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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Apr 06. 2020

지워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서초동의 지워진 그림자, 꽃마을과 삼풍백화점

근, 현대 대한민국 도시조직 기반에는 <1970년대 강남 개발>과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맥락이 존재한다.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거나 아직 미개발된 일부 지역을 제외한 곳의 모든 도시 조직(건축물, 도로, 교통망, +동네)이 두 가지 화두와 맞물려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대되면서 원래 경기도였지만 서울시로 편입된 지역은 그와 동시에 개발이 진행되었으므로 기존에 마을을 형성하여 살던 사람들은 급하게 이주하거나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도시빈민이 대거 발생했다. 대비책을 준비해놓고 진행된 것은 아니어서 더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땅 값은 계속 치솟았고 투기꾼들은 이들을 걸림돌처럼 여겨 쫓아 내려 애썼다. 생사가 달린 도시 빈민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아주 격렬하게, 더욱더 적극적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국가적 이벤트였던 만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도시 개발사에 큰 획을 그었다. 기존에 있던 공간이 사라짐과 동시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 희망적이고 설렘이 가득한 분위기인 반면에 폭력적이고 어두운 부분들도 존재했다. 5분도 채 안 되는 성화봉송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했던 상계동 사람들,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눈에 띄면 안 되었던 목동 사람들, 그들은 철저하게 <올림픽>을 이유로 지워졌다.


다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누군가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그 흔적은 곧장 지워진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인지하고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곳저곳에서 벌어졌고, 벌어진다.


지워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진출처: 오픈 아카이브, 서초동 "꽃마을" 철거현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병력>

묻히고 지워져 새로운 모습으로

강남구 노른자 땅이라는, 서초동


법조단지가 조성되고 도로가 쭉쭉 뻗어 말끔한 모습을 하고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서초동. 덕분에 주변은 온통 정의로운 법으로 다스려질 것만 같은 이곳에 과거, 도시빈민의 서러운 사연이 묻혀 있다면 믿겠는가?

1년에 15번의 원인 불명 화재가 발생하고, 연일 사람들을 괴롭혔던, 법조계, 전직 대통령들이 대거 개입되어 부동산 투기 현장으로 변모한 서초동 꽃마을이 있었고, 몇 년 간의 힘든 투쟁 속에서 끝내 철거되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큰 혼란에 빠뜨렸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도 가까이에 있다. 묘하게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대한민국의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들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철거된 꽃마을의 흔적도, 붕괴된 삼풍백화점 사고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날 그 시각 이후로 흩어지고 지워졌다.

<사진출처: 다큐 인사이드, 시대유감 삼풍>
<사진출처: 다큐 인사이드, 시대유감 삼풍>

끝나지 않은 개발

지워진 꽃마을

왜 꽃마을일까?

서초동 꽃마을의 시초는 55년 당시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 초리였던 현재 지역에서 서울 농대생이었던 왕원식 씨(59)가 20평 정도의 밭에 베고니아·카네이션 등의 꽃을 재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이 서울로 편입된 63년까지 서 초리 내 9개 부락에 생겨난 2백여 곳의 화훼농가를 통틀어 「서초동 꽃마을」이라 부른 것이 명칭의 유래다.

강남 개발 붐에 따른 「장사 재미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상인들이 대거 몰려드는 통에 전성기였던 88 올림픽 이전에는 1천여 곳의 꽃가게가 성업을 이루었다. 12년째 이곳에서 꽃가게를 운영해온 강석년 씨(42·청화 식물원)는 『70년대 말 새장사를 하며 드나들다 이곳 꽃마을의 인심에 반해 어깨너머로 장사를 배워 꽃가게를 차렸으나 80년대 중반 이후 강남 개발에 따른 돈바람이 불어 장사 인심은 물론 단오·추석 때면 함께 모여 축제를 벌이던 가게들 간의 인정도 점차 사라져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인 88년 말부터 이 지역의 땅값이 급상승하고 건물 신축 붐이 일어나면서 지주들이 대부분 무허가 비닐하우스인 꽃가게들에 나가줄 것을 요구, 서서히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해 작년 법원·검찰청사가 입주하면서부터는 상가건물 신축에 따른 철수가 가속화되어 현재는 96곳의 가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내용 출처 : 중앙일보, "서초동 꽃마을이 사라진다", https://news.joins.com/article/2636177>


전국 각지의 철거민, 영세민들이 모여들었다.

1987년 한 해 동안 서울시내에선 23개 지역에서 재개발사업이 추진됐다. 서울의 주거환경이나 도시 미관은 상당 부분 개선됐으나 그 과정에서 집중적인 강제 철거작업의 결과로 많은 도시 빈민이 집을 잃게 됐다. 서울 시내 각지에서 내몰린 철거민, 영세민들이 임시로 정착해 집 단주 거촌을 형성한 곳이 바로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 꽃마을이었다. ‘전국 철거민연합’에 따르면 꽃마을에 정착한 철거민은 2000여 가구에 이르렀다. 꽃마을 철거민들은 전기나 상하수도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무허가 천막집,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했다. 20여 가구가 1개의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주거여건은 최악이었다. 1988년 9월 월간 ‘말’ 지는 꽃마을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남서쪽으로 4∼5km 떨어진 서초구 서초동 법원단지 신축공사가 한창인 이 일대엔 언제부턴가 전국 각지에서 강제철거민, 영세민들이 모여들어 집 단주 거촌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주워온 널빤지와 기둥목으로 뼈대를 세우고 천막과 담요를 겹으로 덮어씌워 지붕을 올린 납작한 천막 집들이 300∼700세대씩 나뉘어 빽빽이 들어 차 있었다. 속칭 ‘꽃동네 비닐하우스촌’으로 불리는 이곳은 사람 한 몸이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로 비좁은 골목을 따라 집들이 밀집해 있어 여름 한철 방 안의 온도는 40℃를 오르내린다. 유희자 씨는 치열하게 벌어졌던 사당3동 철거 투쟁의 마지막까지 남아 최종 보상금 330만 원을 받아 쥐고 사당3동 철거민 50여 세대와 함께 서초동 비닐하우스촌에 정착했다고 한다….”

< 내용 출처: 신동아, 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6181/3>


88 올림픽, 여기도 덮쳤다.

" 누가 저 거대한 건물 담 밑에 게딱지처럼 오종종 붙어 있던 꽃마을 비닐하우스촌을 기억하고 있을까? 88 올림픽 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골이 진 함석판으로 숨구멍을 둘러 막았던 이곳을 알고 있을까?"... <푸른 사다리, 이옥수>


1년에 15회, 끊임없는 화재 발생 끝에

 1990년 8월 28일 오전 9시 서울시는 공무원과 철거반원 1700여 명, 경찰 2500여 명, 포클레인 5대를 동원해 꽃마을을 강제 철거했다. 이후 꽃마을 철거민촌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초동 꽃마을이 한국 사회 양극화를 상징하는 곳이었다는 점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집중적으로 매집·보유한 서초동 법조타운 앞 부동산 소재지와 꽃마을은 사실 거의 동일한 장소였다. 상류층인 땅 소유주는 지가 급등으로 ‘대박’이 난 반면, 그 땅 위에서 임시로 사는 사람들은 도시 난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1989년 하반기 법조타운이 입주를 시작하면서 법조타운 주변 지역도 정비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때부터 서울시는 꽃마을 철거작업에 착수했다. 이즈음 꽃마을 철거민촌에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 10여 건이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내용 출처: 신동아, 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6181/3 >

“1995~1996년께 끝까지 남아 있던 검찰청 앞 150여 철거민 가구가 철거된 것이 마지막인 것으로 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꽃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무너진 삼풍백화점

나에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소식에 관련된 기억은 흐릿하다. 1995년이면 초등학교 3학년 때고, 심적으로 멀게만 느껴졌던(아니 실제 거리도 멀었던)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현실감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연이은 실종자 발견 소식과 상황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며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주 큰 사고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24년이 흐른 지금, 다시 그때의 사고를 들여다보았다. '정확히 어떤 일이, 왜 발생했고, 그 당시 상황은 어떠했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안타깝기만 했던 그날의 사고는 대한민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게 만들었을까?


<1995년 6월 30일 자, 동아일보>
<무너진 삼풍백화점 A동 반대편 모습, 1995년 6월 29일 자 KBS 뉴스 영상>

마구 치솟던 땅값에 위령비

대신 고급 아파트


삼풍백화점 유가족들은 피해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사고 현장 부근에 위령탑을 세우길 원했으나 서울시 측에서는 '위령탑을 여기에 세우면 보상금 지급이 어렵다', '땅값이 내려간다', '아파트 값이 내려간다'는 등 '돈'을 핑계로 '안된다'는 답변밖에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 1년 전에도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서울시는 이 사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현재 무너진 삼풍백화점 자리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다. 붕괴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서울시의 부지 매각 공개 입찰에서 낙찰받아 1998년 낙찰가 및 지연금을 모두 완납하여 최종 인수 후 공사를 시작해 2004년 완공하였다. 위에 게시된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주변에서 유일하게 삼풍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거대한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삼풍아파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풍백화점 사고'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거리만큼이나 멀어진

희생자 위령탑


지도를 살피던 중이었다. 양재 시민의 숲에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이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발길을 옮겨 이곳에 다다랐다.


<건립 취지>

" 1995년 6월 29일 서초구 서초동 1685-3에 소재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희생된 502위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온 국민의 정성 어린 성금으로 삼풍사고 희생자 위령탑을 건립하였습니다. 이 탑의 명칭은 "횃불 탑"이라 하고 영령들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형상 대지에서 새싹이 움터서 우주공간을 향하여 어둠을 밝혀주는 형상, 봉황이 두 나래를 펴고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는 형상, 넓은 대지위에 둥근 태양과 햇살을 상징하여 앞으로 이런 참사가 없고 햇빛처럼 밝은 세상이 되도록 하자는 내용을 상징화하였습니다.

1998년 6월 29일
제작 : 이화여자대학교
조각: 김봉구 교수
추모시: 김문수 교수
건립: 삼풍사고 희생자 위령탑 건립위원회

건립 취지를 읽고 있으니 그 날의 사고가 생생히 전해 지는 듯 하다. 위령탑 뒤쪽에는 희생자들의 명단과 함께 유가족들이 두고 간 꽃다발과 꽃바구니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조화가 몇 개 보였는데 시들지 않는 꽃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생을 잃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담긴 꽃바구니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시큰해졌다. 바로 옆에 꽃시장이 있는데도 급히 오느라 꽃 한 송이 조차 들고 오지 못해서 미안했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이 희생자 위령탑의 존재는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절실히 느껴진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부근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피다 발견한 <장안말 고개> 비석. 과거의 조선은 있었으나 과거의 삼풍백화점은 없었다.

거쳐온 과정이 이렇다 보니 어쩌면 현재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에서도 많은 것들이 지워지고 또 지워져서 좋은 것만 남겨진 역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워지고, 사라진 것들. 얼마나 많을까? 현재의 서초동은 도시빈민들이 모여 살던 꽃마을이 철거되고, 502명이라는 사망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이후 형성된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자료출처

1. 오픈 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714559

2. 중앙일보, "서초동 꽃마을이 사라진다." https://news.joins.com/article/2636177

3. 사진출처: 오픈 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714550

4. 서초동 꽃마을 철거 현장 뉴스, http://mn.kbs.co.kr/news/view.do?ncd=3697305

5. 삼풍백화점 근처 삼풍아파트 붕괴 위험, http://mn.kbs.co.kr/news/view.do?ncd=3752420

6. 엠비시 뉴스, https://images.app.goo.gl/vcVJuMAbxemox81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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