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버스 안 좌석은 가득 차 있었고 아버지와 딸은 30분을 서있던 상태였다. 한 아주머니가 딸에게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지만. 딸은 괜찮다며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신호에 차가 멈췄다. 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마디에 승객들은 웅성거렸다. 전도하려는 사람인가 싶었다.
"저는 지금 암투병중입니다." 아까 자리를 양보해주려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차 안은 고요해졌다. "이 버스 안에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타고 계십니다." 옆에 있던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감쌌다.
"얼마 전 수술을 받았는데 재발하여 재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한 평생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하셨을 부모님께 힘내시라고 박수한번 부탁드립니다. 저도 힘내서 꼭 건강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버스 안은 박수소리와 격려의 말들로 금세 따뜻해졌다. 마지막에 좋은 하루 되라는 말까지 떨리는 목소리로 아끼지 않고 씩씩하게 내뱉었다. 어머니와 옆 승객의 대화가 들렸다. '10년 전 발병. 12번의 수술. 나이는 이제 겨우 21살. 21살이라니. 21살이라니.'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우리 아빠는 바터팽대부 암이었다. 할머니는 담도암으로 돌아가셨고. 작은 아빠. 고모부. 막내 이모까지 암이다. 가족들은 처음 암 선고받았을 때 자식들 앞에서, 우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그날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아낌없는 눈물을 보았다. 자신의 아픔보다 자식의 대한 아픔이 더 크구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의 대한 부모의 마음을 깊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버스 안 두 분의 눈물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픔 속에 살아가다 보면 그저 함께 곁에 있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 될 때가 있다. 버스 안의 딸이 동정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님을 나는 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다하여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해낸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매일 슬픔 속에 잠겨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내 마음의 수준대로 가족들의 곁을 지키는 것이 최선임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지켜내는 일조차 우리는 모두 서툴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