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

오래 보아야 보이는 것들

by 서울경별진

원장 선생님의 대학교 진학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왠지 좋아졌다. ‘내 그림이 이 정도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입시학원에서는 대학 진학이 목적이고, 수업받는 학생들의 그림을 보면 내 그림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그래도 원장 선생님의 말들 중 하나쯤은 붙잡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내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학원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을 보면 뒤늦은 나의 배움 들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배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며 따라 하기도 하고, 물어봐서 배우기도 했다. 이젤 앞에 조용히 앉아서 몇 시간이고 사과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평안을 주는지, 그 순간만큼은 작은 지우개도, 슬리퍼도, 보잘것없어 보였던 모든 것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빛의 방향, 그림자 지는 각도, 그림자 모양의 표현 등 평소에 보지 못한 것들까지 보게 된다. 실제 모델의 인물화는 그려본 적이 없지만 내가 인물을 그리는 화가였다면 물끄러미 모델을 보며 그릴 때 그의 내면까지 보려고 노력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눈빛, 그의 입술 선, 귓바퀴의 모양까지도 말이다. 팔레트에 물감을 섞으며 그의 원초적인 색을 표현해내기 위한 창작력은 얼마나 치열했을지. 우리가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된다.


수채화 수업까지 마친 나는 본격적으로 강남학원 진출을 꿈꿨다. 당시 나는 영화관에서 가장 오래된 아르바이트생이었고 3년 동안 결근과 지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급은 제일 많이 받았기에 그만큼 통장에도 잔고가 늘었다. 1년 6개월 동안 모은 돈으로 강남 미술 학원을 5개월 등록했다. 나는 생활비가 필요했기에 영화관을 그만두지 않고 학원을 다니는 동안 6개월을 더 다녔다. 영화관은 오전조로 바꾸고 학원은 7시 수업으로 등록했다. 오후 3시에 일이 끝나면 그대로 학원에 갔다. 빨리 배우고 싶었다. 학원비를 모으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인체의 구조를 먼저 그리기 시작했다. 인체모형이 있었는데, 첫 수업은 인간의 혈관과 뼈, 몸의 관절 등을 그렸다. 처음으로 인체에 대해 관찰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5시에 도착해서 백과사전 두께의 인체 책을 두 시간 동안 연습하고 7시부터 10시까지 그림을 또 그려댔다. 스케치북은 며칠 새 여러 권이 되었다. 10시에 수업이 끝나 집에 가면 밤 12시였다. 그때도 여전히 생활비가 부족했기에 영화관에서 간식으로 주는 작은 컵라면 한 개와 천 원짜리 사과 한 개를 먹으며 다녔다. 영화관 컵라면이 동이 나거나, 천원도 아까울 때면 하루 종일 굶을 때도 있었다. 그때 나는 8kg이 빠졌다. 이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배부르게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을 사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학원 진도는 생각보다 느렸고, 나는 학원을 재등록할 돈이 없었다. 3년을 꽉 채워서 쉬지 않고 일한 나는 처음으로 휴식기를 맞았다. 내 나이 스물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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