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된 도시변화와 개인의 삶
범위를 수치화하여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아주 많이 영향을 미친다. 변화라는 것이 도시 하드웨어적인 조직 측면에서 진행되는 것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유기적인 관계 측면에서도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주목할 것은 <주거> 문제이고, 이에 <부동산 투기>가 불가피한 요소로 맞물려 있다. 물리적인 공간과 경제적인 조건과 동시에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마저도. 이로 인해 개인의 혹은 한 가족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
한국전쟁 이후 급증한 서울의 인구에 비해 한 없이 부족했던 주택이기에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주택 5백만 호 건설>, 노태우 정부의 <주택 2백만 호> 정책이 연달아 시행된다. 이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로 인해 더욱 가속화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정부 정책의 행보는 그 당시 일명 '집장사'로 불려졌던 소규모 건설사업자들에게는 제한된 기간 안에 정해진 수의 주택을 건설해야 하는 위험부담이 존재했지만 혜택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 이 대열에 합류한 수많은 건설업체 사장님을 아버지로 둔 2세들은 <개발>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도시를 경험하게 된다. 여기,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부모님의 소규모 건설 사업 성공으로 대한민국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여 어린 시절을 보낸 마민지 감독의 자전적 다큐 영화 <버블 패밀리>.
1단계) 울산 거주 / 중공업 공장 노동자 / 부동산 매입 후 1~2년 만에 집값이 2~3배 오르는 것을 경험
2단계) 서울 상경 / 소위 집장사라고 부르는 소규모 건설업 사업에 합류 / 3저 호황 시대(저유가, 저금리, 저환율)
3단계) 1980년, 정부의 주택 5백만 호 건설 정책과 서울 아시안게임(1986년) & 올림픽 개최(1988년)를 대비한 잠실지구 개발로 건설업계의 급성장, 혜택과 보상이 주어짐.
정부 정책과 개발사가 맞물려 같이 움직이고 이는 곧 <서울>이라는 도시에 큰 변화를 준 것과 마찬가지였다. 잠실지구 개발은 원래 섬이었던 잠실도를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새로운 도시조직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정리된 도시, 잠실에서 살아가는 각 개인들에게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맺어야 할 다양한 관계적인 부분에서 개발 이전의 관계들과는 분명 다르게 형성될 것이다. 집에 대한 개념과 가치관, 타인과의 관계, 학교나 집에서 경험하는 문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등. 감독은 이 영화를 왜 만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던져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었다.
교수님: 너희 세대들에게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뭐였니?
마감독: IMF 외환위기요!
교수님: 아니, IMF 다 지나갔는데 왜?
마감독: 저는 제 삶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요.
IMF 외환위기가 한 가족에게 혹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막상 당사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나는 이러한 목적의 시작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만약 도시의 변화를 일으킨 <개발>이 없었다면, 과연 감독의 부모님이 소규모 건설업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친척분이 이미 집장사를 하고 있어서 부모님께 제안을 했다고 했지만 모두가 성공의 가도를 달릴 수 있음을 확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는 'IMF 외환위기'가 감독 개인에게 준 가장 큰 영향력이지만, 서울이라는 도시가 과거와는 다른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1980년대 준공된,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건축>이라는 변화를 맞았다.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이라는 첫 번째 변화와 맞물려 강남의 베드타운으로 강동구에 조성되었고, 잠실주공아파트 다음으로 두 번째로 조성된 대규모 단지이다. 재건축으로 사라지는 수많은 아파트 들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고향'이라 부르며 그 사라짐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
'아파트가 고향이라고?'
A: 넌 어디에 사니?
B: OO 아파트 102동 305호에 살아요.
아파트는 주거 공간, 즉 1차원적으로 장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주거공간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재개발로 철거될 둔촌주공아파트의 기록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이끈 이인규 씨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파트가 사라지는 것을 '고향이 사라지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그리워하는 건 이인규 씨뿐만이 아니었다. 어렴풋하지만, 잠시라도 둔촌주공아파트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이, 이주를 앞두고 잠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이주를 했지만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과거의 시간을 기록하는 것에 힘을 보탰다.
'아파트'로 공간적 의미를 너머 아파트 단지라는 거대한 환경에 형성된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둔촌주공아파트 건설과 더불어 함께 심어진 나무들, 그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만들어내는 녹지와 단지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공원 같은 놀이터, 언제 찾아들었는지 넓은 단지를 누비는 길고양이들. 이 모든 것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둔촌주공아파트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손을 모았다.
팟캐스트 라디오 심시티에 출연한 이인규 씨가 제작진이 던진 질문에 답변한 말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 <집>이라는 것이 단순히 내부 구조만 볼 것이 아니라 집 밖을 이루는 공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는 도시와도 연결이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삶에 필요한 환경으로서의 건축이나 조경, 사람들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다고. 정말 공감 가는 부분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결국 아파트니 주택이니 하는 외관, 형태에 따른 주거방식은 기본적인 차원이고, 그 이면에 관계되는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소들이 개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이를 통해 경험한 것들이 정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좀 더 확장시켜 도시의 변화를 본다면, 물리적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보이지 않는 관계적인 부분까지도 함께 엮여 움직인다. 이는 각기 다른 개인에게, 그 개인이 이룬 공동체에, 더 나아가 그 공동체가 삶을 살아가는 사회에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생각 외로 많이. 아주 많이.
참고자료
1. 닷 스페이스 영화 <버블 패밀리> 소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3mk1euPi_w
2. 라디오 심시티 브런치 : https://brunch.co.kr/@hwanao/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