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알 같은 희망

by 서울경별진

무심코 혼자 운전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를 간다. 멈춰 선 횡단보도 옆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귀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신호가 바뀌고, 달리는 주인의 차 창밖을 보며 달리는 강아지가 행복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혓바닥을 연신 흔들며 신난 표정이다.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스스로 절제하고 제어하고 때로는 울고 불며 조절이 잘 안되기도 한다. '네 마음 좀 정리해.' 무뚝뚝한 한마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괴롭힌다.


별거 아닌 말에도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하는지에 따라 내 마음에 들어오는 깊이가 다르다. '그게 쉬웠으면 내가 지금 이런 모습이 아닌걸 나도 알지. 그렇지만..' 쉽지 않다. 사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다 보니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는지 조차 잃어버렸다. 나 조차 나를 모르겠고,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는 상태. 답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버겁지. 왜 나는 저렇게 살지 못할까.' 생각이 많은 나다.


가시돋힌 말을 들으면 진짜로 심장이 아프다. 나를 아프게하는 말과 행동은 잔상이 되어 내 머릿속을 헤집어버린다. '괜찮아, 다들 그래. 다들 그렇게 산대.' 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아침 라디오에 '오늘은 복수도, 앙갚음도 없는 하루 보내세요' 라는 멘트가 기억에 남아 또 적어본다. 그런 평온한 날들만 이어지면 좋겠지만, 항상 그런 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내고, 끊어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낸다. 어제보다 좋아지고, 엊그제 보다 좋아진다. 어느 날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고 나면 몸의 울림이, 잔상이, 후유증처럼 길게 이어진다.


그러면 나는 벗어나기 위해 생각들을 헤집고 나온다. 진흙 속에 빠진 사람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슬며시 올라와 하늘을 보고 누워 가만히 바람을 느끼듯이. 누군가가 보면 답답하고 이해하지 못할 이 느림이 나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고 방법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힘들지만 무언가 내 안에서 나를 살리게 하는 것들이 공급되는 것을 느낀다. 그 작은 공급들을 나는 무시하지 않고 끌어당긴다. 내 안에서는 살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매일 일어난다.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무의 상태에서도, 또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최악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계속해서 올라온다. 마치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라는 행복한 문구처럼 말이다.


누가 내게 이런 공급을 끊임없이 보내주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목마른 사람이 한 방울의 목축임을 얻은 것처럼 잠시 안정감을 받는다. 아직은 목축임 정도의 안정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 과정들을 서툰 글로 남긴다.


누군가를 보며 마음이 아프고, 감정이 이해되는 것은 상황은 달라도 그 애타는 마음을 나도 느껴봤기 때문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좋은 위로의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 공감과 위로의 말이 하나가 되어 내가 얻고 있는 이 안정감이 그들에게도 심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나 역시도 나와 같은 것을 느낀 그들의 책을 보며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함축적 의미를 담은, 또는 생각지도 못한 멋스러운 비유나 인용글을 보며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히 감성적이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담백한 내 글들이 때로는 애틋하고 마음에 든다. 그렇게 오늘도 포도알 하나같은 희망을 꿀꺽 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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