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조각들

by 서울경별진

그림은 세월이 지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지금도 명화를 뒤적이며 찾아보고, 책을 사서 읽는다. 그림은 잘 그리지 못하지만 내가 상상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였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사실 사람들에게 대학을 가지 않은 이유로 가고 싶은 과가 없어서 가지 않았다고 했지만,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언니가 대학을 진학한 이유로 둘째인 나는 직장을 구하기 원하셨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기에 집에서 공부하고, 지역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수행평가는 항상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시험성적은 공부한 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마지막 기말고사 날이었다. 밤새 공부하고 입술이 부르터서 나타난 내게, 담임선생님은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이 잘 나오길 바란다고 하시며 어깨를 토닥여주셨지만 시험이 끝나자마자 내게 달려오셔서 차라리 문제를 풀지 말고 찍지 그랬냐고 하실 정도였다. 아빠는 중학교 1학년 때 내 성적표를 보고는 너는 공부할 머리가 아니라고 하셨고, 내가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하지 말라고 화를 내곤 하셨다. 그러면 나는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새벽 3시까지 몰래 공부하다 자곤 했다.

나는 겨우 동네에서 괜찮은 종합고등학교를 입학했다. 당시 정보화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실업계 고등학교가 꽤 유망했던 시기였다. 우리 학교는 일반계와 실업계가 함께 있는 종합 고등학교였다. 입학 후에도 나는 여전히 혼자만의 치열한 싸움을 하곤 했다. 주로 경영, 경제, 컴퓨터 위주의 수업이었다. 자격증이 수행평가 점수로 들어갔기에 어쩔 수 없이 컴퓨터 학원을 다녀야 했는데, 컴퓨터 학원은 학원비가 저렴했다. 그 외에는 유통, 상업, 회계 등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고3 여름방학 때 세무사 사무실로 실습을 나갔다. 오래된 건물에 철문으로 된 사무실에 5-6명 정도가 있는 곳이었다. 주로 여직원들이 있었는데 회식이 잦았다. 고등학생인 내가 듣기에 민망한 대화들이 자주 오가곤 했다. 드라마에서나 듣던 대화들을 실제로 듣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2주간의 실습을 무사히 마쳤다. 나는 당시에 배워둔 것들이, 그리고 정보과를 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지만 정보과를 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처음이기에 언제나 내게 주어진 것들에 충실했다. 일러스트(프로그램) 시간은 내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곰돌이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곰돌이 얼굴을 도저히 완성할 수 없었다. 동그란 얼굴을 그리고, 색칠을 하다가 옆 친구의 곰돌이를 보니 선생님이 보여준 곰돌이와 똑같았다. 그러나 내 곰돌이는 곰이 아니었다. 나는 여러 번 툴을 바꿔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운 것이. 아무도 내가 운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매일 부족했던 스스로에게 화내고, 스스로를 원망하며 지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도와달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모든 감정은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서 해보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던 열여덟 살 여름. 포털사이트에 유명 가수 축전 공모전이 있었다. 당선이 되면 팬 미팅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나는 단순히 내 실력을 알아보려는 생각으로 축전을 만들어 보냈다. 나는 그 가수의 팬도 아니었고, 팬 미팅이 뭔지도 몰랐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가본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단순히 내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다. 그런데 덜컥 2등에 당선되어 버렸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갔고, 팬 미팅이라는 것을 갔다. 나는 정형화된 것들에 갇혀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할 때는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든 잃어버린 나를 찾을 기회가 있다는 것. 어디든 사라진 나의 조각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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