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좋아하지만 옷을 살 수가 없던 중학교 시절, 막 스무 살을 넘긴 사촌 이모가 옷을 보내줬다. 유행이 지나기도 했고 몸에도 맞지 않아서 직접 리폼을 해서 입서나 가방으로 만들어서 썼다. 그러면 친구들이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부터 옷이 좋아졌던 것 같다. 더 이상 그림을 배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을 하다가 고등학교 때 꿈이었던 패션디자인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디자인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를 봐도 내 환경적으로 디자인을 배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던 언니와 대화 중에 사이버대학이라도 가보라고 해서 그날 저녁 나는 패션디자인과가 있는 사이버대학을 검색했다. 내가 패션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 대학을 갈 생각은 없었고 검색을 해본 것도 약간의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한 직업학교에서 처음으로 패션디자인과를 개설했으니 지원하라는 팝업이 떴다. 나는 바로 지원했고 며칠 뒤에 면접 연락이 왔다. 스물네 살이 되던 추운 봄날에 태어나 처음으로 재봉틀을 잡았다. 직업학교는 국가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학비는 전액 무료였고 차비도 지원을 해주었다. 집이랑 2시간 30분 거리였지만 힘들지 않았다. 9시 수업 시작. 4시 수업 종료. 5개월 과정이었다. 수업내용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다른 수업은 받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디자인, 패턴, 이론, 실습 등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 배울 수 있었다. 지각이라도 해서 수업을 조금이라도 놓칠까 봐 항상 새벽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왔다. 그때는 디자인을 배우는 것이 너무 좋아서 힘든지도 모르고 항상 즐거웠다. 4시에 수업이 끝나면 밤 9시까지 나머지 공부를 하고 집으로 갔다. 주말에는 동대문으로 자투리 원단을 사러 다녔다. 자투리 원단은 1마~2마에 2-3000원밖에 안해서 부담없이 마음에 드는 원단을 샀다. 모든 것이 나랑 잘 맞았다. 디자인 시간에는 패션 일러스트를 그리는데 디자인을 하려면 사람의 몸을 먼저 그려야 했다. 나는 얼마 전 백과사전만 한 사람의 몸만 수백 장을 그리다가 왔기 때문에 바디를 그리는데 능숙했다. 사실 나는 얼굴 묘사를 잘 못해서 배우고 싶었는데 배우지 못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때 손님이 없으면 팜플렛에 배우 얼굴을 종이에 그려보고는 했다. 그림은 섬세한 표현력이 생명인데 나는 투박한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섬세하게 그리는 건 잘 못했다. 그림에 재능이 없는지도 모른다. 어쨌는 어쩌다 보니 디자인 수업이 순조로웠다. 미술학원을 다닐 때는 내가 사람 몸만 그리다가 끝났구나, 하며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이렇게 디자인할 때 필요했다고 생각하니 세상에 그냥 배워두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5개월 동안 양장기능사 자격증을 목표로 수업을 했는데, 반에서 나를 항상 경계하던 또래 남자가 있었다. 그 친구는 처음에는 내게 호의적이었다가 내가 친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선생님이나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를 경쟁자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우린 친구였지만 그 친구에게 나는 이기고 싶은 존재였던 것 같다. 양장기능사 시험을 보고 난 후에 내 자리에 와서 정답을 맞혀보았는데, 그 친구와 내 답이 모두 엇갈렸다. 그 친구는 자기가 합격이고 내가 불합격이라며 창피를 주었지만, 나는 답안지를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사실 시험에 약한 나라서 불합격이진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나도 지고 싶지 않아서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도 결석 없이 양장기능사 필기 합격의 기쁨을 안고 수료했다.
수료 후에는 좋은 취업자리가 생기면 연계를 시켜주는데, 그곳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몇 분계셨다. 나는 나이가 아직 어려서 기회가 많으니 취업 자리는 나중에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아직 일을 구하지 못한 내게 나를 좋게 봐주신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MD과에서 이번에 취업자리가 나왔는데 내가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곳은 교복회사이고 교복 디자인 때문에 도식화 작업을 새로 해야 해서 인원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도식화를 그려본 적이 없었지만, 추천해주신 회사이고 무엇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라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했다. 교수님은 도식화 프로그램을 써본 적 없는 내게 프로그램 회사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하루 동안 프로그램 교육을 받고 왔다.
첫 출근 날 직업학교에서 온 언니들은 내게 프로그램을 써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몇 시간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언니들은 한 달 동안 배웠다고 했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정보과를 나왔다. 수업시간에 울면서 배운 것들이 포토샵과 일러스트가 아닌가. 나는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보통 수준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도식화 작업은 꽤 할만했다. 그 회사도 집과는 2시간 30분 거리였다. 나는 그렇게 집과 먼 곳으로 다니면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원하던 일은 아니었고 단순 업무였지만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일이라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곳에서 월급을 조금 여유 있게 받을 수 있어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먼 거리가 힘들다는 생각보다 책을 읽을 수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더 행복했다. 피곤해도 집에는 꼭 걸어갔다. 걸을 수밖에 없는 거리였지만 걷는 게 좋았다. 밤에 보는 꽃이랑 달이랑 바람이 좋았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제일 예쁜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행복이라는 것은 언제나 내게 꿈처럼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매일 밤 잠들어 꿈을 꾸지만 깨면 사라져 잡을 수가 없는, 행복이라는 것도 내게는 잡히지 않는 아주 멀고 먼 꿈같은 것이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인간이 인생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없어서 꿈같은 일들이라고 생각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1년 반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고, 행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1기로 들어갔었는데, 1기 수료 후 그 과는 사라졌다고 한다. 주어진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찾아 나서서 잡는 것도 그만큼 중요했다. 나는 기다림이 아닌,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