축건물이었다. 동네와 함께 오래오래 운영되던 과거와는 다르게 동네에서 가장 동네다운 공간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현실, 이제는 더 이상 삶의 공간으로 바라보기 힘들어졌다.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외부 환경이면서 가장 익숙한 공간인 동네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변화될 필요가 있고, 이것이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한 번쯤 되짚어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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