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울었어

열심히 살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by 서울경별진

회사에 가면 같은 시간에 친구들이 즐기는 캠퍼스 생활이 항상 부러웠다. 당시 우리 세대에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하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고졸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대학교 축제 같은 그런 경험, 첫 미팅, 밤샘 과제 등등 일반적인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의 일상들이 모두 부러웠다. 그런 삶이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 나는 평범의 기준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평범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무언가 배우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쉴 수만은 없었기에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영화관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내 진로를 고민할 때 책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니까 삽화작가를 목표로 삼게 되었다. 중학교 때 카툰을 배웠고, 근사한 그림은 그리지 못해도 어느 정도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삽화를 가르쳐주는 학원을 알아보니 강남에 한 곳 있었다. 그곳은 학원비가 무척 비싸서 아르바이트 월급으로는 다닐 수가 없었다. 일단 서점으로 가서 재테크 책을 사고 영어 학원을 등록했다. 가구 회사를 그만두면서 부모님께 "저도 이제 졸업했으니, 제 삶에 집중해보고 싶어요.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제가 번 돈으로 생활하면서 살아보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재테크 책을 보면서 한 달 월급 50만 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계획을 세웠다. 영화관은 집이랑 버스로 20분 거리였다. 6시간 근무여서 끼니는 걱정하지 않았다. 첫 월급을 받고 나서 나는 통장 세 개를 만들었다. CMA통장, 적금통장, 생활비 통장. 당시 CMA통장은 이자가 꽤 많이 붙어서 입금해 놓은 대로 이자가 불어났다. 50만 원을 쪼개서 학원비를 모으고, 적금하고, 생활비로 사용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영어학원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돈 관리는 나름 괜찮았다. 1년쯤 되었을까 학원비 통장에 150만 원 정도 모았을 때였다. 150만 원이면 당시 한 달에 50만 원 정도였던 강남 미술학원 학원비로는 3개월 치였다. 그러나 그림이라는 것이 쉽게 느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나였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통장에 잔고를 채우는 즐거움으로 매달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는 중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돈을 빌려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가족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그냥 주는 것과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아르바이트 쉬는 시간에 1년 동안 모은 학원비를 아빠에게 입금하고 나서 유니폼을 입은 채로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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