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을 때

by 서울경별진

고등학교 졸업을 하기 전에 학교 근처 가구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패션디자인과를 가고 싶었지만 고등학교가 두 개밖에 없는 작은 동네에서 패션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생소했고, 부모님께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취업을 하기를 원하셨다.


집과 조금 먼 거리였던 회사는 아침에 직원 분들의 차를 얻어 타고 들어가야 했다. 출근하면 전날 사용한 컵들을 설거지했다.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잔일들을 해야 했다. 결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졸업 전에 졸업 소풍으로 롯데월드를 갔는데 그날이 첫 결근이었다. 두 달 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회사 일을 시작하게 된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대화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졌다. 중학교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진학한 이후로 연락이 끊겼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취업을 한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친구들과는 관심사와 취향이 맞아야 하는데, 나는 대화나 관심사가 달랐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도 친구들과 내가 맞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한 번은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데, 나는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옆에 앉아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사실 말도 많지 않은 편이라 그냥 앉아만 있었던 것 같다. 그때 한 친구가 내게
“너랑 같이 술 마시면 죄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라고 말했다. 그 날 이후로 친구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졌고, 나도 술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술자리에 가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술자리에는 가지 않았다. 나는 술자리 외에 모임에는 부를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말에 예민한 사람이라서 말이나 단어를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어떤 말을 들으면 나는 그것에 자주 사로잡혀 있다. 어떤 말들은 듣고 나면 그나마 남아있던 자존감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관계에는 실패했지만, 어린 나이에 시작한 회사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직장이라는 것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야근을 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는 모두 이렇구나.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어른들과의 대화, 분위기, 신경전, 매일 똑같은 업무가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를 하려던 찰나였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그릇을 가지러 온 아주머니가 밖에서 “불이야!”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가구회사였고, 나무가구로 가득한 4동과 2층짜리 사무실 1동이 있었다. 사무실에는 사장님과 손님,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 있었다. 놀라서 문을 열자 불이 벌써 사무실동 앞까지 번져있었다. 외진 곳에 있었던 터라 소방차가 오는 길에 불은 모든 가구를 태웠다. 그 사건으로 나는 난생처음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우리 회사는 불이 탄 곳 옆에 임시 사무실을 열었다. 형광등조차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불이 났던 날 사무실에 있던 직원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장부를 챙겨 나와야 할 사람도 나였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장부를 챙겨 나갈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불은 이미 번져서 우리 사무실 앞에까지 와있었고, 사장님도 나와 같이 급하게 뛰쳐나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어떤 대화를 할 때마다 내가 장부를 챙겨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왔고, 나는 그것에 대한 자책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내게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내가 그 장부를 챙겨 나왔다면 우리 상황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들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아직 무언가를 책임지고 감당할 만한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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